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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사이, CEO

보고는 오가지만, 마음은 멀다

by 김용진

Ⅰ. 이름은 아는데 마음은 모르는 거리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찰나, CEO가 들어온다.
“요즘 어때요?”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짧은 대화지만 직원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이 대답이 괜찮았나?’, ‘괜히 말을 더 붙였다가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


CEO는 직원에게 다가갔다고 생각하지만,
직원은 그저 멀리서 손 흔드는 기분이다.


이 거리감은 단순한 위계의 문제가 아니다.
CEO는 조직 전체와 시장을 보고,
직원은 오늘 해야 할 일과 상사의 표정을 본다.
바라보는 시간이 다르고, 관심의 초점이 다르다.


그래서 ‘가깝게 일하지만 멀리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이 아니라 ‘인지적 거리’에서 생긴다.


Ⅱ. 같은 회사, 다른 세계


같은 사무실 안에서도 CEO와 직원은 전혀 다른 언어를 쓴다.


CEO는 회의에서 “고객 중심으로 일하자”고 말한다.
그 말은 시장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직원이 듣는 건 다르다.
“팀장이 먼저, 고객은 나중”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 말은 ‘현실과 맞지 않는 이상론’으로 들린다.


CEO가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는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경영’을 고민한다.
그러나 직원은 “이제 커피도 줄이고 회식도 사라지겠네”라고 느낀다.


CEO가 “조직을 재편하겠다”고 말하면
그에게는 ‘혁신 구조 최적화’이지만,
직원에게는 “누가 나가고, 나는 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존의 문제다.

한 직원은 말했다.
“대표님 말씀은 맞아요. 그런데 우리 팀장은 KPI 때문에 고객보다 증빙 문서를 먼저 챙깁니다.”

CEO는 답답했다.
“나는 고객 얘기를 했는데 왜 내부 보고 얘기가 나오는 거지?”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해석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CEO는 전체를 보고, 직원은 단면을 본다.

하지만 그 단면이야말로 ‘현장의 진실’이다.


Ⅲ. 메시지는 내려오며 바뀌고, 목소리는 올라가며 사라진다


CEO가 말한다.
“실패해도 괜찮다. 도전해라.”

중간관리자는 이를 이렇게 바꿔 말한다.
“실패는 괜찮지만 KPI는 책임져야 한다.”

직원은 생각한다.

“도전하라면서 실패하면 평가 깎인다는데?”

이 과정에서 의도는 ‘지시’로, 의미는 ‘부담’으로 변한다.


반대로 직원의 말은 위로 올라가며 약해진다.

직원이 “현장 일정이 너무 빡빡합니다”라고 말하면,
팀장은 “현장 일정이 조금 타이트합니다”라고 보고한다.
그 보고가 임원에게 가면 “일정 문제 없습니다”가 된다.


결국 CEO는 “왜 문제 없다더니 결과가 안 나오지?”라고 묻는다.

누구도 나쁜 의도는 없다.

하지만 메시지가 경로를 거칠수록 온도가 바뀐다.

리더십의 본질은 ‘의도의 왜곡’을 줄이는 일이다.


Ⅳ. 가까워지는 순간들


공장 현장 방문에서 CEO가 직원에게 물었다.
“무엇이 제일 힘듭니까?”

직원은 대답했다.
“생산보다 보고가 더 힘듭니다.”

CEO가 놀라 묻는다.
“보고가요?”

직원은 차분히 말했다.
“보고 준비가 하루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날 저녁, CEO는 보고 단계를 30%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직원들은 말했다.

“대표님, 우리 말 들은 거 맞네.”


진심은 화려한 비전이 아니라 단순한 실행에서 드러난다.


스타트업의 전사 미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CEO가 “왜 사용자가 늘지 않죠?”라고 묻자

개발자가 대답했다.
“기능보다 안정화가 먼저입니다.”

CEO는 잠시 멈추더니 말했다.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거군요.”
“네.”
“좋아요, 우선순위 바꿉시다.”

그 짧은 대화 하나로 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청은 말보다 빠른 변화를 만든다.


병원 조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의사가 말했다.
“환자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CEO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회전율이 중요하죠.”
그때 간호사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환자 설명은 언제 드리죠?”
CEO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건 생각 못했네요.”


그 한마디, “생각 못했네요.”

그때 진짜 대화가 시작됐다.

리더십의 출발점은 ‘모른다는 용기’다.


Ⅴ.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리더십


조직이 건강하려면 CEO와 직원이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CEO는 숫자와 전략 대신 사람을 봐야 한다.
보고서보다 표정, KPI보다 피로도를 읽어야 한다.

말로 신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일관된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직원은 ‘내 일만 잘하면 된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일이 회사의 방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할 때,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그리고 소통의 핵심은 단순하다.
CEO는 보고 대신 맥락을 들어야 하고,
직원은 불평 대신 ‘왜’를 질문해야 한다.


CEO가 “보고 줄이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직원이 “그럼 고객 응대에 집중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면
그 대화 하나로 조직의 공기가 바뀐다.


진짜 변화는 구호가 아니라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Ⅵ. 결론 ― 리더십의 온도


가깝고도 먼 CEO와 직원의 관계는
조직의 건강을 보여주는 온도계다.


CEO가 직원의 현실을 이해할 때, 전략은 현실이 되고
직원이 CEO의 의도를 이해할 때, 일상은 비전이 된다.


조직은 그 사이 어딘가,
두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성장한다.


이 거리는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서로의 시야를 바꾸는 통로로 관리해야 한다.


리더십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이고,
그 기술의 출발점은 ‘가까이서 듣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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