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희주 Sep 29. 2022

렛 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자소서

딸 (97년생)

/이제 자소서 쓰기만 하면 됨 (제일 어려운 단계)


자기소개서 (이하 자소서) 얘기를 하려면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맞다. 나는 취업의 첫걸음 격인 글쓰기를 오랫동안 무시했다. 맥도날드 알바가 다국적 기업 근무 경험으로 변모하는 글쓰기. 오죽하면 자소설이라고 불리는 글쓰기. 갖다 붙이기, 부풀리기, 쥐어 짜내기. 감상도 교훈도 없는 정형화된 글. (이렇게 말하니 문단 관계자나 애독자쯤 되는 거 같은데 아니다. 말 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자소서는 원래 다 그런 거라지만, 우리나라 인재 선발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반항심이 들었다. 혹은 몇 년 후 닥쳐올 나의 미래를 예지 했던 심보일지도 모르고.


본격적인 취준 전선에 뛰어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반성이었다. 알 지도 못하고 쓸 줄도 모르면서 턱끝만 치켜들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깊은 참회. 자소서에 대한 인상이 바뀐 건 아니었다. 천편일률적인 글쓰기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내가 써야 하는 게 막막했을 뿐이다. 알바는 대충 구색 맞춰 서류 내고 얼굴 보고 생글생글 웃고 말 또박또박 잘하면 합격이었는데 취업은 그게 안됐다. 기업의 문은 소상공인과 비교도 안되게 높았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중 막학기에 취업 관련 강의를 들었다. 교내 재학생들의 취업을 돕고자 한 학기 동안 취업 전반에 대해 알려주는 강의였다. 누구는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냐고 핀잔 줄지 모르지만 졸업예정생에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강의였다. 최신 기업 및 산업 이슈 파악, 자기소개서, 면접 등등을 가르쳤는데 자소서는 소재 발굴부터 구조화, 최종 작성까지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은 건, 자소서는 그 어떤 글보다도 정확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글이라는 거다. 마치 기업이라는 존재가 추구하는 방향성처럼. 앞서 자소서가 감상이 없다고 말했던가. 대신 자소서에는 구체성이 있다. 예를 들어 창의성을 어필해야 하는 문항이 있다. 일반적으로 창의성을 물으면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는 느낌으로는 알지만 나 자신한테서 끌어내라고 하면 난처해한다. 창의성은 예술이나 발명의 분야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 공식에서 창의력은 곧 문제 해결 능력이다. 업무 중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어떤 주체를 만나 설득하고 협상했고 무엇을 보완해 문제를 해결했는가. 그 과정이 창의력이다. 이처럼 자소서는 추상적 역량을 구체화하고 사례로 설명한다. 글이 명확하고 가시적일 수밖에 없는 한편 뭉뚱그리며 살아온 내게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자기소개서는 수사(修辭)를 빼고 수사(數詞)를 넣는다. 두 줄을 넘어가지 않는 간결한 문장과 정량화된 글. 어투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할 거 같다’가 아닌 ‘~했다’ ‘~하겠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가민가 하는 구석이 없게 한다. 지원하고자 하는 기업, 산업 분야의 동향과 사회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때문에 분석적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적은 글자 수 안에 핵심만 넣어야 하니 적절한 단락 나누기와 전략적 빌드업은 필수. 나름 치밀한 구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좋은 자기소개서, 합격 자기소개서를 읽고 있으면 막히는 구석 없이 한눈에 키워드만 쏙쏙 들어와 편안하게 읽힌다. 소설이 술술 읽히는 것과는 다른 결이다. 짧지만 밀도 높은 문장들. 거를 건 거르고 또렷하게 자기를 어필하니 합격했구나 싶다.


여전히 자기소개서가 좋은 글쓰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소서를 쓰다 보면 나를 구성하는 기억과 경험들이 '스펙'이 아니라서 내 손으로 댕강댕강 자르는 일들이 빈번하다. 전공도, 대학생활도 분명 후회하지 않는데 속이 쓰리다. 다른 사람과 엇비슷하게 열심히 산 거 같은데 동일선상에 오르지 못한다. 쟤가 프로젝트로 공모전에서 상 탈 동안 나는 학내 문화 바꾸기에 애를 썼다. 크고 작은 행사들을 진행하고 부조리한 교수를 밀어내고 매뉴얼이니 회칙도 만들었다. 그치만 쟤는 공모전 수상자고 나는 학생회 활동이력으로 끝이다. 서러운데 어필할 방법이 없다. 

자소서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쟤와 나, 동기와 나, 전국 합격자와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재고 따지다 보면 속에 남는 게 없다. 나는 글쓴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붙여서 자소서가 정말 개인의 직무역량을 파악하기에 좋은 글인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남아있다. 단점이 진짜 단점이면 안되고 성장배경에 오랜 꿈과 큰 시련은 하나씩 있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요구하지 않는가. 솔직한 건 안되고, 20대 때는 놀아야 된다더니 이제 와서 그건 탈락이라고 하고, 그러는 면접관 선생님들은 대학교 때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냐고 소리치고 싶은 말들이 쌓인다.


쓰다 보니 글에 억울함이 맺혔다. 당사자성이 있어 그러니 양해해주시길. 

그래도 자기소개서의 의의를 찾자면, 자소서는 자소서만이 가능한 글을 보여준다. 장황하고 모호한 표현들 대신 구체성으로 승부하는 글. 과장이 보태질 수는 있어도 공허한 이야기는 없는 글. 다른 글도 자소서처럼 쓰는 건 곤란하지만 분명 이 형식과 전략이 정보 과잉의 시대에 기여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비록 '돈 벌려고'를 500자로 풀어내야 하는 걸지라도. 





엄마 (68년생)

/난 이제 자소서의 등장인물인지도


돌아보니 나는 자기소개서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을 스스로 소개해본 적 없으니 나를 세상에 소개해준 건 누구였을까? 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자소서를 쓴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하지? 


자소서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라디오 작가로 일했고 정규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내 또래라면 정규직도 요즘처럼 자소서를 쓰진 않았던 거 같다. 문방구에서 이력서라는 글자가 박혀있는 종이 묶음을 사서 자신이 다닌 학교나 경력 등을 쓰고, 간단하게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정도였던 거 같다. 엄격하신 아버님과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클리셰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던 시절. 

나랑 비슷한 연배여도 인사 파트에 있는 사람은 좀 다를 수 있겠지만, 자소서는 나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양자역학과 비슷하다. 설명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머리가 하얘진다. 

그럼에도 자소서에 관심이 생긴 건 딸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자소서에 매달리는 딸을 보며 처음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자꾸 쓴다고 늘 수 있나? 자기가 변한 건 아닌데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 변한다고? 지어내는 건 안된다며~

이에 대한 답. 지금은 실마리가 어렴풋이 잡히는 거 같다. 이런 의문은 요즘 쓰는 자소서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된 거다. 


내 또래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런 착각을 많이 할 거 같다. ‘ 자소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글이다.’ 

근데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해서 찔끔찔끔 엿본 잘 쓴 자소서 샘플을 보니,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가 당신네 회사나 조직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 어필하는 글이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한테 시점이 맞춰져야 한다. 나의 전인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 회사에서 찾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나를 맞춰야 한다. 


어머나 세상에. 생각해보면 정말 아득한 일이다. 

평생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3인칭 관찰자 시점 내지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나를 돌아봐야 하니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고도의 계산이 들어간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라니. 물론 러브레터처럼 사로잡는 건 아니지만. 

이렇듯 치밀한 계산을 깔아야 하는 글이다 보니,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에선 일종의 프레임을 쉬지 않고 작동시켜야 한다. 이렇게 쓰는 게 이 회사에서 좋아할 만한 얘기인 거 맞아? 이렇게 쓰면 인사담당자가 합격함에 내 자소서를 넣을까? 내 딸은 이런 생각을 몇 번이나 도돌이표 해봤을지. 

그런 의미에서 자소서가 정확히 뭔지 모르면서, 자소서 쓰느라 끙끙댄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게 왜 힘들어, 걍 솔직히 쓰면 되지 뭐’ 하는 꼰대 동지 여러분들. 자소서 함부로 혀 차지 마세요, 당신은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객관적 글로 어필한 적 있나요. 


프레임을 통해 나를 검증하는 일. 

객관적인 시점으로 나를 돌아보고 다른 이들과 비교해보는 과정. 

좀 다른 얘기지만, 무한 경쟁 시대를 살면서 어려서부터 이런 일을 거듭해온 세대가 MBTI에 열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질문을 통해 나를 유형화해볼 수 있으니까. 익숙하니까 빠지기 쉽고, 잘 아는 방식이니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더구나 MBTI에는 합격 불합격이 없다. 걔는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MBTI로 아이스 브레이킹도 할 수 있고 쓸데없는 긴장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거다. MBTI 얘기만 나오면 눈이 동그래지고 목소리 톤이 한 톤 올라가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왜 저래?’ 했는데, 자소서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MBTI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젊은 세대는 그들만의 방식과 회로가 있구나. 그걸 살피지 않고 쉽사리 이러쿵저러쿵하는 그 입은 얼른 다물어야겠구나. (오픈마인드와 주의 산만 사이 구천을 떠도는 나) 


다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자기소개서를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내가 자소서를 쓰려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합격 불합격을 생각 안 하면 이렇게 시작할 거 같다. 


내 딸의 자기소개서는 틀에 박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다. 아니 적어도 그 시작이 뻔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왜? 고리타분한 자소서의 클리셰인 ‘엄격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를 쓸 수 없으니까. 단언컨대 나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다.


이다음 문장으로는 ‘우화하하핫’이란 웃음소리를 써넣고 싶은데 그러면 무조건 탈락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만인 대 만인의 카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