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 A학점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가?

‘잘 보이는’ 길과 ‘옳은’ 길 사이에서 오늘도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by BizManna

#81


오늘은 겨울이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창가에 서린 뿌연 김을 뒤로한 채,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곁에 두었습니다. 무심코 메모해 두었던 종이들 사이에서, 문득 한 문장에 손길이 멈췄습니다.


“윤리학 A학점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 내용을 찾아들어가니, 월스트리트 저널의 다소 날 선 제목이었습니다. 기사는 명문 비즈니스 스쿨들이 속출하는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윤리 교육을 어떻게 강화할지, 그 ‘방법론’을 아주 치밀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다 읽고 난 뒤, 제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차갑고 공허한 여운만 남았습니다.


수많은 전략과 커리큘럼 사이로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거든요. 화려한 건축 자재와 최신 장비는 넘쳐나는데, 정작 이 집을 왜 짓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그려둔 설계도 통째로 잃어버린 풍경 같았다고 할까요.


문득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 남긴 씁쓸한 일화가 스쳤습니다. 한 자선가가 미국의 유명 대학에 윤리학 석좌 교수직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려 했을 때, 학교 측은 고민 끝에 그 손길을 거절했다고 해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 절대 가치를 믿지 않는데, 도대체 무엇을 윤리라고 가르치란 말입니까?”


지성의 최전선이라는 곳에서조차 ‘옳고 그름’에 대한 합의가 사라진 시대라니요. 그러니 현장의 리더들이 안개 낀 바다 위에서 키 없는 배처럼 흔들리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혹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요령으로 버티다 보니, 기업의 윤리는 어느덧 이미지 관리를 위한 장식품이나 세련된 처세술로 전락해버린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릿했습니다.


제가 비즈니스 현장을 누비며 배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어요. 거센 파도 앞에서도 중심을 잡는 리더들은 의외로 가장 오래된 지혜나 고전의 원칙에서 답을 찾곤 한다는 겁니다. 그게 꼭 종교적인 신념 때문만은 아니더라고요. 수천 년의 시간을 이겨낸 정직, 성실, 이타심이라는 가치가 결국엔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생존 전략’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죠.


옛날 모세가 선포했던 그 단호한 규칙들도 사실 누군가를 옭아매려는 사슬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숨 쉬며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죠.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런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의 온도를 바꿔야 합니다. 곤란한 상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대체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법적인 규제만 피하면 된다는 교육은 힘이 없습니다.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지면 금세 무너지니까요. 하지만 내면의 진심과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하나로 묶는 ‘가치 중심’의 문화는 다릅니다. 이건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세상 어떤 풍파에도 고장 나지 않는 나침반 하나를 정성껏 심어주는 일과 같거든요.


저 역시 가끔은 모호하고 복잡한 현실 앞에서 주춤거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나침반은, 정말로 북쪽을 가리키고 있는가?”

이 오래된 질문이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2026년 여러분의 조직이 세운 그 단단한 기준이 누군가에게 따스한 선한 영향력으로 닿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BizM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