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에게 와서 울어라

by 비움


"다미야, 단무가 밖에서 운다. 문 좀 열어줘~"

단무(반려묘)는 언니 방문 앞에 앉아 문을 올려다보며 연신 니야옹거렸다. 문을 열어 달라는 표현이다. 문이 열리지 않으니 단무는 계속 운다.

"다미야, 문 좀 열어~ 단무 들어가게 해 줘"

문밖에서 처량하게 우는 단무가 안쓰러워 대꾸 없는 아이를 한 번 더 크게 부르며 아이의 방문을 열어 주었다.

"엄마, 나 좀 부르지 마 바쁘니까!"

난데없이 아이는 화를 내며 문을 닫는 것이었다. 딱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 보였다. 얼굴이 평소와 달리 조금 경직된 모습이다. 내심 뜨악해서

"응 알았어"

하고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 있나? 뭐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되었다. 한참 후 딸은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어딜 가느냐고 했더니

"말 시키지 마, 바쁘다니까."

하고 휙 나가버렸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부모로서 무시당했다는 생각보다는 별일 없기를 바랐다.


지금은 아이들이 내게 신경질을 부리고 화를 낸다고 해서 덩달아 열이 나지는 않는다. 예전의 나 같으면 '엄마를 뭘로 보고 예의 없이 구는 거야' 하는 생각에 꽂혀서 한 소리 하며 목소리를 높였을 것이다.

2~30대의 나는 송곳처럼 예민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예절교육이 중요하다 생각하여 아이들이 대들거나 말대꾸하는 걸 못 참아했다.

우리 부모님은 구세대로 가부장적이어서 자녀들에게 '앉으라 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부모에게 순종한다고. 나도 그리 교육받고 자랐다. 그 영향이 커서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나도 내 부모와 같이 권력으로 아이들을 훈육했다. 체벌을 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하고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투덜거리지 못하게 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으나 아이들이 신경질을 내거나 부모에게 함부로 한다 싶을 때는 여지없이 억압적인 태도가 나왔다.




나의 5남매 형제들은 유순하고 부모님 말씀에 군말이 별로 없다. 순종을 잘하고 모두 효성스럽다. 이런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부모님이 우리에게 했던 가정교육의 방법을 똑같이 내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권위적인 교육의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완고한 태도로 억압하면 자녀들은 겉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척해도 마음으로는 반발심이 생긴다. 부모의 말과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권위에 눌려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둔다. 아이들은 점점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진짜 중요한 일들에 대하여 입을 다문다. 부모에게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비추지 않으며, 말이 통하는 타인들에게로 마음을 돌린다. 때로 어떤 아이는 다른 곳에 마음을 토로할 데가 없으면 방황하며 심적 고통으로 삶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나도 부모에게 진짜 마음 깊숙한 비밀이나 아픔, 슬픔에 대하여 진정을 토해본 적이 없다. 어려운 일은 의논할 수 있었으나 마음속을 털어놓는 일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아이들이 성인이 다 된 이 시점까지 말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평생 애쓰셨던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친밀하게 가까이 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예의를 지키고 자식 된 도리를 다하려 노력하나, 그것은 부모를 부모로서 존대하는 것이지 허물없이 소통하며 지내는 것과는 달랐다.




내 아이들이 나와 내 부모 사이처럼 되는걸 원치 않는다. 부모로서 존대함과 존경을 받지는 못해도 아이들에게 편안한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칼바람이는 삭막하고 험난한 세상이기에 부모인 나에게라도 투정을 부리고 화를 내며 짜증을 내라고 하고 싶다. 그리한다고 아이들이 막돼 먹거나 부모를 무시하거나 못된 아이들이 되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마음을 풀어놓고 속상한걸 자유롭게 말하고 울기도 하며 짜증도 부리기를 바란다. 사람과 삶에서 상처 받은 아이들의 영혼이 내게서 위로받기를 원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불안하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되었으면 한다.

아이들 어릴 때에 지금처럼 해 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하다. 그때는 나도 어리고 마음이 좁아서 부모로서 존대받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행여 무례하여 욕이나 먹고 사회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으로 자라게 될까 노심초사했었다.


둘째 아이는 말썽 없이 제 할 일을 잘 해내는 아이라 양육하면서 크게 꾸짖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아이와 부딪힐 때가 있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거나 화를 내고 대들면 나는 그러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권위로 막곤 했다. 그럴 때 아이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억울하여 그렁그렁 두 눈 가득 눈물을 담고 입술을 꼭 깨무는 것이었다. 아이를 그토록 억울하고 슬프게 했던 게 가슴 아프다. 얄팍하여 새가슴만큼 옹졸하고 작았던 내가 어리석어서 밉다. 아이가 어리던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말하고 싶다.

"엄마에게 화를 내렴, 얼마든지 너 하고 싶은 말을 하렴, 미안하다, 네 마음 받아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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