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물이다: 당신의 ‘기본 설정’은 안녕한가요?
살다 보면 문득 세상 모든 것이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늦잠을 잔 아침, 지하철은 눈앞에서 떠나가고, 겨우 탄 버스는 유난히 막히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선 종업원이 내 질문을 못 들은 척 지나칩니다. 이쯤 되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왜 나한테만 이러지? 다들 왜 저렇게 무례할까?'
사실,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말했듯,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는 '기본 설정(Default Setting)'을 가지고 태어나니까요.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에서 주인공은 나이고, 내 욕구와 배고픔, 내 짜증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는 '기본 설정(Default Setting)'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명한 연설은 아주 짧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나이 든 물고기를 만납니다. 나이 든 물고기가 "물은 좀 어때?"라고 묻자, 어린 물고기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되묻죠. "대체 물이 뭐야?"
이 비유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저는 가끔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을 때 이 문장을 떠올립니다. 내 앞의 손님이 지갑에서 동전을 하나하나 찾고 있을 때,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 사람의 뒷모습에 대고 무언의 비난을 퍼붓는 순간 말입니다. 그때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짜증, 그게 바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느려?"라는 생각은 자동적인 반응이지만, "어쩌면 저분은 손가락이 아픈 게 아닐까?" 혹은 "어쩌면 오늘 정말 힘든 일을 겪고 넋이 나간 걸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건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꽤나 피곤한 일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탓하는 게 훨씬 쉽고 짜릿하거든요. 하지만 월리스는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 이기적인 기본 설정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국 '외로움의 왕'이 되어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될 거라고요.
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무책임한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짜증 섞인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나와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능력을 뜻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해 보는 것, 그리고 내 중심적인 사고를 잠시 멈추는 것.
진정한 자유는 타인을 위해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능력입니다.
저는 이 연설을 반복해서 읽으며 생각합니다. 2026년이라는 차가운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성공 철학이 아니라 바로 이 '숭고한 불편함'이 아닐까 하고요.
인간은 무엇인가를 숭배하며 살기 마련입니다. 돈을 숭배하면 늘 가난하게 느껴질 것이고, 외모를 숭배하면 거울 속의 자신을 증오하게 되겠죠. 하지만 우리가 '공감'과 '주의 깊음'을 선택한다면,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일 아침 출근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짜증이 울컥 솟을 때 한 번만 나직이 읊조려 보세요.
"이것이 물이다."
그 짧은 자각이 당신을 무의식의 감옥에서 꺼내줄 아주 작은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 - BizM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