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단무
단무는 내가 일어나는 새벽이면 내 방 앞으로 와서 문을 열어달라 미야옹 거린다. 언니와 함께 자다가 귀신처럼 일어나 나에게로 온다. 단무는 우리 집 반려묘이다. 데려온 지 1년 3개월쯤 되었다. 스코티시폴드종으로 작은 두 귀는 레이스 자락 같고, 핑크색 장미 꽃잎인 양 사랑스러운 코와 입, 오통통한 네 다리, 너구리인 듯 다람쥐인 듯 짧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졌다. 노랗고 복슬복슬한 줄무늬 털, 구슬같이 맑고 동그란 두 눈이 예쁘게도 박혀있다.
1년여를 넘게 같이 살아온 이 아이는 이제 나에게는 자식처럼 여겨진다. 말만 못 할 뿐이지 의사 표현은 사람 못지않다. 요새는 세밀하게 싫고 좋음의 표시를 의성어로 하는데 신기해서 죽겠다. 그 소리들은 상황마다 제각각 다른데, 좋으면 내는 소리와 싫을 때 내는 소리가 확연히 구분이 된다. 소리의 톤과 높낮이, 길게 내는 소리, 짧게 내는 소리, 사람처럼 응? 흠, 하는 감탄사가 기가 막히다. 기분 좋을 때 음을 길게 끌며 낮고 허스키하게 '미야오' 하는 소리, 아프거나 못마땅할 때 내는 신경질적인 음성, 새침해서 짧게 툭 떨어뜨리며 내는 '음'하는 소리 등 이제 우리 식구들은 단무의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기분이나 상태인지 단번에 안다. 처음 와서는 경계도 하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더니 요즘은 웬만한 소리에는 끄떡도 없다.
단무는 종종 글을 쓰는 내 책상 위에 누워 세상 편하게 잔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대는 소리에도 눈 하나 꿈쩍 않고 태평하다. 낮잠은 언니가 없는 방에 들어가 식구들 방해 없이 자기도 하지만 내 방에 와서 잘 때도 있다. 사람이 들락거리고 부스럭거리며 자판을 두드리거나 펜을 쓱쓱 긋는 소리, 방송이나 강의 소리들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 걸까? 동물은 사람보다 청각이 훨씬 예민한데 말이다. 단무는 이렇듯 소음들이 자욱한 곳에서도 귀여운 콧소리를 내며 잘도 잔다. 가끔씩 눈을 떠서 정황을 살펴보기는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다람쥐처럼 몸을 말고 잘 때도 있으나 하얀 배가 천정을 향하게 벌러덩 누워 사람처럼 대자로 자기도 한다. 짧은 두 발을 세상 편하게 쩍 벌리고 손은 인형처럼 앞으로 반을 접어 모아 누워있을 때는 영락없는 아기다. 동글동글한 눈망울을 굴리며 내가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을 바라보는 모습이 진짜 살아있는 인형이다.
처음에는 종종 난데없이 물기도 하더니 요새는 거의 그런 습관도 없어졌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물고 잡으려는 고양이의 습성을 파악했기에 자극하는 행동을 삼가는지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나 확실히 처음보다 단무는 덜 예민하다. 사람이 사랑해서 예뻐하는지 아닌지를 파악한 것이다.
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스러우면 뽀뽀를 자주 하는데 단무의 작은 얼굴이 뽀뽀 자국으로 얼룩질 정도이다. 뽀뽀가 싫다고 도망갈 때도 있으나 때론 안아달라 칭얼대기도 하고, 책상에 올라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벼대며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하루에 단무를 부르는 횟수가 100번은 족히 더 될 듯하다.
이래서 반려동물이라고 하나보다. 단무를 키우기 전에는 동물을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물질과 공간, 시간 등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가? '그럴 돈이 있으면 기부나 하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단무에게 사랑을 주고 있지만 사랑할 때의 포근한 감정은 사랑받는 단무보다 오히려 내게 더 유익한 것 같다. 종종 식구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감정이 상할 때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기름을 발라주는 역할을 단무가 한다. 가령 남편과 대화를 하다 서로 간 의견 충돌이 있어서 기압이 올라가면 단무에게로 슬쩍 시선을 돌린다. 둘 중 하나가 '단무가 어떻다, 단무 좀 봐'라고 말을 하면 긴장이 쑥 내려가는 걸 본다. 부부가 다툴 때, 서로의 관심과 사랑의 존재인 아이가 있으면 거친 말이나 행동에도 수위가 낮아지듯이 말이다.
단무에게 밥을 챙겨주고 간식을 먹여주고 안아주고 털을 빗겨주고 발톱을 깎으러 가고 하는 일들이 번거롭고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단무로부터 얻는 기쁨이 그보다 훨씬 더 많아서 치다꺼리가 괴롭지 않다.
단무로 인해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가엾고 사랑스럽다. 동물을 함부로 죽이고 학대하고 잡아먹는 세상이 안타깝다. 나도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채식만 할 수도 없지만, 동물을 죽이는 현장을 내 눈으로 보지 않으니 모른 체하고 먹고는 있지만, 이렇게 동물을 먹어야만 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반려묘와 살아보니 생김새와 종이 사람과는 다르기는 해도, 이들도 사람과 똑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이들은 키우는 반려동물이라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일원이라 해야 맞을 듯하다. 나는 뒤늦게 늦둥이를 하나 더 얻은 것이다. 단무는 애완동물이 아닌 소중한 나의 아이이다.
"단무야 오래오래 엄마랑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