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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Dec 23. 2019

DAY1. 히드로공항에서 숙소까지

2. 혼란의 입국심사, 튜브, 그리고 No Booking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숙소 주변의 모습. 이런 건물이 쭉 연결되어 있었다. 

 새벽 4시, 평소에는 돌아다니지 않을 시간이지만 여느때보다 초롱초롱했던 낯선 외국에서의 첫 아침. 내릴 듯 내릴 듯 내려주지 않던 비행기에서 한참만에 내린 영국의 첫 공기는 쌀쌀했다.




  유럽여행에서 빠지지않는 코스인 영국. 그리고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꿈꿔왔던 여행의 첫 행선지로 선택한 영국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무난한 첫 여행지였다.  언제든 한번은 들어가야 하는데 섬나라니까 이왕이면 두 번 도버해협을 건너지 않게 첫 여행지나 마지막 여행지로 영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는 첫 여행지였고, 나중에 벨기에에 들어가고 나서야 영국을 첫 선택지로 한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영어도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보고 들어 본 경험이 있는 영어와 전혀 모르는 언어가 주는 긴장감의 차이는 엄청났다. 물론 이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입국심사 때 난리를 쳤으니까......




 히드로 공항의 입국심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통에 - 뭐 어디든 쉽게 들어갈 수 있겠냐만은- 친구는 엄청 걱정을 하고 있었고, 나는 뭐 잘할 수 있을거야 하고 친구를 토닥거리며 입국심사장으로.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가 누군 위로하는건지. 친구가 훨씬 잘 알아듣고 잘 함(...)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입국심사장. 첫번째 변수는 나와 친구 차례에 동시에 두 자리가 빈 것이 문제. 당황한 나머지 시야가 좁아진 나는 직진을 했고 친구는 다른 자리로. 엄청 무서운 목소리와 빠른 영어로 뭐라고 물어보는데 진짜 1도 못알아들음. 당황해서 아? 하는 느낌으로 대답했더니 겁나 크게 하지만 이번에는 또박또박 How many? 라고 물어보셔서 그제 알아듣고 Two 라고 하니 이번에는 어디있냐고 해서 돌아보니 친구가 없었음. 그제야 친구는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을 깨달았고 친구를 가리켰더니 굉장히 짜증을 내면서 저기가서 같이 받으라고 해서 쭈뼛거리며 친구 옆으로 갔다. 다행이 친구 앞에 서 계시던 담당자 분은 친절했지만 한 번 놀란 가슴은 가라앉을 줄 몰랐고. 왜 왔냐고 묻는데 4일 있는다고 대답하고, 다음에는 어디 가냐고 물었는데 친구는 알아들었는데 혼자 못알아듣고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쫓겨날뻔... 이제 난관이 끝났나 했는데 마지막 난관은 발음. 다음에 어디 가냐고 물어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벨기에 브뤼셀을 말했는데 너무나 정직하게 한국 발음으로 벨.기.에.브.뤼.셀이라고 말해서 잠시 의사소통 불가. 몇 번 씩 벨기에! 브뤼셀!을 여러번 말한 끝에 결국 심사 해주시는 분의 벨지움, 브러~셀이라는 답을 스스로 찾아내시고 우리를 통과시켜주셨다. 진짜 베리 땡큐.



사실 생각해보면 질문은 별 거 아니었다. 몇 명이 왔냐? 왜 왔냐? 며칠 머무를거냐? 다음에 어디갈꺼냐? 정도의 충분히 예상가능한 초급 영어 질문이었는데 당황하니까 진짜 아무것도 안들렸다. 이렇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이 그 때는 처음이라서 모든 게 다 당황스럽고 어려웠다. 짐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것 아닌데 내 캐리어는 빨리 나오고 친구 캐리어는 시간차를 두고 나와서 엄청 걱정했었다. 지금에야 뭐 당연하지 이런 느낌이라면 그 때는 왜 같이 수속했는데 하나만 나오지? 없어진 것 아니야? 당황당황 그 자체. 다행이 짐까지 무사히 찾고 드디어 숙소로 출발.




마지막 날에서야 찍은 호텔 문 앞



 내가 묵었던 호텔은 'The Royal Cambridge Hotel' 신기하게도 아직도 있다. 검색해보니 내부 인테리어는 조금 바뀐듯. 이때는 진짜 스마트폰도 어플도 없이 지하철역에서 주는 종이 튜브맵 하나도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는 혹시 잃어버릴까봐 지하철역에 들어갔을 때 있으면 하나씩 튜브 노선도를 챙겼었는데 그게 아직까지 신기하게도 남아있더라. 역시 수집병.


아직 남아있는 2007년판 튜브 노선도


 우리의 첫 숙소는 패딩턴(Paddington)역. 다행이 4개의 노선이 연결되는 역이라서 많이 갈아타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갈아타야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처음 조우한 영국의 자그마한 튜브. 물론 거기까지 가기에도 여러 번의 난관이 있었다.



 1차 난관은 티켓. 당시에도 영국에 오이스터 카드가 있었는데 - 찾아보니 2003년부터 사용됐다고 - 사전에 한국에서는 정보가 많이 없었다. 사실 교통카드를 쓰는 입장에서는 비슷한 시스템인데도 이상하게 너무 낯설어서 애초에 준비단계에서 포기하고 당시에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이 알려준대로 우선은 한 번 이용할 수 있는 싱글티켓을 구매했다. 구매하는데도 기계 앞에서 한 참을 어버버버 됐지만, 어쨌든 간신히 4파운드(당시 기준)에 숙소까지 가는 티켓 구매. 런던의 튜브는 존(zone) 개념으로 나눠져 있는데 가장 안 쪽부터 바깥쪽까지 1~6존이었고, 관광지도 많은 곳은 1,2 존이었는데 다행이도 숙소가 2존에 걸쳐 있어서 이후에 끊어서 돌아다닌 1,2존 원데이 티켓을 사도됐지만 히드로공항이 6존에 있어서 우선 싱글티켓 구매해서 이동.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낑낑, 튜브를 탔고 다행이 공항에서는 잘 탔는데 Earl's Court역에서 문제 발생. 우선 1차로 좌우가 헷갈려 열차를 잘못 탐. 다행이 출발하기 전에 알아서 후다다닥 내려서 이번에는 반대편에 오는 열차를 탔는데 이게 도대체가 무슨 노선인지 모르겠는거다... 우리나라처럼 각 호선마다 타는 장소가 다른게 아니라 한 플랫폼에 다양하게 들어 오는 열차를 잘 구분해서 타야하는데 도대체가 앞 모습이나 옆모습으로는 구분이 잘 안돼서 우리는 늘 타서 내부에 있는 노선도를 확인했다. 그러면 그 열차가 무슨 라인인지 알 수 있어서 종종 이용함. 물론 출발하기 전에 재빨리 다시 내려야 할 수도 있음. 물론 처음에는 이렇게 여유롭지 않아서 진짜 타서도 놀란 토끼마냥 고개를 휙휙 돌려보니 다행이도 패딩턴 역에 가는 써클(Circle)라인이었다. 지금이야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으면서 쓰지만 그 때는 진짜 진땀을 뻘뻘흘렸다. 거기다가 우리에게는 옵션으로 25인치 가량 되는 캐리어가 딸려있었으니까.




 역에서 내려서는 다시 또 멘붕. 계단이 너무 높았다. 여행하는 내내 캐리어가 너무 무겁고 잘 포장되지 않은 유럽 도로를 끌고 다닐 때 너무 소리가 많이 나서 아, 배낭을 가지고 왔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캐리어를 들고 갔던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나의 저질 체력에 배낭까지 메고 다녔으면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없었을듯. 그리고 나중에는 캐리어를 어떻게 하면 잘 들고 다닐 수 있는지 요령을 알아서 쉽게 들고 다녔는데 이 날은 첫날. 아무런 요령도 없는 그런 첫 날이었다.



 계단은 높고 캐리어는 무겁고 이미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잠시 숨을 고르고 계단 위를 쳐다보고 있을 때, 지나가던 남자분이 나에게 다가오니 캐리어를 드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응? 하고 있는 사이 그 분이 내 캐리어를 들어서 계단 위에 올려다 주고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도 않고 가버렸다. 헐, 대박. 감동의 눈물.



 다행이도 여행을 하는 내내 모두 다 내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종종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작은 소품이지만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인종차별 비슷한 것을 당하기도 하고, 이상한 호객행위에 위협도 당해봤지만 그래도 이렇게 캐리어를 들어 주던 사람, 침대 기차칸에서 만난 유쾌한 이탈리아 노부부, 샤갈 미술관을 찾아 헤맬 때 만났던 프랑스 할머니 등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기억이 있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것 같다.


사진에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공사 중인 건물도 있었음...


 구글맵은 무슨, 종이 지도를 보면 역에서 나와 숙소 가는 길을 찾는데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은 비포장, 캐리어는 무겁고 설상가상 숙소는 대로변에 없어서 둘이 번갈아 가면서 여기저기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혹시나 잘못된 길일까 친구가 나에게 캐리어를 맡겨놓고 혼자 뛰어가서 확인하고 와서야 우리는 생각보다 작은 호텔을 만날 수 있었다. 4일간 우리의 집이라고 불렸던 이 곳. 하지만 아직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는데.




 부끄럽게 첫 인사를 건네고, 어색하게 내민 우리의 바우처를 한참을 쳐다보던 리셉션 직원. 이것저것 살펴 보던 직원은 우리에게 난처한 얼굴로 뭐라고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정말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확하게 들린 단 한마디. 'No Booking' 네? 뭐라구요? 여기서 노 부킹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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