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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Mar 15. 2020

DAY2.로얄 패밀리 별장에서 가난한 배낭여행객의 식사

런던 근교/윈저 - 궁궐과 어울리지 않는 궁상맞은 에피소드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유럽 여행 내내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은 햄버거였다. 당시에는 그게 가장 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돌이켜 보면 햄버거가 그리 싸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가장 접하기 쉽고 주문하기 쉬웠던 음식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햄버거 세트가 그렇게 느껴진 것은 내가 겁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겁을 가장 많이 먹게 만들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슬프지만, 솔직하게 돈이었다.



 당시에 유럽에 갈 때, 화폐를 세 가지로 환전해갔다. 영국의 파운드, 유로화 그리고 스위스 프랑. 지금과 약간 차이가 당시 물가를 살펴보면 1파운드를 계산할때는 1,800원, 1유로는 1,200원, 1프랑은 1,000원 정도로 계산했었다. 지금하고 차이가 있다해도 당시에 영국의 물가는 살인적. 애초에 시작할 때 준비자금 자체가 많지 않았는데 그 돈으로 여행사에 지불해야할 돈부터 시작해서 캐리어에 카메라까지 사야했으니 돈에 연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원래도 살인적인 물가라는 영국의 1파운드에 1,800원이라는 단위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여행할 때 되도록 돈을 안 아끼는 타입으로 변했는데 아무래도 유럽 여행의 큰 깨달음으로 이렇게 변했는지도.



엄청난 물가, 오로지 이 나라에서만 사용하는 화폐단위, 그리고 첫 나라라는 부담감. 예비로 외국에서도 돈을 찾을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갔지만 이미 처음에 예산으로 잡았던 돈을 다 환전했기 때문에 최대한 예산안에서 돈을 사용하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여행사를 통해 숙박과 아침식사, 나라간 이동은 거의 다 해결됐지만 나라 안에서의 교통비나 입장료 등 써야할 돈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낄 수 있는 가장 큰 카테고리는 식비였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영국에서 극단적으로 식비를 줄여썼고, 결국은 어떻게 됐는지는..... 가장 화려한 로얄 패밀리의 별장에서 가난한 배낭여행객의 식사는 어떠했는지, To be continue...



우리의 오늘 일정은 매우 간단했다. 윈저성과 이튼 스쿨. 먼저 티켓을 끊고 들어 간 윈저성에서 이 곳 저 곳 구경을 했다. 아래는 2007년 당시의 브로슈어.

윈저성 관람객 안내지도


아쉽게도 한국어 안내는 없는 브로슈어.

 오래 전이라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내부 곳곳을 볼만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관람동선도 나쁘지는 않았다. 인형의 집 안에는 다양한 인형이나 성 미니어처들이 많아서 매우 신기해하면서 구경했던 것 같다.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 정원도 아름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친절한 직원 분과도 사진 한컷.



굳이 부끄럽지만 이 사진을 넣는 이유는 나의 옷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 기상이변이라고 40도를 육박한다고 우리를 겁주던 유럽의 날씨는 유럽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기에는 너무 넓었던 탓인지 생각보다 쌀쌀한 곳도 많았고 그냥 밤에나 좀 입지 않을까 했던 저 화려한 색의 트레이닝 복을 주구장창 입고 다니게 되는데... 평소에도 옷을 잘 입고 다니는 패셔니스타는 아니었지만, 정말 유럽에서의 나는 패션테러리스트 그 자체.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저 멀리 떠가는 비행기를 보며 - 왜 낮게 나는지 이유는 모를- 드디어 우리의 궁상의 끝은 달리는 점심식사. 


 어떻게 하면 식비를 아낄 수 있을까 고민끝에 우리는 한국에서 선식을 싸오기로 했다! 따로 구매한 것은 아니고, 왜 다들 집에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싶은 야심차게 다이어트하려고 준비했던 식사대용 선식 혹은 단백질 파우더 기타 등등. 암튼 그것을 캐리어에 싸 왔고 저렇게 각각 집에서 쉐이커를 가지고 와서 점심 대용으로 먹었다는 것.



진짜 다시 생각해도 오마이갓. 우선 캐리어에 선식을 짊어지고 가는 것도 무거웠고, 어쨌든 우유나 물, 쉐이커를 들고 다니면서 선식을 타 먹어야해서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행왔다는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고 분위기를 우중충하게 만드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선식은 런던의 호텔을 떠날 때 짊어지고 온 보람도 없이 고스란히 호텔에 버리고 왔다. 혹시나 호텔 직원분이 이 이상한 가루가 뭐야 라고 오해하지 않게끔 개별 포장된 선식이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우울하고 조금은 어이없는 기억이지만 그래도 결국 이런 노력의 결과로 파운드가 생각보다 엄청 많이 남았고, 그 돈으로 프라하에서 사용할 코루나를 교환했기 때문에 이후에 좀 더 풍족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햄버거를 제일 많이 먹고 다녔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돈을 더 가지고 갔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조금 더 풍족했다면 나의 마음가짐도 달랐을거고, 해볼 수 있는 경험도 많았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가서 갈래? 라고 물어보면 갈래! 라고 무조건 말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후회가 있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나이에, 당시로서는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여행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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