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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래곤볼 각본가, Koyama Takao

드래곤볼 시리즈 각본 담당 (2019년 3월 영상 인터뷰)

[취재/글: 이준동]

[영상인터뷰 번역: 권하진]




[코야마 타카오] 아시아 최대의 각본가

안녕하세요 한국에 계신 드래곤볼 팬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아시아 최대의 각본가 코야마 타카오(小山高生)입니다. 최대라는 말은 그 뜻대로 키가 가장 큰 최대(最大)라는 의미입니다. (웃음) 제가 약 30년 전에는 키가 194 센티에 체중 90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마 아시아에서는 몸집이 가장 큰 각본가가 아닌가 싶어 이 별명을 썼습니다. 


이 별명의 유래는 당시 집영사(集英杜)에서 출판되는 'V 점프'(V ジャンプ)라는 게임 잡지에 실리던 연재만화 '지옥선생 누베'라는 작품을 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옥선생 누베'의 작가는 오카노 타케시 씨였고 제가 몇 작품의 각본을 담당하며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때  오카노 타케시 씨가 저를 일본 최대의 각본가로 소개해주었고 그때부터 쭉 이 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일본 최대라기보다는 아마도 아시아에서는 제일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 세계 최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네덜란드에 키가 약 2미터 정도인 장신의 각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시아 최대로 만족하고 있죠. 


저의 작품을 사랑해 주신 많은 팬 분들도 이 별명으로 불러주셔서 자칭 타칭 공개적으로 이 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인터뷰가 한국에 저의 별명을 처음 알리는 자리이지 않을까 싶네요. 



[애니메이션과의 인연]

저는 1972년 '타츠노코프로'(タツノコプロ)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시작으로 약 47년(인터뷰 시기 2019년 기준) 정도 이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80 여개의 작품, 각본은 800 회분 정도 썼던 것 같습니다.


저의 작품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드래곤볼, 드래곤볼 Z 등의 드래곤볼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소년점프에 연재되었던 '세인트 세이야'(聖闘士星矢)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남습니다. 세인트 세이야는 총 100 회 분정도 제작되었고 그중 절반 정도 분량의 각본을 담당했었습니다.


이 작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각본 스케줄이 너무 빠듯하게 움직여 스케줄을 무리하게 따라가다가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다른 작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이유는 '세인트 세이야' 시리즈가 대 성공을 거두며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입니다. (웃음) 드래곤볼도 참 고맙구요. 


각본가로서 개런티도 괜찮았습니다. 흔히 '2차 사용료'라 칭하는 해외 라이선스 계약으로 발생되는 수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드래곤볼의 경우는 거의 전 세계에 알려져 있었지요.


타임보칸(タイムボカン)이라는 작품도 제 인기작으로 꼽을 수 있는데요. 제가 알기로 한국에서는 '날아라 번개호'라는 이름으로 방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 5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하나하나 다 떠오르지는 않지만 제가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은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에 작품 리스트가 상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웃음)


[각본가가 되다]

사실 저는 대중가요 작사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없었지요.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대충 비슷한 업계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런저런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지만 번번이 불합격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 '타츠노코 프로덕션'이라는 회사에서 기획부 인재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고 응시해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입사를 하고 나니, 저의 할 일은 각본을 쓰는 것이라며 한 달 정도 각본 작업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1972년 3월 1일 첫 출근을 하고 본격적으로 각본을 쓰며 월급을 받는 각본가의 일을 시작합니다. 


작사가의 꿈을 품고 어디든 가서 내 꿈을 펼치자는 무모한 도전으로 '일단' 각본가가 된 지 어언 47년이 흘렀네요. 사실 아직도 이 일이 나에게 맞는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웃음) 그저 오랜 시간 하다 보니 '운명'이라는 사실은 거부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이렇게 '의문의 각본가'로써 많은 독자분들의 사랑을 감히 받아왔습니다.


애니메이션 감독 사사카와 히로시 (笹川ひろし)와 함께


[나와 아들]

솔직히 저는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던 학생이었습니다. 다만 소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학창 시절에 책을 많이 읽고 TV와 영화를 즐기던 학생이었죠. 책을 많이 읽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에도 작사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마음 언저리에 싹트기 시작했던 것 때문입니다.


작사가라는 꿈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온 학창 시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작사가의 꿈을 가진 각본가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저의 아들 역시 각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저와 제 아들 이야기까지 알려지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웃음) 아들이 저에게 처음으로 아버지처럼 각본가가 되고 싶다고 하였을 때 많은 고민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뿐만이 아니고 아마 모든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갖겠다고 하면 일단 말리고 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죠.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 각본가라는 직업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고 그러한 어려움을 저는 직접 겪어보았기에 찬성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죠. 그와는 반대로 제가 그나마 조금 이름 있는 각본가이다 보니 아들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더 깊이 고민했고 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아들도 이제 각본가의 일을 시작한 지 13년 정도 되었고 그동안 여러 작품의 각본가로 활동하며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의 문하생들과 제 아들이 공동으로 한국에서의 방송을 목표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들이 쓴 시나리오를 읽어보았는데 사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기는 했습니다. (웃음) 그래도 아들이 선택한 길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할 것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예전에 비하면 요즘 애니메이션의 영상기법이라던지 CG 등 특수효과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시나리오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게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애니메이션의 기본이 흔들리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예나 지금이나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제작사와 작가는 넘치는 서비스 정신(웃음)으로 최고의 스토리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죠.


최근 애니메이션은 혜전에 비해 회당 분량이 상당히 줄어든 느낌입니다. 길게 호흡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한 분량이죠. 순간순간 화려한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는 명장면들이 연출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긴 호흡을 이어갈 수 없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옛날에는 화려한 그래픽 구현이 안되다 보니 최대한 시나리오와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탄탄한 뿌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죠.


그리고 요즘 일본에서는 애니메이터 지원자가 많이 줄었습니다. 아무래도 꿈을 펼치기에는 업계의 대우가 그다지 좋지 않은 문제가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력 부족도 긴 호흡을 가진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없게 된 배경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각본가가 최고의 시나리오를 쓴다 하더라도 애니메이터가 없으면 애니메이션은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애니메이터 인력이 충분히 배치될 수 있도록 그들이 쏟아붓는 노력에 합당한 결과가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풀어야 할 최대 과제일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0년 후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자체가 존재하지 을 수도 있습니다. 재능을 가진 인력들이 이 업계를 떠나지 않고 회사와 함께 성장해 더욱 높은 수준의 애니메이션이 창작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러니 나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그만둘 수 없다' (코야마 타카오 外, 2012년 발행)

[앞으로]

솔직히 저는 나이도 나이이고 (71세, 2019년 기준) 현장을 떠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업계에서 제가 어떤 목표가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이제 곧 제가 사라지는 것을 기다리는 일밖에 없어 보이네요. (웃음)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이 노력에 합당한 이익을 정당하게 분배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습니다. 지금 업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더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봐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한국 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에 저희들도 이렇게 먹고살 수 있기에 몇 번 감사의 말씀을 드려도 모자랍니다. (웃음)


저는 현재 (2019년 기준) 오사카 예술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제 강의를 듣는 한국 유학생들도 있습니다 오래전 제 수업을 듣던 한국 유학생 강 군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강 군은 그 어떤 일본 학생들보다도 열정적이었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식도 저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강 군 덕분에 저의 작품들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그렇게 때문에 한국 팬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조금은 침체되어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다시 활기가 찾아와 예전처럼 많은 한국 팬분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멋진 작품들이 창작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두서없는 영상 인터뷰였지만 저의 이야기와 바람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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