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아름다운 리더를 꿈꾸며
#39
성공한 리더의 정의는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과거에는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나를 따르라 외치는 카리스마가 전부인 줄 알았고, 얼마 전까지는 치밀한 전략으로 숫자를 만들어내는 데이터 분석가가 각광받기도 했죠. 하지만 리더가 자리에 있을 때 성과가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권한이 있고, 보상이 있고, 감시의 눈길이 있으니까요.
진짜 리더십의 민낯은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혹은 그 조직을 완전히 떠났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그가 떠난 자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면, 역설적으로 그 리더는 살아있는 동안 조직의 자생력을 갉아먹은 셈입니다. 짐 콜린스가 말했던 것처럼, '위대한 리더'는 자신의 부재가 조직의 위기가 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저에게도 리더십의 '바통 터치'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처럼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였죠. 정들었던 자리를 새로운 리더에게 인계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섰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 그 시스템을 좀 더 단단히 다져놓을걸", "새로운 리더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더 세밀하게 가이드를 줄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들이 뒤늦게 고개를 듭니다. 내가 정성을 쏟았던 조직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소식을 들으면, 마치 제 리더십의 유통기한이 거기까지였던 것만 같아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리더십을 넘겨준다는 건 단순히 서류 뭉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담긴 비전을 타인의 손에 온전히 맡기는 일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티브 잡스라는 거인을 기억합니다. 그는 세상을 바꾼 천재였지만, 그가 처음 애플을 떠났을 때, 애플은 방향을 잃고 침몰하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잡스라는 개인의 직관과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조직의 한계였습니다. 다행히 그는 다시 돌아와 성공을 일구었지만, 이 사례는 우리 같은 평범한 리더들에게는 결코 낭만적인 영웅담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이 없어도 당신의 꿈이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반면 USA 투데이의 알 뉴하스는 조금 다른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개인의 직관보다 조직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구축했고,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 비전은 조직의 DNA로 남았습니다. 리더 개인의 광채는 잡스보다 덜했을지 몰라도, 조직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어쩌면 더 '성공적인 바통 터치'를 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비전의 계승이라는 숙제는 현대 경영학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바통 터치'의 장면은 의외로 성경 속에서 발견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오랜시간 광야를 지나왔지만, 정작 본인은 약속의 땅에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운해하는 대신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 단순히 자리를 넘겨준 것이 아니라, 그에게 권위를 실어주고, 곁에서 훈련시키며, 공동체가 그를 신뢰하도록 준비시켰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례는 더 극적입니다. 고작 3년 남짓한 공생애 동안 그가 집중한 것은 거대한 제국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12명의 평범한, 아니 어쩌면 조금 모자라 보이기도 했던 제자들에게 모든 비전을 쏟아부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단 한 문장의 명확한 비전은, 리더가 떠난 뒤에도 제자들의 심장을 뛰게 했고 결국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조직에서, 혹은 내 삶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비전을 이어가야 할까요? 오랜 고민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언어의 단순화: 비전은 고상한 단어의 나열이어서는 안 됩니다. 말단 직원부터 신입 팀원까지 한 번에 알아듣고 가슴이 뛰는 명확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 후계자 양성은 '나중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곁에 있는 인재에게 멘토링을 제공하고 실질적인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합니다.
용기 있는 권한 위임: "에이, 내가 직접 하는 게 빠르지"라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직접 결정해 보게 하는 것, 그것이 계승의 시작입니다.
문화라는 DNA: 리더가 없어도 당연하게 지켜지는 원칙, 즉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내가 열정을 쏟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리더십은 단거리가 아니라 계주입니다. 내가 얼마나 빨리 달렸느냐보다, 다음 주자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 바통을 이어받아 다시 속도를 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성공은 내가 심은 씨앗이 내가 떠난 뒤에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
작년의 저처럼 아쉬움을 품고 있는 분들이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조차, 리더로서 조직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요. 이제는 그 아쉬움을 거름 삼아, 다음 리더가 더 큰 숲을 이룰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응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려 합니다. 진정한 성공은 내 이름이 드높아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심은 씨앗이 내가 떠난 뒤에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을 바라보는 일일 것입니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바통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BizM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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