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자격증 시험 합격했어!"
10여 일 전에 '투자자산운용사 시험'에 응시했던 둘째 아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 대박!! 나 이거 3주 공부하고 붙은 거야 엄마~"
시험을 보고 와서는 턱걸이를 하든지 떨어지든지 할 것 같다고 하더니 여지없이 붙어버렸다. 아이는 시험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 갑자기 자격증 시험을 보겠다고 책을 구입했다. 책 중에는 두께가 일반 책의 두배 이상 되는 책도 있었고 문제풀이서와 내용이 눈이 휘둥그레지게 방대했다. 모두 5권이었다. 나는 잠깐 들춰보고 머리가 하얘져서 덮어버렸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뭔 내용인지 알지 못해 눈이 어지러웠다. 5권의 책을 3주에 걸쳐 다 공부를 한 것이다. 중간고사가 겹쳐있는 기간에 말이다.
나는 아이의 공부 방식이 궁금했다. 전에는 열심히 하나보다, 노력하나 보다 했었는데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중 고등학생 시절 아이가 공부하는 걸 옆에서 보면 그냥 평범해 보였다. 기억에 남는 건 끈질기게 한다는 생각, 시험 때는 밤이고 낮이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집에서도 했지만 독서실에 가서 혼자 공부를 했다. 아이는 졸고 자면서 할지라도 책상 위에서 내려오지를 않았다. 오죽했으면
"다미야, 그만 하고 잠 좀 자라"
라고 오히려 공부를 만류하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수학 과목을 어떻게 하는지 학원을 안 가도 할만 한 지 염려가 되었다. 내가 학창 시절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수학이어서 아이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아이는 우직하게 문제집을 풀고 학교 공부에 충실했다. 수업시간 정리한 노트를 중심으로 공부했고 교과서를 성실하게 활용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암기를 해버리기도 했다. 특히 영어 같은 경우는 교과서 본문 수십 페이지를 통째로 외우기도 했다. 암기하고 잊어버릴지라도 말이다. 수학은 우직하게 교과서 문제를 풀어보는 방식이었다. 시험 전날 늦게까지도 쉼 없이 뭔가를 보고 읽고 하였다.
특이한 점이, 아이는 목표한 성적이나 원하는 지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내는 것이었다.
영어 발음과 말하기가 서툰 아이는 토킹 시험을 앞두고 나에게 부탁을 했다. 나도 그리 좋은 발음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원하니 내 음성과 발음으로 녹음을 해 주었다. 그것을 듣고 외우며 시험을 보았다. 중학생 때는 미술실기를 하는데 바쁜 나를 붙들고 자기 그림을 그리는 걸 돕게 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밑그림을 그렸지만 채색이 서툴다고 도와달라는 것이다. 어찌하든지 점수를 잘 받아야겠다는 집념이 대단했다.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닌 아이는 자신이 필요하다 싶으면 엄마의 도움, 친구들의 도움을 적극 구해서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
대학에 자기소개서를 넣을 때도 한 달을 꼬박 아이에게 붙들려 자소서 쓰는 것을 도왔다. 아이는 마음에 안 들면 수정하고 또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지겹지도 않은지 그 지난한 과정을 수십 번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의 진학 담당 선생님께 부탁해서 멘토링을 받기도 했다. 지원한 대학이 4곳이었는데 각 대학의 자소서 쓰기의 형식이 달랐다. 지원하는 과에 맞게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내용도 많아서 나조차도 엉덩이에 땀띠가 날정도로 힘들었다. 아이는 자신의 수준보다 상향지원을 했기 때문에 더욱 잘 쓰고자 했다.
다미는 자격증 시험을 봐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넌 진짜 놀랍다. 머리가 너무 좋은 걸까 운이 좋은 걸까?"
나는 학교 시험이든 자격증 시험이든 매번 시험 성과가 좋은 아이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아이는 말하기를
"엄마, 나는 머리가 좋은 거 아니야 노력하는 거지! 그리고 시험 때는 엄청 집중해서 요령껏 전략적으로 하는 거야, 저걸 다 볼 수는 없잖아!"
했다. 아이는 고등학교 3년 안에, 아니 2년 반도 안되어 학교에서 실시하는 모든 자격증 시험에서 합격하였다. 학교와 학년 내에서 다미 같은 가시적 성과를 거둔 아이가 드물었다. 고교 때 따놓은 자격증만 해도 컴퓨터 활용, 워드, 회계 등 내가 일일이 다 알지도 못하는 자격증이 10여 개가 넘는다. 오죽하면 자격증을 배달해주시는 분이 그런 말을 했다.
"이 집에다 자격증 배달해주러 오기 바쁘네요. 누가 이렇게 자격증을 딴답니까?"
투자자산운용사 시험 전 아이는 거의 3주 정도를 스터디 카페에서 살았다. 밤에도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아서 염려를 하기도 했다. 밤낮 책상에서 공부하다 엎드려 자다 했을 것이다. 신기한 건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어쩜 그렇게 시험을 잘 보는지, 성적이 좋은지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간섭해 본 적이 없었고, 열심히 하라고 압력을 가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무심한 편이었다. 당시 내가 딛고 서야 할 현실이 너무나 척박했기에 그랬다. 사느냐 죽느냐 하며 살던 시절, 아이들 성적이나 공부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을 공부나 성적으로 닦달할 마음도 있었다. 당장은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못 느낀다 해도 필요를 느끼면 스스로 하리라 생각했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둘째 아이는 정말 그렇게 했다. 아이는 자기가 목표한 대학 중 한 곳만 빼고 세 곳에 모두 붙었고, 그중에서 원하는 대학, 가장 비전 있는 과를 골라 마음껏 공부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학 공부 외에도 중간중간 원하는 공부를 추가로 더했고, 학원을 끊어 어학공부도 했다. 또 운전면허나 그 외 필요하다 생각되는 자격증 공부를 하며 하나하나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다.
나의 아이이지만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꿈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사는 아이, 원하는 목표는 이루어내고야 마는 아이, 브라보를 해주고 싶다.
"다미야, 엄마가 한 턱낼게~ 우리 딸 합격 축하 선물~"
"음~ 닭발이 먹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