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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우 안지환

2019년 레전드매거진 게재

[취재/글: 이준동]

[사진: 안지환 제공]



안지환은 대한민국 성우다. 1993년 MBC 11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그는 오락 프로그램 내레이션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에서 각각의 특색에 맞는 목소리 구현해 방송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했던 성우, 이 직업은 그에게 있어서 배우가 되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는 ‘해야만 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승화시켜 냈다. 놀라울 정도의 입체적이고 과감하며 디테일한 목소리 연기는 ‘평범한 목소리’라는 그의 콤플렉스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2012년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에서 주인공 엄마 역을 완벽히 소화해 내며 그가 가지고 있는 배우에 대한 갈망을 마음껏 표출했다. 2016년에는 ‘등산맨’이라는 이름으로 복면가왕에 참가해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최근 종영한 SBS 아침드라마 ‘강남 스캔들’에서는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최근에는 그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 ‘처음 듣는 라디오 안지환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영화 ‘무지개 놀이터’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펼치고 있는 성우 안지환을 만나 그의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봤다.



[안지환]


안녕하세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성우 안지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성우라는 직업으로 여러분 앞에 섰고, 이제는 연기자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변화의 기점에서 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저 자신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인터뷰 자리가 더욱 긴장됩니다.


저의 원래 꿈은 배우였습니다. 배우로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던 찰나 마침 MBC에서 성우 1기생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해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됐죠. 하지만 제가 합격한 곳은 MBC 본사 성우실이 아닌 MBC 산하 아카데미였습니다.


말 그대로 수강료를 내고 교육을 받는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이것마저도 저에게는 큰 기회라 생각하고 교육을 수료하고 당당히 MBC 성우 공채 11기로 합격하게 됩니다.


[성우 안지환]


최근 저는 사회인 야구단 입단을 위해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아 제출했습니다. 사회인 야구단이다 보니 초중고 시절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없어야 했고 그 유무를 증빙하기 위한 서류였죠. 오랜만에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니 그전에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평가하신 내용 중에 “연기에 소질이 있고, 진행 실력이 뛰어남”이라 기재가 되어 있는 것이었어요.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을 일이 없었던 저는 이 평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중학교에는 연극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저는 중학교 1학년 당시 담임선생님께 제가 연기자를 꿈꾸고 있다고 말씀을 드린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선생님께 어떤 모습을 보여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연기에 소질이 있다는 평을 해주셨어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MBC 공채인 줄 알고 지원했던 성우 시험이 ‘MBC 방송문화원’이라는 교육기관에서 뽑는 성우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쟁률이 250:1이 넘었습니다. 경쟁률이 이렇게 높다 보니 지원자 대부분이 MBC 공채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어렵게 통과한 시험이라 저는 공채가 아니라는 것에 포기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일단 집에는 MBC 공채에 붙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아카데미 수료 후 천신만고 끝에 MBC 성우 공채 시험에 합격했고, MBC 성우 11기로 당당히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배우를 향한 저의 꿈은 멈출 줄 몰랐고, 성우로 입사하자마자 선배들 몰래 틈틈이 방송사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어요. 당시 성우실 규율이 엄격해 선배들이 알기라도 하면 엄청 혼날 짓이었거든요 (웃음) 공중파 3사 탤런트 시험 모두 1차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죠. 그래서 성우라는 직업으로 먼저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각오로 많은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던 이유는 저에게는 좋은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목소리였죠.


노력을 해도 목소리에 변화도 없고, 성우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저의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는 ‘박채욱’이라는 제 친한 친구와 술을 마시고 다음날 녹음할 대본을 쓰레기차에 던져 버린 적도 있어요. 정말 끝이 안 보이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더군요.


제 친구는 저를 위로해 주고는 쓰레기차 안에 들어가 쓰레기 더미에서 제가 내다 버린 원고를 찾아 다시 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박채욱’이라는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었다면 저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을 만큼 그 친구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지환, 그리고 기회]


당시 우리 전속 성우들은 기본적으로 3년이 지나야 영화 더빙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유명 영화의 더빙을 하는 것은 성우로서의 자존심이었죠. 어느 배우의 역할을 맡느냐가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MBC 성우실은 라디오 제작 2부에서 관장했습니다. 라디오 드라마가 활성화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우는 라디오 드라마에 주력하고 가끔 영화 더빙에 지원을 나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 지원의 기회 역시 대 선배님들이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죠.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가 점점 쇠퇴해지며 성우실 관장하는 부서가 ‘라디오 제작 2부’에서 ‘편성제작국 영화부’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 전속들도 외화나 외국 드라마 더빙에 투입되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우리에게는 큰 기회였죠.


[기회, 또 다른 위기]


그렇게 저는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를 미처 다 만끽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바로 MBC가 갑작스럽게 드라마의 자막방송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성우들이 해야 할 더빙을 하지 않고 자막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는 당시 우리 성우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외화 더빙마저 점차 사라지며 방송국 성우실은 존폐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실 이는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변화는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저 스스로도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죠. 다만 문제는 예견을 했다 하더라도 제가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변화에 수긍하고 스스로 감당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을 맡기도 하고, 직접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저의 얼굴을 알렸고, 성우 안지환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배우 안지환]


‘안지환’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브랜드의 인지도를 쌓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저의 예감은 적중했고, 저는 성우를 넘어 유명 방송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방송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죠.


지난해 연말에는 한국작가협회에서 진행하는 ‘드라마 과정’에 면접을 통해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드라마 극본 집필 공부의 기초 과정을 마친 시점에 저는 SBS 아침드라마 ‘강남 스캔들’에서 섭외가 왔고, 생생한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배우로 활약하며, 극본 집필 과정에서 공부한 이론을 현장에 적용해 실습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새롭게 다가온 기회였던 ‘강남 스캔들’이 종영하고 저는 현재 어느 방향으로 저 자신을 이끌어갈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기력과 방송 진행력을 겸비한 ‘김상중’ 배우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을 갈 때는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저 역시 지금 그 두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항상 극복해 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 역시 제 이름을 건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지만, 처음 불교방송의 ‘성우 안지환의 생방송 사람인’을 할 때만 해도 두려움이 앞선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사람인’ 청취자는 100명 미만이었고, 댓글 올리시는 분들의 성함을 다 기억할 정도로 소규모 방송이었습니다. 마치 영화 ‘라디오스타’의 동네 방송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시작한 라디오는 '교통방송의 이성미 안지환의 9595 쇼', SBS의 '안지환 김지선의 세상을 만나자', 그리고 현재 국방 FM의 '안지환의 처음 듣는 라디오'로 발전해 나가게 됩니다.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 이름이 뒤에 있다가 그다음에는 앞으로, 그다음은 저 혼자 제 이름을 걸고 하는 형태의 진화를 하게 된 것이죠. (웃음)


[마지막 메시지]


제가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제 꿈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꿈은 배우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낭중지추’(囊中之錐)란 말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 송곳’이란 뜻으로 ‘인재(人才)는 아무리 자신을 숨기려 해도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기 마련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마부작침’(磨斧作針)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라는 뜻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표현한 글귀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되기 위해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과정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뤄낸 일들은 모두 흘러지나 간 강물과 같습니다. 서울의 젖줄 ‘한강’도 어느 시골 작은 골짜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한강’은 모르지만 ‘골짜기’는 알고 있습니다. 내 물이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이 말은 지난 과거에 집착하고 연연하다 보면 언젠가 그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뜻입니다.


위기는 절대 기회가 아닙니다. 위기는 위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것을 기회라 얘기할 뿐입니다. 그 위기를 어떻게 넘기냐가 관건이죠. 저 역시 극심한 위기감을 이겨내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항상 그래 왔던 것 같아요. 가끔 다른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인터뷰할 때는 저에게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냐?”라고 물어보곤 하니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지금의 내 자리가 어딘데?”


이 질문은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입니다.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가장 힘든 구간이 어디였는지, 그리고 완주할 때까지 무슨 각오로 달렸는지. 반대로 한참 달리고 있는 선수에게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라고 묻는다면 그 선수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의 목적지와 그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나 조차도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비단 저뿐만 아니라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계단의 연속입니다. 첫 번째 계단을 넘으면 그보다 조금 더 높은 두 번째 계단이 나타나죠. 힘들게 두 번째 계단을 넘어서면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세 번째 계단이 눈앞을 가로막습니다.



힘에 버거워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면 제가 지나온 첫 번째 계단과 두 번째 계단은 모래알처럼 부서져 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도 모래알로 흩어져 날아가려 합니다. 저는 어떻게든 세 번째 계단을 넘어 네 번째 계단으로 향해야만 합니다. 이 계단들을 넘지 못하면 저는 모래 먼지와 함께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직면한 위기만 넘기면 이 세상 모든 평화와 행복이 여러분을 기다릴 거라 생각하시지 말라 당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지금의 위기를 딛고 일어서면 더 큰 위기가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여러분은 그 또 다른 위기 역시 어떻게든 버텨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는 부정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전해드린 말을 반대로 생각한다면 지금 여러분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지금의 이 위기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위기’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돈’ 이야기로 넘어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위기와 고난, 역경을 견뎌낼 때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내가 돈만 있으면 이런 고난과 역경이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성공한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하는 얘기가 “나는 돈은 안 보고 일만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라는 믿기 힘든 말을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자체가 ‘돈’ 때문인데 일을 하니 돈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는 것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겸손, 또는 성공을 미화시키는 것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돈’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돈에 굴복하지 않고 돈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돈에 철저히 굴복하고 돈에 쥐락펴락 당하느냐는 여러분이 충분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에 대한 마음가짐만 바꾼다면 여러분도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 500원을 버는 가난한 사람에게 그다음 날 만원이 생겼다면 그에게는 9천500원이라는 여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생겼습니다. 아마 그는 그 돈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여유롭게 쓸 것입니다.


반대로 매일 100만 원을 버는 부자에게 그다음 날 100만 원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그저 매일 들어오는 돈일 뿐입니다. 101만 원이 들어와도 그 사람은 절대 나머지 만원을 행복하게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그다음 날 90만 원이 생긴다면 억장이 무너질 것입니다. 매일 벌던 100만 원보다 10만 원이 모자란 돈만 벌었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억울해 치가 떨릴까요?


이것이 바로 ‘마음이 부유한 거지’와 ‘마음이 가난한 부자’의 차이입니다. 후자는 절대 전자가 느끼는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삶에는 부자들이 걱정하는 만큼 큰돈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만큼만 가지면 돈을 쥐락펴락 할 수 있지만, 내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려는 순간 돈이 여러분의 인생을 쥐락펴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여러분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닌 ‘꿈’과 ‘희망’입니다.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멋지게 이겨내고 그다음 눈 앞에 펼쳐질 또 하나의 계단을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하며,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년 봄, 상암동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이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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