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는 사람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으면 밋밋한 삶에 종종 생기가 차오른다. 나에게 둘째 아이 다미는 그런 딸이다. 이 아이는 내가 온통 입 안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모자라는 아이다. 자식 자랑은 우습고 바보 같지만 때론 하고 싶다.
아이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자니 아이 어린 시절부터가 모두 뒤범벅되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진다. 첫째 아이를 낳고 4년여의 텀을 두고 둘째를 낳았다. 결혼 초부터 시댁과의 갈등을 겪었던 나는 첫아이를 낳은 후 얼마 동안 우울증을 앓았던지라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자 다시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둘째를 낳고 보니 어찌나 생김 생김이 예쁜지 이름을 다미(多美)라 하였다. 만사에 예쁘게 살라는 의미도 담았다. 이름처럼 아이는 자랐다. 꼬물거리는 작은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거나 그리면 얼마나 세심하고 기발하게 잘하는지 놀라곤 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두드러지는 건 없었다. 물론 내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거나 성적에 민감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좋은 학원을 쫓아다니지도 않았고 아이가 원치 않으면 억지로 보내지도 않았다.
중학생이 되자 아이에게 변화가 왔다. 아니 나에게 변화가 왔다. 이혼을 감행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다른 글에서 쓰지 않을까 하여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전 남편은 술중독과 가정폭력으로 나와 아이들을 참담하게 짓밟았다.(왜 이 한 줄을 쓰는데도 이다지 눈물이 나는 걸까!) 20년의 모진 시절을 견디며 살았던 나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음을 보았다. 아이들을 위하여 참고 살았으나 오히려 아이들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이 죽도록 가슴 아팠다. 그래서 이혼을 결심했다. 세 아이들을 데리고 단칸방 지하에서 가난하고 초라하게 바퀴벌레처럼 우글우글 살았다. 자다가 누군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일일이 다리를 세가며 밖으로 나가야 했던 작은 방, 사춘기 아이들은 몸집이 커져서 지하실 한 방 가득 찼다.
이때부터 다미는 달라졌다. 엄마가 일을 가면 집안일을 찾아서 몽땅 해놓았다.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고 심지어 외할머니가 보내준 마늘을 자기 머리보다 큰 양푼으로 가득히 까 놓기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학원을 안 다니니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까 하여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나은 아이들의 노하우를 습득해가며 공부했고, 성격이 차분하고 인내가 있어서 힘들어도 끈기 있게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어갔다. 이후 중학 시절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욱 상행선을 그리며 성적이 올라갔다. 고등학교 진학은 아이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느 날 아이는 상업고등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 후 취업하여 고생하는 엄마를 돕겠다고 했다. 대학은 선취업, 후진학하겠다고. 이 결심을 아이는 모두 성실하게 지켰다. 지금 다미는 대학생이다. 공부와 자격증을 따기 위하여 치열하게 노력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취업, 직장생활, 어린 다미는 자기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과 경력을 쌓았다. 돈을 벌었다. 고등학교를 미처 졸업하기 이전 취업을 한 아이는 이후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를 도와주었고 3년 후 대학을 가기 위해 퇴직하던 때, 퇴직금 전액을 모두 나에게 주었다. 대학 등록금이나 수업료, 쓰고 입는 것, 자신이 모든 걸 다 알아서 하고 있다. 돈을 다룰 줄 알고 굴릴 줄 아는 다미는 나보다 부자이다.
간단한 다미의 약력을 기록했지만 작은 다미가 걸었던 길은 절절히 사연이 쌓인 길이었다. 노력과 인내로 닦으며 걸어왔던 길,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가는 길이다.
"엄마, 엄마 옷 사 왔어. 선물이야!"
외출에서 돌아온 다미는 난데없이 패딩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DA*제품이었다. 메이커를 싫어하지도 않지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나여서 딱히 기쁜 건 아니었다. 미니멀리스트인 나는 꼭 필요한 만큼의 만족스럽고 충분한 옷이 있어서, 오히려 아이가 불필요한 데 돈을 쓴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연한 브라운 색 심플한 디자인의 롱 패딩이었다. 공갈빵처럼 너무 두터워보이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따뜻하고 섬세한 오리털이 들어있는 외투였다. 속 바느질이 잘된 고급스러운!
얼마를 주었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비싸게 주고 샀을게 뻔해서였다. 부담스러워하는 엄마에게 다미는
"엄마, 엄청 비싼 거 아니야"
"와 너무 잘 어울려~ 엄마 얼굴에 딱 맞는 색이야, 예쁘다."
하며 나의 부담을 상쇄한다. 아이와 나는 옷 사이즈가 비슷해서 다미에게 맞는 것은 대부분 나에게도 맞다. 다미가 입어보고 샀으니 말할 것도 없이 맞춤이었다. 겨울 겉옷이지만 몸매도 살려주는 예쁜 디자인이다.
아이의 선물은 아이의 마음이어서 봄 햇살처럼 감사하다. 단지 아이가 자기 필요한 데에 돈을 더 써야 할 터인데 나에게 쓰는 게 퍽 기쁘지는 않다. 해준 게 없이 이렇게 잘 자라주었는데 자기가 벌고 쓰는 것이라도 풍족하게 마음껏 누리고 살았으면 해서이다.
고마운 딸,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위로가 되어준 딸, 나는 다미가 있어서 전 남편과의 험난한 삶을 위로받고 살았다. 정말 그랬다. 나는 다미에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다미의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한단다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