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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새 Aug 31. 2019

ASMR이 다 뭔가요.

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타인의 존재감.

하루를 겨우 보내고 내가 완전히 방전 된 것 같았다. 

카페 테이블에 커피 한 잔을 올려 둔 채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스트리밍 어플의 재생목록에는 700개가 넘는 곡이 들어있었다. 그 중에서 생전 처음 듣는 것 같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재생목록에 추가해 놓은 뒤로 잊고 있던 곡이었다. 곡의 시작 부분에서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 그리고 멋쩍은 웃음이 들린 뒤 기타 연주가 시작됐다. 이런 식의 연출을 요즘 곡들에도 집어넣던가? 조금 오래된 감성인 듯하면서도 왠지 정감이 갔다.

kodaline official youtube / https://youtu.be/ymq8 LdfCU3 w


제목을 찾아보니 Kodaline의 "Way back when". 홀짝거리는 소리가 불쾌하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내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따라 마셨다.



  뭔가를 먹거나 마시는 소리를 ASMR이라고 부러 찾아 듣기도 한다는데.

 그런 소리를 찾아 듣는다는 일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취미영역이었으므로 심드렁하게 ASMR이란 게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Way back when" 시작 부분의 홀짝이는 소리를 인지하고 나서야 '아, ASMR이 이런 느낌이야?'하고 조금 공감하게 되었다.


ARMR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줄여서 ASMR)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혹은 인지적 자극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심리적 안정감이나 쾌감 따위의 감각적 경험을 일컫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전까지 남이 무언가 먹는 소리를 부러 찾아 듣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진저리를 치는 편에 가까웠다. ASMR이란 뭘까. 얼마 전 들었던 라디오에서 ASMR의 유행을  언급하며  일명 '그림 그리는 밥 아저씨'의 붓질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그림 그리는 소리가 ASMR이 될 수 있다니. 애초에 '붓질 소리'라는 것에 대해 신경을 써본 적도 없다. 사람들은 주로 어떤 소리를 ASMR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음... 아마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자연물의 소리가 아니라면 대개는 타인이 조용히 무언가에 열중하는 소리를 ASMR이라고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말을 건네거나 누구에게 부러 들려주려고 내는 소리가 아닌 아주아주 개인적인 소리. 이런 추측을 하고 있자니 ASMR이라고 하는 것들이 어쩌면 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타인의 존재감 같은 것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안정감을 주는 불편하지 않은, 내가 용납 가능한 정도의 존재감.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라고 거론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어요"의 상태를 충족시켜주는 것들 중 하나가 ASMR인 게 아닐까.



 누군가의 존재감을 안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ASMR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그에 반해 누군가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해 생기는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노 키즈존, 인종차별, 젠더 문제 등등. 휴. 나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존재, 누군가의 정체성은 나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우리가 서로에게 안도감을 주는 존재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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