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시내 - 사진찍기과와 눈에 담는 것의 중간쯤에서.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홀린듯이 티켓을 끊고 런던아이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런던에서는 자주 짐검사를 했는데 우리 가방을 검사하던 직원분의 키가 어찌나 컸는지 친구랑 나는 돌아서서 키 얘기만 했다. 나는 사다리에 올라선 줄 알았어, 야 나는 그 홍보하시는 분처럼 뭘 밟고 올라간 줄. 그게 뭐라고 까르르 웃으며 떠들다가 동그란 원형 런던아이에 올라탔다. 어?생각보다 크다? 친구랑 둘이 타는 관람차 사이즈인줄 알았는데 10명이 넘는 인원이 탔고, 예상보다 천천히 돌아가는 런던아이 안에서 나는 미친듯이 온갖 것을 사진을 찍어댔다.
지금 보면 화질도 좋지 않고 도대체 저런걸 왜 찍었지? 싶은 것들도 가득가득. 지금도 여전히 사진을 찍히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찍는 재미를 알았는데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이 그저 사진을 남겨야한다는 일념하에 블로그에 하나 올릴 수 없는 사진만 가득가득.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으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랑 사진찍어서 뭐해, 자기 눈으로 보는 게 제일 중요하지. 둘 중에 무엇이 정답일까? 극단적인 두 가지 여행을 해 본적이 있다. 이 유럽여행때는 기록을 남기고자는 의무감에 미친듯이 사진을 찍었다면 20대의 끝자락에 갔던 미국은 단체여행이다보니 지켜야 할 룰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사진은 거의 안 찍었다. 원래 사진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유럽여행에서의 사진은 약간의 숙제 같았다. 그래서인지 사진의 퀄리티도 좋지 않고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도 고민이 없었으며 여행 후반부에 가서는 숙제를 미루는 아이처럼 그마저도 귀찮아하며 최소한의 기록만 남겼다. 미국에서는 나름 여행을 자유롭게 즐겼다. 물론 단체여행이고 마냥 놀러간게 아니라 신경쓸 것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기록을 남긴다는 면에서 자유로웠다. 매일 밤 카메라와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밀린 일기를 쓰지 못해서 졸린 눈을 비비지 않았다. 물론 그럴 수도 없었고.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예상보다 매우 즐거웠고 포인트 레이어스의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정말 아름다웠다. 물론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이러면 카메라 대 눈의 싸움은 눈이 완승이라는 결론이 나지만 사실 여전히 내가 곱씹으며 추억하는 것은 그나마 최근인 미국여행이 아니라 10년도 넘은 유럽여행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여전히 내 SNS에는 유럽, 치앙마이, 상해의 사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각각의 여행이 차지하는 추억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럴 때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사진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절실히 공감하게 된다.
어쨌든 아직은 시행착오가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눈과 카메라의 적절한 중간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결정한 것은 인생샷에 내 여행의 목적을 걸지 않는 것. 내 모습보다는 내가 담은 모습을 찍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여행을 하고자 한다.
다시 13년전 -2020년이 되었으므로- 으로 돌아가 보자면 런던아이는 생각보다 천천히 돌았고 나는 사진을 찍다찍다 지쳐서 중간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서 천천히 바깥을 둘러 보았다. 템즈강, 언젠가 가봐야지 생각했던 런던의 모습에 항상 그려져있었던 빅벤. 진짜 런던이구나 하는 모습에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러면서 우리 칸이 아닌 옆 칸에서 여유롭게 바깥을 둘러보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마음이 이상해졌다.
런던아이를 타고 내려와 다리를 건너가는 길에 빅벤의 종소리가 들렸다. 어! 이 소리 듣고 싶었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걸음을 재촉했디만 야속하게 종소리는 세 번만에 끊어졌다. 어? 원래 이 소리는 이렇게 짧았나?
그 뒤로 런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런던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계속 만났다. 빅벤도 보고 국회의사당도 보고, 웨스터민스터 사원도 봤다. 거대하면 섬세하지 못할 것 같고, 섬세하면 거대하지 못할 것 같은 나의 좁은 시야와 소견과 반하게 위압감과 웅장함을 자랑하는 건물들은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들을 자랑했다. 감탄하면서도 그런데 그래서? 라는 의문들이 계속 내 앞를 가로 막았다.
그리 넓지 않은 런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길도 엄청해멨다. 지금이야 각종 지도 어플이 알아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주지만 그 때는 그저 가이드북의 설명에 따라서 이리저리 헤매고 부딪히며 몇번이고 트라팔가 광장을 잘 못 찾았다. 버킹엄 궁전 앞에 선 나는 여기에 뭐 하러 왔더라.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해서 일지도 모르고, 원래 불만이 많은 염세주의자 여서 일지도 모르고, 좀 좋게 포장하자면 지극히 실용성과 현실성을 따지는 현실주의자였을지도 모르고. 높은 곳에서 런던을 바라보며 두근거렸던 감정이 채 몇시간 가지 않고 착 가라앉은채 나의 마음을 똑똑 두드렸다. 너 뭐하러 왔니?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여행. 너무나 오고 싶던 영국. 거의 반년을 매달려있던 여행준비. 그래서 이 곳에 와서 뭐하고 싶은거야? 나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가이드북이나 따라서 쫓아다니는게, 사진만 어마어마하게 남기는게, 네가 생각한 여행이었어?
사실 나는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명확한 대답은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때 내가 했던 다짐은 정확히 기억한다.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야지. 사실 내가 그 다짐을 잘 실행하고 있는 줄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미묘한 차이 속에서 오늘도 여행을 한다.
아직 시차 적응도 되지않은 그 날, 내가 꿈에 그리던 유럽 배낭여행의 첫도시 영국 런던에서, 다짐했던 그대로. 오늘 하루도 여행자로 살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한 층 가벼워진 마음을 앞두고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발을 옮겼을 때, 톡톡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나 우산이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