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을 깨운 노란 라이타

중년 여성의 흡연

by 루카

내가 다니는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목회자를 대신해 일반 교우가 ‘평신도 설교’를 한다. 이날은 작가로 활동중인 청년 교우가 '회복'을 주제로 설교를 했다. 그녀는 자살 시도를 했었고 병원에서 살을 벌려 소독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두 명의 교우가 있었는데 어깨가 올라갈 정도로 힘들어 했다. 어느새 설교는 그녀가 최근에 본 웹 소설 이야기로 넘어갔다.


윌리엄과 헤르미온느 같은 외국 이름이 나오고 배경 설명이 장황해 질 때 50,60대 어르신들이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앞 줄에 앉은 성도들은 허벅지를 꼬집었다.


나는 예배당 뒷자리에 앉아 윌리엄이 나올때 고개를 떨궜다. 자면서도 목덜미가 뻐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주일 내내 새벽에 일어나 밭을 나가 삽질하지, 4~5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자지 수면 부족 때문이라 어쩔 수 없다고 변론을 했다. 예배는 무음 처리 됐고 내게서 멀어져 갔다.


무슨 꿈을 꿨을까.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바닥을 ‘땅’하고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옆자리에 앉은 언니가 살 색 스타킹 양말을 신은 왼쪽 발로 베이지색 쇼파 밑을 더듬고 있었다. 발등 때문에 더 들어가지 못하고 앞 발가락으로 뭔가를 꺼내려 애썼다. 발을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167cm의 큰 키에 마른 체형인데 발 모양이 가지런해 구두를 신으면 예뻤다. 그녀가 찾는 물건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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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못한 나는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상체를 엎드려 왼쪽 뺨을 바닥에 대고 쇼파 밑을 봤다. 그녀의 귀중품은 ‘노란색 라이타’였다. 어린 자식을 일찍 떠나 보낸 나의 증조할머니는 그 괴로움을 잊으려 담배를 피우셨다. 103세까지 병치레 없이 담배와 술을 벗 삼아 사셨다. 그녀의 방과 이불에는 까맣게 탄 '담배빵'이 패턴처럼 있었다. 음주와 흡연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말을 잘 안 믿는건 백수를 누리고 자연사 했기 때문이다.


교단에서는 자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라이타는 떨어지고 허벅이는 꼬집고 주먹을 쥔 채 입을 틀어 막고 엎드렸다. 최근에 친구가 유방암 3기라는 전화를 받고 내내 우울 했었다. 일부러 웃음을 만들고 싶었을까. 귀중품의 종류가 예상 밖이어서 일까. 등짝을 들썩이며 숨죽여 웃었다. 나와 나란히 앉은 교우들의 관심사는 손안에든 물건이었다. 옆에 앉은 고등학교 윤리 선생인 교인이 모든 과정을 지켜 보더니 ‘둘 다 학생부’로 오라며 농을 했다.


나는 누가 볼까 혼신의 힘을 다해 언니의 가방에 안보이게 넣었다. 라이타로 나라를 팔아 먹은 것도 아니고 누굴 헤코지 한 것도 아닌데.


‘이년아 뭘 그렇게까지 그걸 주워 주냐’며 면박을 당하면서 교회에서 술, 담배는 금기 사항인데다 여성 흡연에 대한 죄책감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십중반 넘어서도 느낀 순간이었다.


그날은 7년동안 유방암을 투병했던 교우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실’로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누구는 죽으려 손목을 긋고 누구는 살려고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다. 누구는 술, 담배로 마음속 깊은 불안감과 속병을 달랬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 당번이 차려준 쑥 향이 가득한 된장찌개와 흑미 쌀밥, 나물 반찬을 야무지게 먹었다. 뭘해도 기운이 나지 않는 나는 이 시대의 '잉여 인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서 뭐하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증조할머니처럼 오래 살거라는 안심을 동시에 했다. 거기에 과식하고 커피 마시고 과자까지 먹었다. 오 주여. 변명과 핑계거리를 찾아 괴롭고 힘든 이유를 생산해 내고 있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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