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믿어

by 비움

막내인 아들은 엄마 의존형이었다.

가정 불화의 원인도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내가 워낙 예뻐한 일도 한몫했을 것이다. 막내라서 뭘 해도 안쓰러워 보이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 내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섰다. 막내를 대함에 있어서는 엄마로서의 이성이 조금 마비되는 게 늘 있었다. 막내에겐 나의 사랑과 이성이 동등하게 공존하지 않았다. 사랑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조금 물러나 있어야 하건만 그러지 못할 때가 빈번했다. 이를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않는다. 가정 분위기도 안전하지 않은 데다 나까지 아이에게 냉정하게 하면 아이가 마음을 둘 데가 없을 것이기에 그랬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상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취하는 모성애적 행동이었다.


요새는 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쁘다.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잔다. 자고 깨는 시간을 나의 간섭 없이 어김없이 잘 조절하는 걸 보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게임이나 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살 때는 아무런 규칙도 없이 사는 것 같더니 일을 하게 되니 행동이 확 달라졌다.

작년부터 아이에게 용돈을 거의 주지 않았다. 코로나로 접어들면서 휴학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용돈을 벌어 쓰라는 취지였었다. 아이는 그때부터 어떤 식으로든 자기가 쓸 돈은 조달해 썼다. 정 없으면 어쩌다 한 번씩 나에게 손을 벌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을 인색하게 주었다. 아이도 이에 대해 불만은 없었다. 올해는 군대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지라 아르바이트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달라고 하지 않으면 나도 용돈을 주지 않았다. 은둔해 살다시피 해서 아이도 돈 쓸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군문제가 해결되고 아이는 다시 조금씩 생활에 의욕을 찾았다. 두어 달 엉거주춤 자기 방에서 꼼짝없이 뭉개고 살더니 밖으로 기어 나왔다.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돈이 궁해진 모양이다.




아이가 때때로 부엌 선반 동전통을 뒤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장보고 남은 잔돈을 모아놓은 통인데, 담배 살 돈이 부족하면 그거라도 꺼내가는 것이었다. 딱해 보여서 용돈을 줄까 하다가 모른척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최소한 자기 생계는 유지할 수 있는 독립심은 길러주어야 하겠기에 마음을 쓸면서 눈을 감았다. 성인이 되면 최소한 자기 필요의 돈은 스스로 조달해 쓰라고 아이에게 전부터 종종 말해왔다.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아들은 왜 용돈을 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일이 없었다. 이제 궁핍함이 극에 달한 건지 아이는 스스로 방문을 차고 나와서 아르바이트를 갔다.


올해까지는 옷이나 신발, 양말 같은 것은 다 사주었다. 하나 내년부터는 끼니 외에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는 이 말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내년이 되기까지 한 달여 남짓 남았을 때부터 아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 자기 필요용품을 사고 있었다.

"엄마, 스킨로션을 사야겠는데"

"다 떨어졌니? 쇼핑몰에 가입해서 사든 지, 화장품 가게에 가서 골라보렴, 요새는 어느 가게엘 가도 여성, 남성용 화장품을 어려움 없이 구입할 수 있더라"

자기가 번 돈으로 스케일링을 하고, 옷도 사서 입고, 화장품도 사고, 기특해졌다. 마냥 어린아이 같기만 하던 아이가 진짜 성인이 되어가고 있다. 독립심 있는 아이들은 이미 스스로 하고 있을 일이지만 아이는 이제 조금씩 걸음마를 하는 중이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느리다 생각하기에 뭘 못한다고 재촉하지 못했고, 여리다 생각하기에 단호하게 밖으로 내몰지 못했다. 조금씩 필요에 대한 공급을 줄여 엄마를 의존하는 것들을 벗어나도록 돕는 중이다.

이 아이는 자기의 때를 따라 자기 방식으로 삶을 경영해가리라 믿는다. 희한하게 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이 아들을 믿었다. 사랑하기에 아이를 믿는 마음이 생긴건지 어떤건지는 모르겠다. 아이가 객관적으로 우월하거나 좋은 성과를 내며 사는 건 아니었지만 아니 그 반대였지만, 그저 잘 살아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기 몫은 하리라, 자기 삶은 책임지고 살아내리라는 마음 깊은 곳의 신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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