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앞뒤가 안 맞는 말일 텐데 며칠간 생각해보는 중이다.
누군가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 데도 존중이 필요할까.
그건 싫어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구를 싫어한다는 것은 온힘을 다해 내가 쓰고 있는 에너지이고, 직접 겪어 내는 심적 고통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미움과 연민이 동시에 들어 괴롭고, 그를 싫어했던 마음이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어 미안해지는 경우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싫어하는 자체가 아까울 만큼 형편없기도 하다.
함께한 추억과 시간 속에 여러 감정이 얽히고설킨, 마음 복잡해지는 미움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누구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데 존중 따위 고려한 적이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해?’라는 물음처럼 ‘싫어하는 데 이유가 있어야 해?’라고 같은 물음을 적용시키면 간단해진다. ‘그냥 싫어.’ 이 한마디로 아주 쉽게 어떤 이를 배제하고 무시하고 혐오하며 처단할 수 있다. 이유가 뭐 필요해, 그냥… 싫다는데.
귀찮고 번거롭기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할 뿐, 평범해 보이는 ‘그냥’이라는 이 단어는 어마어마한 비밀을 품고 있다. 목소리가 맘에 들어 좋고, 머리 스타일이 별로라 싫고, 말투가 맘에 들어 좋고, 은근 섬세한 면이 있어 매력적이고, 늘 옷에 퀴퀴한 냄새가 나서 싫고, 눈빛이 좀 맘에 안 들어서 별로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좋고, 회의하다 자꾸 트림을 해서 짜증 나고 어쩌고저쩌고……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사소하고 주관적이고 좀 자질구레하기도 해서, 한마디로 쿨해 보이지 않는 이유들이라서, 퉁 치고 만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많은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살아오면서 그런 나 자신을 누구보다 가장 끔찍이 여겼다. 왜 그를 힘들어하는지, 그에게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내 마음의 갈래를 살뜰히 헤아려보지 않고 ‘그냥’ 퉁 치고는 스스로를 타박하고 괴롭혔다. 어째 마음 상태가 이 모양이냐고, 콕콕 가슴을 쑤셔댔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한 채로 누군가를 싫어했으므로, 그 마음은 이중의 복합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나를 살피기에 앞서 미움의 대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잖아… 왜 나는 이렇게 불만이 많지? 성격 장애인가 봐, 적당히 어울리며 잘 지낼 수는 없나? 모든 건 다 내 문제라 여기고는 나를 미워하면서 위선을 지켜내는 태도. 싫어하면서도 완전히 싫어할 수 없는 마음.
그러는 동안 나에겐 뭐가 남았을까. 태평양처럼 드넓은 배려감? 너그러운 양보심? 평화주의자 같은 이해심? 아니, 무력감이 남았다. 누구를 싫어할수록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괴롭히며 지쳐갔다. ‘좋은 사람’ 혹은 ‘착한 사람’이라는 스티커가 하나둘 늘어가자 안도와 절망을 동시에 맞닥뜨렸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늘 남의 감정과 눈치를 먼저 살펴야 했으므로 일상이 피곤했다. 마음이 고단해 좋아했던 뮤지션의 플레이리스트도 더는 재생하지 않았다. 휴대폰 진동음조차 버거워, 무음으로 설정해놓은 지 오래였다.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폰을 들여다보았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살피고 어제 본 TV 프로그램, 미세먼지, 사건사고, 사이코패스 범죄 같은 기사들과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대상이 불분명한 온갖 비난과 악에 휩싸인 듯한 저주와 혐오 사이를 오가며 나는 기묘한 위로를 받았고 마음의 일부를 그곳에 덜어냈다. 내가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면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위악적인 사람들이 필요했으니까.
이렇게까지 위선을 지켜내야 했던 이유는 하나.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사정에 대해 잘 몰랐으면 했고 내가 바라는 이미지로 나를 알아주기를 바랐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중반부터 그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 나의 가족은 정상 궤도의 경계에 위태하게 위치해 있었다. 자라면서 어느 한 순간도 풍족하지 않았음에도 ‘인텔리한 이미지’로 가난을 교묘히 숨겨왔다. 엄마는 높은 자존심만큼 연기에 뛰어났고 아빠는 매일 밤 술에 절어 현실에서 달아나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직장에 들어가 매달 규칙적인 월급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어른이 된 나는 더 이상 ‘가족의 하나’로 머물지 않고 ‘그와 다른’ 별개의 나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는 분리는커녕 더욱 깊숙이 가족에 관여해야 하는 현실. 월급 일부를 엄마에게 성실히 헌납해야 했지만, 이제껏 집안에서 마주한 모습들과 다른 얼굴의 어른이고 싶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안정이라는 궤도에 진입하는 것.
문제의식이 많고 고민이 넘쳐 나는 데다 취향과 관심사가 다방면으로 뻗어 있는 ‘복잡한’ 나 말고, 좀 전형적이고 상투적이고 또 다른 위선의 증명일지라도 ‘곱게 자란’ 이미지를 가져보고도 싶었다. 그러려면 엄마는 걸림돌이 되기에 충분했다. 엄마를 향한 아주 오래된 미움과 증오는 ‘화목한 가족 프레임’에 어긋나는 것이니까. 곱게 자란 여성이라면 희생과 헌신의 존재를 존경해 마지않을 테니까. 가족의 따스함과 집의 평온함을 안전히 누릴 테니까. …나처럼 운이 나쁘진 않을 테니까.
좌절감과 죄책감을 안고 ‘보이는 나’와 ‘내 안의 나’ 사이를 맴돌았다. 딱 그만큼의 거리가 내가 가진 진실의 크기였을 것이다. 한계가 명확하니 더 깊어질 수 없고 가까워지기에도 부담스러운.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위선과 위악과 현실 가운데 어느 하나가 툭, 먼저 무너져 내렸다. 현실. 껍데기가 두꺼워지는 현실 속에서 하나둘 균열이 생겨났다.
“그래도 가족이잖아. 널 키워주셨잖아. 너 일한다고 손녀딸도 돌보시잖아. 그래도 네가 딸인데, 그래도…”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결혼하고 일하는 엄마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그리고 나의 엄마가 내 아이를 돌봐주신다는 이유로 이해와 배려부터 권유받는 ‘그래도’의 말들에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너나 나나 누구나 ‘그만한 고충 없는 모녀 관계가 어디 있니’라며 아주 당연하고도 평범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토록 갈망해온 ‘평범한 가족 프레임’에 마침내 도달한 것이다!)
남들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데 민감했으므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쪽이 차라리 편했다. 풀리지 않는 물음표들을 머릿속 가득 띄운 채로 다시 혼자 읊조렸다. 누군가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 데도 존중이 필요할까. 누군가, 그러니까 내가 나를 싫어하는 데도 존중이 필요할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을지 고민해보았다. 그냥, 내 마음을 더는 엉뚱한 곳에 덜어내고 싶지 않았다. 나쁜 마음이 생기면 나를 먼저 할퀴기보다 왜 지금 내가 아프고 힘든지 보살피고 싶었다. 마음속 오랜 상처와 힘겨운 감정들이 투정 정도로 여겨져도 적당히 위안을 삼고, 악플을 찾아 읽으며 위로받는 건 비겁했다.
언제든 내가 나를 미워할 수 있다. 나 아닌 누군가를 미워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미워하는 그 마음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이었다. 그게 차분히 바로서야 일상에서 느껴온 문제의식을 헤아릴 수 있고 또렷한 시선으로 나와 타인을 응시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그만의 ‘입장’을 만드는 것이겠지. 입장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지금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다. (죽자 사자 서로 미워하자는 목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아니니 부디 오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