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의 대학원 소설 전공 입시를 남몰래 준비하던 이십대 후반, 구술시험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저명한 작가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소설이 뭐라고 생각하나?” 잠시 골똘히 생각한 나는 “삶이요. 소설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고 그는 곧장 고개를 흔들며 “아니지 아니지, 그게 아니지.” 말했다.
아, 아니구나. 아무래도 아니겠구나. 소설이라는 입구 앞에서 단박에 거절당한 느낌이 들었다. ‘삶’이라 말하던 내 목소리는 많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더 부끄러웠고, 올바른 대답을 찾지 못한 스스로가 창피했다. 더욱 원망스러웠던 건 이후 몇 날 며칠을 고심해도 다른 답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삶의 이면이라고 말할 걸 그랬나? 삶 바깥의 이야기일까? 소설의 ‘멋진’ 답을 쥐고 있을 얼굴 모를 이들을 시샘하면서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대학원을 떨어졌고 누구에게도 이 실패를 털어놓지 않은 채 바쁘게 일하며 살아갔다. 문득문득 소설이 뭘까, 소설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틈을 비집고 끼어드는 질문을 혼자 곱씹기도 했다. 여전히 소설은 삶이라는 커다란 답을 내게 주었고 그때마다 ‘그게 아니지’라는 거절이 마음에 맴돌았다. 몇 년 더 시간이 흘러 운 좋게 지방의 문학상을 받고 주간지 지면에도 짧은 소설이 실렸지만 계속 나는 어딘가 좀 틀린 것 같았다. 아니지, 이게 아니지. 정답을 알지 못한 채 문제를 서성인다는 건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 아닐까? 그래서 소위 ‘순수문학의 정통’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소설 쓰는 나의 위치와 역할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자격지심도 무지 많았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실패감은 내가 소설 바깥을 기웃거릴 수 있는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어정쩡해서, 애매해서, 고집이 세지 않아서, 나는 변명하듯 이것저것 잡다한 글을 쓰며 세상을 둘러보았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사회적 문제와 철학적 논의들이 오가는 장면들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말하는 현실을 접하게 될수록 혼자 견뎌내기가 힘들었다. 더 공감하고 싶어서, 더 같이 나누고 싶어서, 내 안의 말들을 더 찾아보고 싶어서, 무엇보다 사는 대로 생각하기는 싫어서, 퇴근 후 겨우겨우 시간을 내어 장르 없는 글들을 종종 끼적였다. 정해진 문법이나 형식은 없었고 대다수 엉망이었으나 쓰는 동안 자유로웠다.
소설이 아닐지라도 어느 누구의 인생이 될 수 있는 글을, 나는 쓰고 싶었던 걸까. 아니, 어쩌면 다른 무엇보다 내 삶의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걸까. 도무지 손에 쥘 수 없는 답. 그럼에도 틈을 비집고 계속 끼어드는 질문. 쓰고자 하는 글이 궁극적으로 삶을 이야기한다면 풀리지 않는 그 물음들부터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엄마와 가족.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직 내게만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하소연이나 투정에 그치지 않을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고 싶었다. 지난 서른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반복되는 물음과 풀리지 않는 마음을 단지 고백하고 위로받기 위해서라면 사실 더 쉬운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스물아홉 당시 진한 연애를 하던 상대와 일사천리 결혼한 것. 그렇게 엄마를 탈출한 것이 과연 마땅한 선택이었는지 해가 갈수록 더더욱 자신할 수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나라는 이상하고도 정상적이라 ‘나의 엄마’뿐 아니라 ‘엄마가 된 나’에게도 하나둘 위기가 찾아오는 탓이다. 엄마를 탐구하다 보면 나를 지나 당신의 엄마를 관통하여 그들의 시대와 사회를 둘러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 여기 엄마가 된 나 그리고 엄마가 되지 않기로 한 또 다른 당신이 공감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당장 눈앞의 가족과 현실의 엄마를 감당해 내야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까닭인지 가족 서사와 모녀 서사는 꾸준히 반복된다.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고 개인의 역사를 발화하였으나 그중 절반 정도는 더 많은 공감과 보편성을 얻지 못하고 아쉽게 사그라지기도 한다. 시도와 실천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가질 테지만 그 의미의 충족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좀 더 확장될 수 있다면 뜻깊은 과정이지 않을까.
그들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지금 이곳에 함께 흘러가지만 비단 나이만으로 가를 수는 없다. 또래로 이루어진 같은 세대 안에도 여러 시대가 흐른다. 과거에 머무는 사람,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 현재를 지켜가는 사람은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안고 곳곳에 자리한다. 나이와 세대와 성별로 구분 짓기에는 생각의 차이와 입장의 변이 촘촘히 맞물려 있기에 충돌과 갈등과 화합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서사를 바탕으로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아빠와 아들, 그러니까 ‘가족’이라는 이름 안팎으로 생겨나는 관계와 갈등, 말과 행동을 살피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각각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이유로 파생되는 반복적인 현상들을 말해 보고 싶다. 이를테면 가족의 안위를 지켜내고자 손쉽게 차단당하는 낮고 작은 목소리들.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며 판단 없이 동조하는 사회적 혐오와 차별의 시선. 그럼에도 우리가 가족의, 가족으로, 가족인 지금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이번에도 정해진 문법이나 형식은 없을 것이다. 그저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이어 나가며 자유롭고 치열하게 써 보려고 한다.
이렇게 호기롭게 마음먹었으나 고민이 없지는 않다. 어둡고, 진지하고, 심각한 것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멀어져가는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되나. 불행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어쩌나. 하지만 굳이 지금부터 비극을 각오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나와 당신과 우리를 닮은 또 다른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이상한 나라에서 가본 적 없었던 길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세상은 계속 흘러가고, 모든 글쓰기는 삶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므로. (섣부른 기대가 많은 것도 내 문제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