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나는 내가 가장 믿음직하다
어느덧 2026년입니다. 50대라는 나이는 참 묘합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 것 같은 조급함과, 이제는 다 부질없다는 허무함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나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저는 아주 낯설고도 반가운 결론 하나를 내렸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요구하는 ‘증거’들을 수집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한 것입니다.
그동안 참 열심히도 증명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유능한지,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또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를요. 신해철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처럼 명함에 적힌 직함이나 통장에 찍히는 숫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취들이 나를 증명해 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증거’들이 쌓일수록, 정작 내 안의 나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런 것들보다 ‘심증(心證)’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타인에게 내밀 수는 없지만, 나만은 분명히 알고 있는 마음의 증거들 말입니다. 퇴근길,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며 차를 갓길에 세우고 잠시 멍하니 바라볼 때 느껴지는 해방감. 예전 같으면 ‘갈 길이 먼데’ 하며 앞차만 쫓았겠지만, 이제는 그 붉은 빛이 내 마음을 건드리는 걸 기꺼이 허락하게 되더군요.
주말 아침, 장성해 제 앞가림하느라 바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저놈도 참 애쓰며 사는구나’ 싶어지는 순간도 그렇습니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짧은 찰나에 분명히 느껴지는 부자간의 묵직한 유대감 말입니다. 혹은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낡은 LP판을 닦으며, 지직거리는 소음 사이로 내 영혼이 비로소 안식을 찾고 있다는 확실한 느낌 같은 것들요.
세상은 여전히 묻습니다. “그래서 네가 이룬 게 뭐야?” 하지만 50대의 우리는 이제 이렇게 대답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룬 건 별로 없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다”고요. 비논리적이면 어떻습니까.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혼이 평온하다면, 그것보다 더 확실한 삶의 성공은 없을 테니까요.
물론 내일이면 또다시 현실의 파도가 밀려오고,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제 제게는 남의 시선으로는 결코 잴 수 없는, 나만의 단단한 ‘심증’들이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느낌 속에 머무르셨나요? 남들에게 증명할 만한 근사한 일이 없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마음 한구석이 따뜻한 심증으로 채워졌다면, 오늘 당신은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하루를 보낸 것이니까요. - BizM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