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다
예민하다
섬세하다
세밀하다
제가 살면서 참 많이 들었던 단어입니다. 비중을 따지자면 '소심하다'가 80%는 차지하고, 20%를 나머지 단어가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소심하다'는 말의 느낌이 참 싫어서 그 말을 꺼내는 사람조차 미운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큰 범주로 보면 공통점이 많은 단어들인데, 왜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까요? 단어 자체의 의미도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단어에 실어 보내는 기본적인 감정 또한 다르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왠지 '소심하다'라고 다른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의 감정 기저에는 그 사람의 그 부분이 매우 마음에 안든다는 느낌이 깔려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 가지 단어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섬세하다'입니다. '소심하다'라고 말해주는 사람과 '섬세하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대하는 저의 태도 또한 다르고, 그 사람을 제 머릿 속에 기억하는 이미지도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 결정됩니다.
'소심하다'는 단어를 워낙 싫어하기에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은 참 섬세해'라며 제가 좋아하는 단어를 씁니다. 소심과 섬세는 한 끗 차이일테니까요.
공지영 작가는 에세이에서 예민한 사람들을 건반수가 더 많은 피아노라고 표현합니다. 남들보다 더 아프게 느끼고, 더 기쁘게 느끼는 사람들. 그렇게 좀 더 많은 감정의 건반수를 가지고, 세상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조금은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닐까 싶어요.
엄마를 사랑하고, 제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지만, 엄마는 저의 단점에 대해서 자주 부정적으로 표현하시고는 했어요. 너는 참 소심해, 그렇게 소심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살래?, 너 같은 사람만 있으면 다들 이 세상에 없겠다. 제가 작은 일에도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마다 본인의 닮은 딸의 소심함을 마구 꾸짖으시곤 하셨죠. 아마도 그렇게 꾸짖으셔야 제가 더 강해지리라 생각하셨나봐요. 그때 저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듯 더 많이 아파하고, 소심한 제 자신을 참 싫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심함은 어른이 되어서 큰 장단점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사람, 물건, 장소, 분위기 등 무엇이든 조금만 바뀌어도 금방 눈치채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몸이든 마음이든 무언가 달라졌다면 금방 느끼고, 카페에서 주인이 세심하게 인테리어 해놓은 작은 부분까지 발견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있을 때의 기류가 달라지는 정도 또한 빨리 느끼는 편이에요. 그런 점은 눈치껏 행동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고, 다른 사람이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을 빠르게 도와주어 불편함을 해소해주기도 하였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에는 공동체의 어느 누구도 낙오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안테나를 켜고 살아가는 것에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세상의 모든 일이 무수한 자극이 되어 쉽게 피곤해지고는 해요. 쉽게 넘어가야 할 상대방의 말과 행동 또한 큰 상처로 다가올 때도 있구요. 아마도 그래서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일 때는 모든 자극에서부터 저는 안전하니까요.
상상속의 엄마가 여전히 꾸짖는 느낌이어서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소심함의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주목하고, 제 자신을 참 많이도 채찍질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제 소심라이프에도 대변혁은 찾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육아.
육아만큼 섬세한 일이 또 있을까요? 생명을 길러내는 것은 정말 많은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말도 못하고, 행동도 못하고, 어쩌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를지도 모르는 아이의 의중을 지레 짐작해서 해결해줘야 하는 경우가 참 많았어요. 아이를 키워내면서 저는 제 성격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했던 것 같아요. 아이의 작은 소리와 행동에도 금세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 점점 늘어갔어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오늘 지인과 이야기를 했어요. 예민함이 육아에는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를요. 막상 저는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이야기를 쭉 듣다보니 정말 제 예민함이 아기에게 도움이 된 순간이 참 맣았더라구요. 그걸 깨닫게 해준 지인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제 소심함이 더 이상 초라하지 않게 느껴졌어요.
저희 아기는 저를 많이 닮았어요. 한 해 동안 키워보니 얘는 그냥 나를 작게 축소해놓은 사람 같다 싶은 부분이 많아요. 그렇기에 가슴이 아플 때도 많구요. 섬세한 마음을 가진 아이이고, 예민해서 자극이 과하면 싫어하더라구요. 제가 커왔을 때 힘들어했기에 아이에게만은 섬세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기에 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끊임 없이 설명해주고 싶어요. 아무리 혼내도 절대 대범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미 제가 성장과정 속에서 스스로 깨달았기에 아이가 자신의 그런 부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알맞은 곳에 자신의 장점을 잘 쓰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든 성격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원래부터 나쁜 성격은 없으니까요. 다만 내가 가진 성격이 좋게 발현이 되냐, 나쁘게 발현이 되냐는 본인의 노력 여부에 달려 있기는 해요. 장점이든, 단점이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좋게 발현이 되도록 끊임 없이 사색하고,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내 안의 성격을 자꾸만 환기해서 좋은 공기로 채워 넣어야 한다 생각해요. 방문을 꼭 닫은 채 내 안에만 갇혀 지낸다면, 고인 물처럼 더 좋은 단계로의 발전 없이 계속 정체될테니까요.
말 한 마디는 천 냥 빚을 갚죠. 하지만 말 한 마디가 천 냥 만큼의 상처를 줄 수도 있어요. 내가 누군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표현하는 단어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말하는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잘 모르겠다면, 내가 그 단어를 들을 때의 느낌이 어떤지 먼저 생각하보면 되지 않을까요.
저 또한 말 실수 할 때가 분명히 있을텐데, 앞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기저에 깔고 있는 단어들을 긍정적인 느낌으로 바꾸면서 말하는 능력을 많이 길러야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니, 분명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그 사람의 단점도 장점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저는 섬세한 사람이고, 세상의 작고 작은 부분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소심하지만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