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아이와 5박 6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퇴근 후가 되어서야 내새끼를 보는 맞벌이 엄마로 살며, 그래도 저녁 시간에는 아이와 온전하게 시간을 보내니 아이를 잘 아는 편이다 생각했는데, 5박 6일이란 긴 시간 동안 꼭 붙어서 세세하게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내가 아는 모습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점차 세분화되어 섬세하게 작동하는 긍정적인 감정과 더불어 부정적인 감정 또한 발달하여 보고 감각하는 것마다 행복과 짜증을 쉴새 없이 넘나 들었다.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아름다워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기록해야 하나 싶다가도 걸어가는 사이 틈틈이 분출하는 짜증을 방어하다보면 앞의 행복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의 모든 시간 속에서 행복하고 버거워했다. 내가 아이를 이제서야 좀 파악하고 알맞게 대처하고 있다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 날 눈을 떠보면 또 다시 바뀌어 있는 아이의 모습에 당황하고 어영부영하다 하루가 갔다. 매일 밤 이게 맞나,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들, 반성과 고해성사로 하루를 마감했다.
여전히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어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마치 이제 좀 몇 년 키워봤으니 내가 널 안다고 자만했구나. 육아에 있어서는 평생 아무리 겸손해도 부족한 것인데 말이다. 한 사람을 키워낸다는 건 하나의 우주를 돌보는 것과 같고, 어쩌면 나는 아이에 대해 제대로 다 파악하지도 못한 채 한 평생을 보낼 수 있다. 함부로 알려고 덤빈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지 싶다. 그저 나에게 닿는, 내가 감각하고 있는 이 우주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답변하려는 태도만이 필요했을텐데. 내게 필요한 건 완벽한 엄마의 상이 아니라 그저 성실하게 노력하고 매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려는 마음가짐일텐데 말이다.
엄마로서 작아지지도 커지지도 말아야겠다. 부족하다고 기죽지도 말고, 이제 널 좀 안다고 깝죽대지도 말아야 한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그저 성실하게 이 아이와의 시간을 하루 하루 살아내는 수 밖에는 없다. 아이는 내 잘난 모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이 시간들을 살아내는 모습 그대로를 배울테니까.
내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 누가 봐도 혹할만한 타이틀을 가지길 감히 바라지 않는다. 그건 마치 새 아파트에 이사를 간 것처럼 당장은 상쾌하고 뻑쩍지근한 일이지만, 오래오래 갈 행복은 아니기에.
잠시 멈춰서서 하늘과 구름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멍 때리는 일의 소중함. 천천히 끊어서 커피의 맛을 음미하며 그 향기와 질감에 퍼져가는 행복들.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방법과 그 우정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방법. 진정한 친구를 사귀려다 실패해도 훌훌 털고 다시 시도해보는 용기.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도전 의식. 가격과 디자인, 사회적 인지도를 벗어나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어울리며, 자주 사용하게 될 물건들을 고를 수 있는 안목과 그 안목을 얻게 되기까지의 기회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을 배짱.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에서조차 가장 어려운 이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위한 물질적, 정서적 헌신을 나누는 균형 감각.
우리 아이를 키울 때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다. 당연히 아직도 나는 이것들이 잘 안된다.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얻기 어려운 감각과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르쳐 주고 싶다. 같이 배우고 함께 성장해나가면 되는 일이니까. 아이는 함께 늙어갈, 그리고 오랜 시간을 나눈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의 유전자까지 같이 찌인하게 공유한 사이이니 어쩌면 더 서로를 이해할 동료가 될 수 있다.
육아의 경로가 수정되었습니다.
나의 경로는 오늘 아침 또 다시 새로이 수정되었다. 매일 아침 낯선 길을 따라 서서히 운전한다. 이 길의 목적지를 나도 알 수 없으나 매일 딱 하루 만큼만 보이는 길을 따라 아이의 손을 잡고 가본다. 미지의 땅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