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등산 #북한산 #관악산 #점심 #밥
몇 해전 손이 시린 겨울이었다. 친구와 북한산 대남문 방향으로 갔다. 산성을 등지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따스한 햇살이 건조한 산세를 데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까악까악 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상수리 나무가지 위에 전기테이프처럼 까매서 눈코입이 안보이는 까마귀 한마리와 눈이 맞았다. 그가 목청을 높여 깍깍대는 이유가 뻔하지 싶었다. 도시락으로 싸간 빵과 과일을 50미터 근방에 던져 줬다. 당연히 그가 내려와 쪼아갈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다른 까마귀가 날아와 먹을 것을 채갔다.
나한테 괴성을 지르던 그(혹은 그녀)는 나무 위에서 망을 보듯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어? 저 관계는 뭐지? 부부인가? 어미와 자식관계인가? 애인? 불륜 사이인가? 물어볼 수도 없지만 2인1조가 된 까마귀의 먹고 사는 법과 그들의 생조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인간들이 어디서 밥을 잘 먹는지, 어느날에 등산객이 많은지, 여자와 남자중 누가 더 호의적인지, 누구한테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부부 사이라면 함께 먹을 것을 찾다가 점심때쯤 도락을 까먹는 인간들을 향해 '같이 나눠 먹자' 소리쳤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관계라면 부모가 망을 보고 너 먼저 먹어라 했을 것이다. 애인 사이라면 남자가 망을 보고 여자를 먹었을 것이다. 요즘 인간들의 성 감수성으로 빗대면 여자가 망을 보고 남자를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전 관악산을 갔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다. 추운 겨울 나무가 잎사귀를 떨구는 것은 더 많은 햇볕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람은 껴입는데 나무는 벗어야 그늘이 지지 않고 온전히 햇빛을 쬐어 일광욕, 광합성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은 공명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날도 볕이 들고 바람이 안 부는 곳을 찾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까마귀의 득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드니 전기 테이프처럼 까만 까마귀 한마리가 부리 부리한 부리를 내밀고 앉았다. 눈이 마주친 착각이 들 정도로 나의 정면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날개를 고르며 먼 곳을 응시했다. 햇빛에 검은 깃털들이 반짝거렸다.
갖고간 감과 떡을 근처에 떼 놓았다. 그런데 그가 먹을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다른 까마귀가 내려와 가져갔다. 북한산에서 봤던 장면이 오버랩 됐다. 그 뒤로 관악산을 또 갔을때 까마귀에게 줄 떡을 가져가 바위 위에 올려 두었다.
그가 짖어대기 전에 상납(?)부터 했다. 고맙다는 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일지, 다른 구역 까마귀일지 알 수 없지만
고맙다는 듯 어디선가 까마귀의 소리가 거슬리지 않게 들렸다.
어렸을때부터 식구가 많은 집에서 살다보니 혼자 먹을 상황이 생기면 아예 굶는다. 까마귀도 2인 1조가 돼서 먹고 사는데 배달의 민족에서 혼자 밥을 시켜 먹는 아들을 보면 내가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긴 한데 나와의 유대 관계나 정이 쌓일 틈이 사라진 느낌이다.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눈길이 가고 짠해지는 옛날 사람인데 아들의 배달 음식 선택을 어찌할 수 없다. 단체 문화가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는것 아닌가 싶다.
어떤이는 혼자여서 편하고 안정감을 갖을 수 있을게다. 연말이 되니 누가 만나자는 건수가 없나 기웃거리게 된다. 어느 중년의 여성이 남편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어? 밖에 비오네~'라고 했을 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야~ 눈온다~' 했을 때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게 얼마나 큰 일인지 깨달았다는 말을 들었다.
일상을 나누고 댓거리를 할 상대가 있다는 게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써 공감이 갔지만 처음부터 독생자 아들 같은 경우 형제와 나누는 정이 없이 커서 그런지 어쩔땐 찬바람이 쌩~하고 불 때가 있다. 새해에는 1인 가구라는 말보다는 2인 가구, 나 혼자 산다 보다는 다함께 산다라는 말이 늘어나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최소한 까마귀처럼 2인 1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