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87 드림라이너 프로젝트의 실패와 교훈
2000년대 초, 보잉은 항공산업의 미래를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신형 여객기 개발이 아니었다.
‘연료 효율 20% 향상, 운항비 절감, 친환경 항공기의 상징’이라는 비전을 내세운 꿈의 항공기 ‘787 드림라이너(Dreamliner)’ 프로젝트였다.
2004년 발표 당시, 전 세계 항공사들은 열광했다. 예약만으로 800대 이상이 판매되며 ‘상업 항공의 혁명’이라 불렸다. 그러나 이 혁신의 상징은 곧 항공 역사상 가장 비싼 교훈으로 바뀌었다.
첫 인도는 2008년으로 예정됐지만, 실제 인도는 2011년으로 무려 40개월 지연되었다.
예산은 당초 58억 달러에서 320억 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이는 초기 계획의 6배에 해당하는 초유의 규모였다.
보잉은 지연 배상금으로 51억 달러를 물어야 했고, 심지어 2015년까지도 787 한 대를 팔 때마다 2,5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손익분기점이 1,100대 이상이어야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이쯤 되면 ‘드림라이너’는 더 이상 꿈이 아닌 ‘드레드라이너(Dreadliner)’였다.
*** 드림라이너의 사고 일지***
보잉의 787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술 실패가 아니라, 경영 철학과 시스템 붕괴의 총체적 실패였다.
겉으로는 최첨단 혁신이었지만, 안으로는 ‘과도한 외주화, 미숙한 기술 실험, 관리의 부재, 문화의 변질’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보잉은 787 개발을 통해 기존의 ‘제조기업’에서 ‘시스템 통합기업(System Integrator)’으로 탈바꿈하려 했다.
즉, 직접 생산 대신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핵심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전체 설계·생산·검증의 65~70%를 50여 개 협력사에 맡긴 결과, 보잉 본사는 총괄만 담당했다.
이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효율적이었지만, 실제로는 통제 불가능한 혼란을 초래했다.
> 조정 실패: 전 세계에 흩어진 협력사 간의 일정과 품질을 맞추기 어려웠다.
부품 간 규격 불일치로 조립이 지연되었고, 일부 협력사는 보잉의 기술 기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 품질 관리 부재: 일부 부품은 배선·유압 장치가 빠진 채 납품되었으며, 동체 섹션이 ‘껍데기’ 상태로 도착하기도 했다. 한 보잉 노조 관계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몸체였다”고 증언했다.
> 비상조치: 초기에는 ‘패스너(fastener)’ 부족으로 인해, 엔지니어들이 '홈디포(Home Depot)'에서 볼트를 사서 조립했다는 사례가 있었다.
이 일화는 ‘보잉의 자존심’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보잉은 ‘비용 절감’을 노리고 외주화를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용 폭증과 일정 붕괴를 초래했다.
공급망의 복잡성은 혁신보다 더 큰 위험이었다.
보잉 787의 핵심 혁신은 '탄소섬유 복합재(Carbon Composite Material)'였다.
금속보다 가볍고 강도가 높은 이 소재는 항공기의 연료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빠른 적용’이었다.
보잉과 협력사들은 복합재 제작 경험이 거의 없었다.
제조 과정에서 미세한 기포, 오염, 레이업(적층) 불량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수율은 기대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가장 심각했던 사건은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였다.
2013년 일본항공(JAL)과 전일본항공(ANA)의 787 항공기에서 연달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FAA(미국 연방항공청)는 전 세계 모든 787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보잉은 “1,000만 비행시간당 1회”로 추정했던 연기 사고가 “10만 시간도 안 되어”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기술적 혁신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하지만 그 리스크는 관리되어야 한다.
보잉은 혁신을 ‘경쟁의 무기’로만 보았지, ‘시스템 리스크’로 보지 못했다.
보잉은 전례 없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공급망 전문가를 초기 리더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협력사 문제에 대응이 늦었고, 일정 통제권을 상실했다.
결국 보잉은 Production Integration Center라는 통합센터를 신설해, 전 세계 협력사 현장에 엔지니어를 파견했다.
이후 ‘문제 해결’이 아닌 ‘소방 대응’이 이어졌다.
추가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내부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보잉의 한 엔지니어는 “우리는 비행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위기를 수습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보잉의 문화적 전환점은 1997년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와의 합병이었다.
이 사건 이후, 보잉은 ‘엔지니어 중심의 기술 기업’에서 ‘주주 중심의 재무 기업’으로 체질이 바뀌었다.
2001년, 본사를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이전하며 경영진과 현장의 물리적 거리도 벌어졌다.
“주가, 주가, 주가”가 경영의 슬로건이 되었고, 숙련된 기술자들이 비용 절감의 이름으로 해고되었다.
이익과 효율이 ‘안전’과 ‘품질’을 압도한 결과, 생산 압박은 커졌다.
내부 고발자들은 “부적절한 부품 사용과 절차 무시가 빈번했다”고 증언했다.
엔지니어들은 문제를 보고하기보다 ‘일정을 맞추는 것’을 우선시해야 했다.
2020년대에도 동체 결함, 티타늄 불량, 복합재 오염 등 품질 이슈가 계속 발생하며 수백 대가 재검사 대상이 되었다.
FAA는 “787의 구조적 결함 가능성이 1,000대 이상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기업문화의 실패였다.
보잉 787 프로젝트는 단순한 기술 실패가 아니라, 경영과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가 낳은 교훈의 집합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깨달음은 핵심역량의 외주화 위험성이다. 보잉은 설계와 검증이라는 전략적 핵심 기능을 협력사에 맡기며 효율성을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품질관리 능력을 잃고 기술적 통제력을 상실했다. 핵심 기술은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 기반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두 번째로, 공급망 협업의 실시간 가시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협력 구조에서 단순한 계약 관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각 협력사가 생산 과정과 품질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통합 관리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데이터 기반 협업이 없으면, 한 조각의 오류가 전체 시스템을 멈추게 만든다.
세 번째 교훈은 혁신기술의 단계적 검증이다. 787 프로젝트는 신소재와 리튬이온 배터리 등 새로운 기술을 한 번에 도입하며 속도와 상징성을 앞세웠지만, 결과는 대규모 리스크였다. 신기술은 실험실에서의 검증을 넘어, 실제 운영환경에서 제한적으로 테스트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점진적 혁신 접근법’이 필요하다.
네 번째로, 기업문화와 안전의 균형이 경영의 핵심임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합병 이후 보잉은 주주가치와 단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며, 안전과 품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단기 수익 중심의 문화는 장기적 신뢰를 갉아먹고, 결국 브랜드 전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지속가능한 경영의 본질은 언제나 안전과 품질에 대한 꾸준한 투자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리더십의 전문성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보잉은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관리하면서도 초기 단계에서 전문성을 갖춘 리더를 배치하지 못했다. 기술과 공급망에 정통한 전문가가 초기 의사결정 구조에 포함되어야만 리스크를 예측하고, 문제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
IV. 결론: ‘혁신은 통제될 때만 의미가 있다’
보잉 787 프로젝트는 현대 경영사의 대표적 ‘하이테크 실패 사례’로 남았다.
이 사례는 혁신 자체가 실패의 원인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패의 본질은 혁신을 관리하지 못한 경영 시스템이었다.
보잉은 기술적으로는 한 세대 앞서 있었지만, 관리적으로는 한 세대 뒤처져 있었다.
그들의 혁신은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 ‘과속 혁신(Over-innovation)’이었다.
결국, 드림라이너의 교훈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의 혁신은 통제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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