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그미 Nov 21. 2024

오늘도 책을 샀다

읽지 않고 집에 쌓이는 책은 늘어만 간다. 오늘도 책을 샀다. 흔히 하는 짓이다.

책을 사고 읽지 않은 채 책장의 무게만 늘리는 건 오랫동안 해온 짓이었는데, 오늘은 왜 이토록 자조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을이라 그런 거라고 괜히 계절 탓을 해 본다.

이토록 은행잎이 선명한 노랑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단풍이 반가우면서, 심술이 나는 것인지, 뭔지.


올해 여름에는 여수를 여행했다. 뜨겁고,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고생스러운, 고된 여행이었다. 마지막 밤의 저녁식사를 맛집 음식으로 장식하려고 선어횟집에 갔다. 포장을 주문하고, 건너편에 작은 서점 간판이 있어 그곳을 구경하러 갔다. 남편과 아이들이 주차할 자리를 못 찾아 차에 갇힌 채 길을 뱅뱅 돌고 있고, 음식은 10분이면 포장을 마친다고 하고. 그 짧은 겨를에 잠깐 들어간 책방은 아담한 독립서점이었다. 오랜만에 눈물겨운 울컥함이 느껴졌다. 내가 사랑한 세계. 문장과 사유의 세계. 인간이 이룬 사색의 숲. 책, 나무의 나이테를 잘라 펄프를 만들어 다시 인류의 나이테를 남겨 놓은 사물. 그걸 생각할 때마다 감격에 겨워지는 것이 오랫동안 나의 일이었다. 다시 감탄할 줄 알게 된 나를 의식하면서, 잠시 회복을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책장에 꽂힌 책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설렘이 있었다. 언제나 느꼈던 그것을 언젠가부터 잃었다. 그 설렘이 잠시 돌아와 나를 스치고 갔다. 죽어버린 사랑이 잿더미 속에서, 얼결에 빛을 다시 본 것만 같았다. 결국 책 한 권을 샀다. 서점 주인장께서 책 소개를 위해 손글씨로 써 붙인 메모마저도 소중했다. 그 책은 여행에서 돌아와 순식간에 읽었다.


수시로 책을 샀다. 주말, 병원에 갔다가 같은 건물에 있는 서점에 들르면 책 한두 권이나 문구류라도 조금 사곤 했다. 책은 돈 새는 구멍이지만 막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어린 시절에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생각나 중고 책거래로 전권을 샀다. 가벼운 걸음으로 나간 자리에서 받은 책은 꽤나 무거워서, 평소엔 탈 필요 없던 지하철도 타고, 책을 껴안고 걷거나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책을 사서 책장 위에 쌓아놓은 밤, 기대와 허탈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이미 사 두고 몇 년째 묵히는 책이 많고, 선물 받아 묵히는 책도 많은 터라, 이번에도 읽지 못하고 책장만 채우고 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덜컥 앞섰다.

아이들과 자다 불현듯 깨는 밤이나 새벽, 주로 유튜브를 보거나 웹소설을 읽지만, 그게 싫은 어느 날이면 삼국지를 읽는다. 이대로 10년이 걸린들 어떠랴.

다 읽지 못한다고 한들 새삼스럽지 않고, 다 읽는다고 한들 그것 또한 없던 일이 아닌 바. 하던 짓을 반복했을 뿐인데 그게 왜 갈수록 아무러한 일이 되어가는 것일까.


남편과 다투고 집을 뛰쳐나갔다. 혼자 순대에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목적 없이 걷다 결국 서점에 갔다. 이날은 사랑에 관한 책을 두 권 샀다. 한 권은 <구의 증명>이었다. 터덜터덜 돌아온 집은 고요했다. 취한 채 시작한 독서가 쉽게 끝났다. 문장에 빨려 들어가 다른 이들의 사랑에 머리를 처박고 나니, 머리는 후련하고 가슴 더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아름다운 글이었고, 아주 씁쓸한 독서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자주 평했지만, 지금만큼 내가 무엇을 실패했는지 느끼게 된 적은 없었다는 걸. 나는 글을 쓰고 싶어 했어도 성실하게 정진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야를 지속한 문장은 내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반열에 오른 이들의 문장을 감탄하면서, 앞으로도 동경과 부러움과 질투를 번갈아가며 지속할 범부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는 끔찍한 전망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실은, 어떤 문장에도 감탄하지 못할 때가 가장 끔찍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쪼개진 채로 살아왔다. 알고 있었지만 때때로 이 쪼개진 부분이 홧홧하게 아팠다. 올해 들어 자주 그랬다. 한때 자책과 냉정한 자기비판은 나를 낮추는 동시에 반대로 상승을 위해 추동하는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어떤 동력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자책이 아닌 자괴가 쉽고 빠르다. 자괴는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불러오고, 돌이킬 수 없는 사실과 기억의 아픔과 자괴감은 선명하고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나는 매일 붕괴하고 매일 그 붕괴에서 허덕이며 돌아온다. 나는 늘 붕괴하는 중이고 늘 지탱하는 중이고, 재생을 꿈꾸지도 않고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별일 없이 시간이 지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책을 읽고 내가 사랑했던 지의 세계를 다시 사랑하고 싶어질 때, 붕괴의 고통은 돌아온다. 나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연속시키는 것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을 그만두지도 못한다.

이제는 읽어야 구원받는지, 써야 구원받는지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황폐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게 살다 조금 체한 것 같다.


오랜 친구들과 거리를 걷다가, 작은 입간판에 끌려 다 함께 서점에 들어갔다. 아담하지만 꽤 넓은 그 서점에서, 시와 평론과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무감하면서 동시에 유감스러웠다. 독립서점은 사유의 가드닝과 같아 보였다. 자기만의 작은 뜰에 자신이 좋아하는 화초를 심고 가꾸듯, 독립서점마다 주인장이 사랑하는 세계, 정보, 사유가 그의 뜰을 채우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줄 알겠는데 쉽사리 욕망할 수 없었다. 나는 욕망해선 안 된다는, 스스로 걸어놓은 듯한 금기가 거슬렸다.

그 사랑스러운 서점은, 출입구에 깨끗한 유리병을 두고, 그 안에 두루마리를 여럿 넣어 두었다. 작은 두루마리마다 시가 한 편씩 적혀 있다고 했다. 책은 구입하지 않았으면서도, 시 한 편을 골라 왔다. 풀어본 두루마리에는 처음 보는 시인의 낯선 시가 적혀 있었고, 짧은 시는 나를 조그맣게 진동케 했다. 내가 사랑한 아름다움의 세계는, 나와 점점 더 먼 곳으로 가고 있지만, 그 시는 여전히 내 책상 위에 돌돌 말린 두루마리로 머무르고 있다.


오늘은 친구가 서점에 간다는 소식에 얼떨결에 따라나섰다. 불쑥 건넨 연락으로 별안간 이루어지는 만남은 참 오랜만이다. 친구가 먼저 자리 잡고 앉아있던 그곳은 카페를 겸하는 독립서점이었다. 한때 익숙했지만 이제 먼 것이 된 세계에 나는 다시 접속했다. 서가의 책 제목을 뚫어져라 읽는 데만도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어떤 책은, 예전의 나였다면 당장 집어 들었으리라 싶게 제목이 잘생겼다. 오래도록 책 제목들을 읽으면서 이제 나는 책에게서 뭘 얻고 싶은지, 왜 그 좌절과 단절을 넘어서 다시 책을 읽고 싶은지, 이 책들은 도대체 다 무엇이고, 이 책들이 주는 설렘과 부담감은 어디로 날려 보내야 하는지, 헛되게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책을 샀다. 또 사고 말았다. 쓸데없는 짓이지만, 이게 나다운 짓이어서 별 수 없었다. 다 읽지 못한대도 여전히 내 절망이나 자괴감 따위와는 상관없을 것이다. 그런 불성실함이야말로 나의 본질에 가까운 것 같아서, 조금 머쓱하긴 해도, 별 상관없을 것 같다.






keyword
목요일 연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