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를 위한 보고가 등장하는 진짜 이유

왜 우리는 보고를 하고 나서도 또 보고를 하게 될까?

by 김용진

I. 보고는 언제부터 일이 되었을까?


보고는 원래 일이 아니다.


보고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다.

의사결정을 돕기 위한 정보 전달 수단이었고, 판단을 빠르게 하기 위한 요약 장치였다.


하지만 많은 조직에서 보고는 점점 성격이 바뀌었다.
보고를 통해 결정이 내려지기보다, 보고 자체가 완료의 기준(?)이 된다.


보고는 했습니다”라는 말이 성과처럼 사용되기 시작한 순간,

보고는 일을 돕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업무가 된다.


이 지점에서 ‘보고를 위한 보고’가 등장한다.


II. 보고를 위한 보고는 왜 반복되는가?


보고를 위한 보고는 개인의 과도한 성실함이나 의욕 과잉에서 시작되는 것 만은 아니다.
대개는 조직이 의사결정을 다루는 방식과 환경 변화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누적된다.


1.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판단보다 확인이 늘어난다


경영 환경은 점점 복잡해지고, 변동성은 커졌다.
과거에는 경험과 직관으로도 결정할 수 있던 사안들이,

이제는 하나의 선택이 여러 파장을 만든다.


이럴수록 의사결정자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확신이 부족할 때 가장 쉽게 선택되는 행동이 있다.

'일단 한 번 더 보자'는 말이다.


이때 ‘더 본다’는 말은 대부분

자료를 추가로 요청하거나
다른 관점의 보고를 요구하거나
내용을 다시 정리해 오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게 추가된 보고는 결정을 돕기보다,
결정을 잠시 뒤로 미루는 역할을 한다.

보고가 늘어나지만, 판단은 따라오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2. 보고가 의사결정이 아니라 안심 장치가 되었을 때


보고는 언제부터인가 안심을 주는 도구로 전락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결정을 내리지 않더라도, 보고가 충분하면 마음이 놓인다.

“이 정도면 검토는 한 것 같다”
“이 정도 자료면 문제 생겨도 설명은 되겠다”


이런 생각이 작동하는 순간,

보고는 선택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불안을 완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 결과 보고의 목적은 명확해지지 않고,
보고의 분량과 횟수만 늘어난다.


보고는 많아지지만,

정작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린다.


3. 결정의 위치가 불분명할수록 보고는 위로 쌓인다


누가 결정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조직에서는
보고는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간다.


실무자는 판단 권한이 없어 보고하고,
중간관리자는 책임이 불안해 다시 정리해 보고하며,
임원은 확신이 부족해 추가 자료를 요청한다.


이 과정에서 보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이 형태만 바뀐 채 반복해서 올라간다.


보고는 이동하지만,
결정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다.


이때 보고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판단을 다음 단계로 넘기는 통로가 된다.


4. 보고가 ‘결정을 요청하는 문서’가 아니라 ‘설명 자료’가 되었을 때


보고를 위한 보고가 반복되는 조직의 보고서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다.
길고, 친절하고, 설명이 많다.

하지만 정작 핵심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무엇을 결정해 달라는 것인지

선택지는 무엇인지

각 선택의 리스크는 무엇인지


이 질문이 빠진 보고는
늘 이런 반응을 낳는다.
“정리는 잘 됐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그 결과 보고자는 다시 자료를 보완하고,
보고는 또 한 번 반복된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생각의 방향이 명확하지 않아서 생기는 추가 보고다.


5. 보고가 실행보다 안전해 보일 때


보고는 실행보다 위험이 적다.
실행은 결과로 평가받지만, 보고는 노력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 환경에서는

일을 줄이는 것보다

보고를 늘리는 것이 더 안전해진다


보고를 하지 않으면 책임이 되지만,
보고를 많이 하면 성실해 보인다.
그래서 보고는 점점 과잉 생산된다.


보고가 많아질수록 실행은 느려지고,
실행이 느려질수록 다시 보고가 늘어난다.
보고는 이렇게 스스로를 강화한다.


III. 보고를 위한 보고가 만들어내는 신호들


조직에서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면
보고는 이미 목적을 잃은 상태다.

보고를 했는데도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형식만 바꿔 다시 올린다
“혹시 몰라서” 만든 보고가 대부분이다
보고 이후에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난다


이때 보고는 일을 정리하지 않는다.
일을 증식시킨다.


IV. 보고를 줄이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보고를 위한 보고를 줄이는 방법은
보고 양을 제한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보고가 던지는 질문을 바꾸는 것이다.


이 보고로 어떤 결정을 하려는가?
이 결정을 내릴 사람은 누구인가?
이 보고가 없으면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보고라면,
그 보고는 이미 목적을 잃었다.


보고는 많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의 보고는 반드시
하나의 결정을 향해야 한다.


V. 맺으며


보고가 많아진 조직은
대개 일을 안 하는 조직이 아니다.
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익숙해진 조직이다.


보고를 위한 보고를 줄인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보고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결정을 앞당기자는 말이다.


보고가 끝났을 때 이런 말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그 말이 없다면,
다음 보고는 이미 준비되고 있다.


“보고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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