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집 앞에 잠시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노래를 들으며 나갔다. 장범준의 신곡이었다.
그냥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기만이라도
좋은 순간만은 천천히
사랑의 꿈에 취해 뒤척이는 밤이라도
당신과 함께 순간만은 천천히
신곡이 나왔다 했을 때도 들었는데,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 그런데 계속 들을수록 편안한 음성과 서정적인 가사가 점점 마음에 들어왔다. 뭐랄까. 특별한 임팩트는 없지만, 자주 입게 되는 회색티나 스프라이트티 같은 느낌이랄까. 장범준의 음악이 그런 것 같다. 화려하진 않지만, 편안하게 귀에 잘 감기고, 듣고 있으면 마음이 노곤노곤해지는 느낌의 음악.
'벚꽃 엔딩'을 '벚꽃 연금'이라 부른다고 한다. 봄이 될 때마다 계속 음악 차트 상위에 올라가는 이 곡의 저작권료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이 곡이 장범준의 우연한 인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신곡을 들으며 그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원히트 원더로 기억되기에는 장범준은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사람이다. 비슷비슷한 곡을 내는듯 하지만 그는 분명 대중이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다. 대중은 똑똑하다. 한 두번은 속일 수 있겠으나 오래 가는 무언가는 독특한 고유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장범준이란 이름을 어쿠스틱과 중저음의 목소리가 주는 편안함으로 점점 일구어가고 있는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장범준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오전에 들었던 라디오 사연 때문이다.
우리가 죽어서 남기고 갈 것은 내 이름이란 고유명사뿐이다.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떠올릴 때 어떤 느낌으로 기억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평생에 걸쳐 내 이름을 가꾸어 가는 것. 그게 삶이다.
기억에 더듬어 적은 내용이라 일부 읽기 쉽게 각색한 부분은 있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대학 강의에서 교수님이 하셨다는 이야기라는데, 하루종일 마음 속에 맴맴 돌았다.
내 이름은 지금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부모님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라는 의미로 지어주신 귀한 내 이름을 나는 잘 가꾸어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이름이 어떤 느낌을 주기 원하는가?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내 이름이 어떤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갖고 싶은 느낌은 정갈함, 단아함, 정직함, 최선을 다함, 야무지게 해냄, 따뜻함, 믿음, 다정함 등등이다. 살면서 이 느낌들이 내 이름에 녹아질 수 있게 평생에 걸쳐 노력하고 싶다.
내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도,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에게 어차피 죽음이란 종착역에 당도해야한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이름을 가꾸어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선택이 아닐까. 나는 죽어 없어지겠지만,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많은 이들에게 나는 어느 느낌이 되어 곁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나를 기억하는 모습이 지금 내가 바라는 모습이길 바란다. 내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나의 느낌이 내 아이가 평생을 두고 바른 길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오늘 내가 이름을 가꾸기 위해 할 수 있는 하루 분량의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인생은 거대하지만, 소소한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