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독서광이었다. 독서가도 아니고 독서광이라 표현한 이유는 정말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책을 탐독하셨기 때문이다. 어린 내가 봐도 아빠의 독서는 단순한 취미 생활을 넘어 절박한 삶의 동아줄 같았고, 끝없이 파고드는 장인의 행위 같았다.
다른 복은 없어도 인복이 참 많은 삶을 살았다. 다른 복이 없다 것의 의미는 특히 경제적인 복이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고, 숱한 고생을 하며 살아왔지만, 부모 복이 많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책과의 정열적인 사랑으로 내게 삶과 책, 글쓰기를 선물해준 아버지, 사랑이 넘쳤던 어머니. 두 분은 내게 삶에 있어 사랑과 예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본인의 삶을 통해 가르쳐주셨던 분들이다.
어쩌면 내가 읽고, 쓰는 행위를 깊이 사랑하는 것도 당연한 결과이다. 나와 살았던 시간이 고작 19년밖에 안될 정도로 아버지의 생애는 짧았지만, 19년 동안 읽고, 쓰는 모습을 변함없이 보여주셨던 아버지의 삶은 내게 명품 수업이었다. 굳이 딸의 교육을 위해 노력하시는 게 아니라 그냥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셔서 의도 없이 행동했던 그 모습이 그 어떤 수업보다 자연스럽고, 영향은 강력했다.
예술은 내 삶을 구원했다. 가난했고, 가진 재능이 있어도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던 어두운 시절이 연속되었지만, 예술이 있기에 어둡지 않고, 초라하지 않았다. 나는 문학을 읽으며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글을 써 내려가며 그 속에서 현실의 답답함을 벗어나 활개를 치며 살았다.
글 안에서만은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던 내게 글 그릇을 가르쳐준 기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학교 때 받은 논술 과외였다. 나의 학창 시절에도 지금처럼 논술의 인기가 대단했다. 뻔한 수업일 거라 생각했던 내 기대는 첫 수업에서 무너졌다. 선생님은 대학교 국문과를 나오신 분이었는데, 수업 방식이 독특했다.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 있다 판단되는 책을 골라 학생들에게 읽게 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썼다.
그때 당시 내가 읽었던 책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 향수 등의 책이었다는 것에 지금도 놀랍다. 그때는 내가 읽는 것이 어떤 책인지도 모르고 읽어 내려갔지만,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책 고르시는 안목이 상당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좀머 씨 이야기, 향수는 사유가 깊고, 수준 있는 책으로 인식되는데, 그것을 10대 아이들에게 추천해주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뭘 제대로 이해하고 썼는지나 의문이지만, 어쨌든 나는 좀머 씨 이야기에 대해 글을 썼다. 아직까지도 좀머 씨의 자살이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있는 걸 생각하면, 10대의 독서는 얼마나 이해했는지보다 얼마나 젖어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좀머 씨가 되어 살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논술 수업에서 재능을 인정받던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좀 떨어지는 아이였다. 나는 지나치게 감수성 높은 글을 썼고, 내 과잉 감수성은 논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생님께 늘 지적을 받아 내 글에 대해 자신감이 한층 낮아지긴 했지만, 그분의 수업을 통해 책을 고르는 안목, 책을 읽는 방법, 책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 글을 쓰는 방법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글 그릇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내 거친 생각을 아무렇게나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플레이팅이 가능한 글 그릇에 단정히 담아 전달한다면 글이 가진 힘을 더 효율적으로 전하게 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뒤 이 수업의 영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고3 때 시에서 주최하는 논술 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학교 대표로 발탁된 1군이 아니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는데, 우연히 내 글을 좋게 봐준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대회를 나가게 된 것뿐이다. 백조 속에 오리라고나 할까. 내로라하는 아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는 외로웠다. 내가 받은 기회가 나에게는 과분 하단 생각을 계속 했다. 내게 거는 아무런 기대가 없는 상태로 대회에 나갔고, 글을 썼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 더 재미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내가 시대회 1등을 했다. 학교가 꽤 떠들썩해진 이유는 아무 기대 없던 아이가 1등을 해서였으리라. 얼떨떨한 마음으로 도대회 준비를 했고, 도대회 하루 전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비극도 겪었다. 지금은 다르게 행동했겠지만, 10대의 감수성이 충만했던 나는 아빠의 자부심과 기대가 한가득 담겼던 도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엄마의 미친년이라는 말과 함께.
다행히 나는 운이 좋은 미친년이었다. 그 심란한 와중에 쓴 글이었지만, 운이 좋아 도대회에서 금상을 받고, 전국대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전국대회의 부상은 서울대 국문과 입학 특차 기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내 운은 거기까지 였다. 내게는 좀 특별한 지병(?)이 있는데, 극도의 긴장이 몰려오면 수전증이 생겨 글씨를 못쓴다. 전국대회 당시 과도한 의욕에 의해 지병이 도졌고,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행 요원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불러주는 대로 글을 써주면 안 되겠냐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였다. 내가 정한 글감이 아버지였다는 것도 지병을 도지게 한 원인이었다. 급작스런 성공을 감당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약했다. 결국 시도도 못해본 채 전국대회에 낙마했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이 대회는 나도 글쓰기에 조금은 재능이 있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준 대회였다. 그 이후로 SNS에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갔고, 몇몇 지인들이 내 글을 아껴주는 고마운 은혜도 받았다. 사생활을 계속 공개해야 하는 SNS에 염증을 느끼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온라인 카페 활동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달리는 댓글에 힘을 얻었다. 꾸준히 글을 썼고, 꾸준히 올렸다. 점점 읽어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내 글로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때 나는 두 번째로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아, 내 글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구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구나. 그 마음은 나를 더욱더 글쓰기에 몰입하게 했다.
카페 활동을 통해 브런치를 알게 되고, 1년 동안 4번의 응시를 했다. 3번의 떨어짐은 참 아팠지만, 오히려 실패의 경험이 있기에 브런치 합격이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브런치에 합격한 지 딱 1주일 만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가고, 카카오톡 채널에 올라갔다. 조회수가 200대가 넘어가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어젯밤, 또 다른 글이 다음 메인에 또 올라갔다. 이번에는 조회수가 2000이 넘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은 일은 처음인지라 얼떨떨했다. 아쉽게도 조회수는 구독자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브런치의 구독자수 늘리기가 얼마나 어렵고도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 사건이다. 그래도 사막 같이 황량한 내 글쓰기 인생에 꽤 기운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10년 뒤 내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마도 여전히 새벽을 타자 소리로 물들이고 있겠지. 여전히 내 일상을 글로 옮기는 것을 즐거워하고, 1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것에 소박하게 감사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에세이집을 출간했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 생활은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책 한 권에 달라지기에 내 삶은 꽤나 묵직했다. 힘겨웠고, 힘들었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의 무게가 더해져 더 묵직해졌다.
내 삶을 뒤흔들었던 순간들. 사랑하는 아버지가 삶의 현장에서 길어준 독서와 글쓰기, 논술 수업, 논술 대회, 그리고 카페와 브런치의 글쓰기 활동. 그 수업들이 글 쓰는 자로서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중심을 잡게 만들어주었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구워진, 아니 어쩌면 평생에 걸쳐 구워진 나의 글 그릇은 크고 작은 성공에 균열이 생기기에는 견고하다. 아마도 성공과 실패와 관계없이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쓸 것이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내가 죽기 전까지 글을 쓰다가 죽는 것이다. 그리고 도서관에 내 묘비명 같은 책등이 삶의 뒤에 남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삶을 뒤흔들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을 지나 나의 글 그릇이 더욱 많은 것을 품고, 견뎌내길 바래본다.
+ 인용
묘비명 같은 책등은 김영하의 '읽다'에 나온 표현을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