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의 감사일기
1. 눈 깜빡하면 며칠이 훅 지나가버린다. 좀 더 챙겨서 감사를 해야 한다 생각한다. 오늘도 시간이 날 때 감사일기를 쓸 마음을 주셔서 감사하다. 생각해보니 매일 비슷한 시간에 반복적으로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거 같다. 타고난 파워 j라 그렇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간날 때 틈틈이 쓰려는 마음만 먹어도 대단한 거 아닌가. 거창한 시간을 내서 완벽하게 쓰려 하기보다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부족하더라도 매일 감사하자고 또 마음 먹는다. 감사일기를 잘 쓰고 싶은 야망을 6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하는 나를 칭찬한다. 나의 장점은 쉬이 포기하지 않는 것. 감사일기는 평생을 두고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죽더라도 수없이 감사한 순간들은 소중한 정서적 유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2. 어제 정여울 작가의 신간을 발견했다. 정여울 작가를 좋아하는데, 그녀의 성향과 내 성향이 무척 비슷하여 같은 부분에서 상처 받고 같은 부분에서 행복하기 때문이다. 마치 또 다른 내가 쓴 것인양 글을 읽을 때가 많다. 이번 달에 많은 책을 샀기에 또 사도 되나 1시간 정도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어차피 미래에도 또 이 책을 살 나이기에. 고민은 배송만 늦출뿐이란 생각에 과감하게 질렀다. 어제 질러준 내 덕에 오늘의 나는 행복하다. 신난다. 좋아하는 책이 마치 명품 가방을 산 거 마냥 행복한 나의 이 취미 생활을 내 스스로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에게는 무형의 세상이 유형의 세상만큼이나 소중하다. 책으로 쌓아가는 나의 자아가 기대된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의 마음 속 세상을 보는 것 마냥 그렇다.
3. 서영 선생님(가명)께 책을 선물 받았다. 얼마 전 모이야기를 읽고 무척 감동 받아 선물했는데, 자신이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 보냈다고 한다. 빨리 받고 싶어 일부러 학교로 배송했다. 그럼 퇴근 시간 이전에 책을 받을 수 있으니까. 스토너라는 책이다. 여러 사람의 서평에 등장했던 책이다. 다행히 아직도 읽진 않았던 책. 이 책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책을 서로 주고 받을 사람이 있고, 그 책을 읽은 소감을 바로 곁에서 나눌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솔직히 학교 생활하면서 이렇게 책 많이 읽는 선생님을 처음 만난다. 감명 깊게 책을 읽어도 옆에서 함께 신나게 떠들어줄 친구가 멀리 있거나 온라인에만 있었는데, 이렇게 같은 직장에 있다니. 너무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정말 한치 앞도 알 수 없구나. 항상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의 것들로 나의 삶을 채워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한다.
4. 오늘도 스타벅스에서 글을 쓴다. 허세가 아니다. 사실 스타벅스의 그저 그런 맛 말고 더 맛있는 카페로 가고 싶은데, 눈치 안 보고 많은 사람 사이에 파묻혀서 편안하게 글 쓸 수 있는 공간이 스타벅스 밖에 없다. 무엇보다 아이의 발레 학원 옆이다. 아이가 발레를 일주일에 2번 가는데, 그날은 스타벅스에 와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정말 감사하다. 아이를 돌보는 바쁜 엄마로서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정기적인 시간을 꾸준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여러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나의 마음 공기를 환기하는 시간이라면, 혼자서 책 읽고 글 쓰며 사유에 빠지는 시간은 마음 속에 수많은 생산물을 채우는 시간이다. 열심히 채우고 가끔씩 환기하고. 그 무엇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스트레칭하는 일도 모두 중요하다. 내가 그 균형을 맞추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5. 도움반 학생 지민이와 과학 시간에 재생종이를 만들었다. 오늘 실무사님이 오지 않아 내가 지민이를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종이죽을 휘휘 저으며 즐거워하는 지민이를 보니 행복하다. 지민이는 조작 활동을 무척 좋아하는데, 오늘 활동이 딱이었다. 열심히 종이를 쪼물딱거리며 형태를 만들고 얇게 펼쳐가며 많은 질문을 했다. 지민이가 나에게 요청하는 것들 대부분이 충분히 자유라는 선 안에서 허락할 수 있는 거라 되도록 허락했다. 지민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순수한 즐거움, 자유롭게 펼치는 창의성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긴장만 하던 내게 지민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순수한 감정들에 좀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6. 최근 귀한 과일이라는 과일 가게를 알게 되었다. 인테리어가 유럽의 과일 가게를 보듯 싱그럽고, 과일들도 대부분 맛있다. 질이 좋은 과일들로 채워오는 거 같다. 가격은 다소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특가 상품을 잘 골라 사면 되니 괜찮다. 지난 달까지 이용해오던 과일 가게가 갑자기 문을 닫아 당황했었는데, 새로운 가게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과일 애호가 딸을 키우는 엄마에게는 좋은 과일 가게를 아는 것이 꽤 중요한 미션이다. 아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란 이유의 팔할은 수없이 먹은 과일에 있다 생각하곤 한다. 부지런히 제철 과일을 사다 나르며 냉장고를 꽉 채우면, 채우기가 무섭게 수시로 꺼내 먹는 호두. 학원비보다 과일비가 더 든다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잘 먹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이다.
오늘은 과일가게 직원이 내게 농담을 걸었다. 원래 모르는 사람이랑 잘 대화를 안하기도 하고, mz세대에 대한 어려움이 있어서 평상시 건조하게 과일만 사오곤 했다. 20대의 밝은 성격의 여직원은 매일 말 없이 과일만 사는 내게 굳이 말을 걸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농담을 걸었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다닌 나와 내적 친밀감을 쌓은 걸까? 그 농담의 내용이 재치있고 귀여워서 나도 마음의 빗장을 열고 활짝 웃었다. mz세대에게 꼰대로 비춰질까 잘 움츠러드는데, 어쩌면 나는 사실 mz세대와 친해지고 싶은 건 아닐까. 막내 동생 같이 귀여운 그녀 덕에 기분 좋은 오후 시간을 보낸다.
7. 오늘은 플랫화이트를 먹는다. 뉴질랜드에 다녀온 이후로 종종 플랫화이트를 먹는다. 플랫화이트를 마시면 뉴질랜드에서 즐거웠던 연수 생활이 떠오르곤 한다. 외국 학교에 2주간 출근하며 나를 옭아맨 모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봤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내 안의 큰 허들을 하나 넘었던 거 같다. 30대를 생각하면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로 바뀌니까. 내게 또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기도하며 간구하고 싶다. 내가 나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주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