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 지향형 인간의 성취 없는 삶

by 빗소리

나는 완벽히 성취 지향형 인간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의 부모님 표정을 보는 것을 재미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근성과 의지가 있는 편이었고, 무엇이든 정말 열정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된다고 생각하며 달려들었기에 어느 정도의 성취 또한 있어왔다.


그런 나에게 정말 인생의 큰 시련이 왔으니 그건 바로 임신이다. 임신은 내 의지와 노력과 상관이 없었다. 하늘이 주시는 것이라 다들 말하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7년의 난임을 겪으며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시험관까지도. 그 모든 것을 다해도 쉽지 않았던 임신. 내가 처음으로 겪은 인생의 두꺼운 벽이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이 없는 그 벽은 절대 열리지 않았다.


그 벽 너머에는 파랑새가 있다고 믿었던 걸까. 육아는 내가 겪은 두 번째 시련이었다. 육아 또한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치 않은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내 아이는 전혀 내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갔다. 오히려 다 포기하고 내려놓았을 때 아무런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많았다. 인풋과 아웃풋의 제대로 된 불균형이었다.


육아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취가 아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정말 먼지 같은 하루 하루의 작은 노력들이 쌓이면 10년 뒤, 20년 뒤에 아이의 몸을 통해 꽃을 피울 수 있을 뿐이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나는 벽을 두드리는 것처럼 성취 없는 일들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당장의 성과가 없는 일은 사람을 쉬이 지치게 한다. 그래서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우울증이 오게 될까봐 열심히 그 허탄한 마음들과 싸운 것이다.


글쓰기 또한 그렇다. 브런치에 가입하고 일주일이 안되었을 때 급작스레 받게 된 관심은 나를 성취에 중독시켰다. 브런치 가입 후 쓴 글중에 총 조회수가 4,457인 글도 있다. 다음과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4,000명이 넘는 독자가 내 글을 읽어준 것이다. 그래프가 올라가고, 브런치에서 1,000이 넘었습니다 알림이 올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떨렸는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이었다.


그러나 그 성취감도 오래가지 못했다. 조회수만 올라갈 뿐 이렇다 할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내 글을 '읽어준'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마음이 어느덧 그 독자가 구독자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번졌던 것이다.


자꾸만 반복적으로 통계를 열어보는 내 자신을 발견한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이렇게 성취에 목말랐던 거구나. 육아하며, 점점 나빠져 오는 기억력을 의식하며 스스로 계속 멈춰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참 싫었나보다. 그 멈춤은 내 아이를 위한 멈춤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직은 엄마의 속도가 버거운 아이의 속도에 맞춰주느라 멈추었던 것인데, 달려가던 그 시절이 그리웠나보다.


성취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싶다. 어쩌면 삶을 살면서 성취가 있는 시기보다는 성취가 없는 시기가 훨씬 길테니 말이다.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 아이의 속도에 맞춘다는 것은 성취 없는 삶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이 삶 속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이란 성취를 건강한 음식을 먹듯 잘 받아들이고 싶다.


마음은 이렇지만, 여전히 나는 이 성취 없는 삶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 시간들을 온전히 내것으로 잘 받아들이고 싶다. 아이를 떠나 성취가 있든 없든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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