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어느 주말, 대청소를 하다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예전에 쓰던 스마트폰 몇 대를 발견했습니다. 한때는 줄을 서서 살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고, 제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던 녀석들이죠. 그런데 지금은 전원조차 켜지지 않는 차가운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수백 가지 기능을 자랑하던 그 화려함은 어디로 가고, 불과 몇 년 만에 짐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요.
그 옆에는 대학 졸업 선물로 받은 낡은 만년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잉크를 채워 종이에 대니, 세월이 무색하게 사각거리며 부드러운 선을 그어냅니다. 문득 코끝이 찡해지더라고요. 화려한 기능 하나 없지만 '글을 쓴다'는 본질에만 충실했던 이 작은 도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저와 닮아가며 더 깊은 가치를 품게 되었는데, 정작 저는 그동안 무엇을 쫓아 살아온 걸까요.
사실 우리 삶도 이 스마트폰과 참 닮아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고, 유행하는 기술은 다 익혀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애씁니다. 이것저것 다 잘 해내는 '멀티 플레이어'가 정답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담아낼 수 있는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조차도 수만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금방 고장 나고 구식이 되어버리잖아요.
"좋은 것은 최고의 적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좋은 것은 최고의 적이다"라는 말, 예전에는 그저 멋진 격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이 말이 얼마나 아픈 진실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로 집중해야 할 '단 하나의 최고'를 방해하는 건, 나쁜 유혹이 아니라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수많은 '좋은 일'들이었습니다. 이것도 좀 해두면 좋을 것 같고, 저 모임도 가두면 도움이 될 것 같은 그 마음들이 결국 우리 인생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있었던 거죠.
성경 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라는 권면. 저는 이 구절이 '모든 일에 에너지를 다 쏟으라'는 뜻이라기보다, 내게 허락된 고유한 영역에서 '진심'을 다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우리가 가장 잘하고, 또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한두 가지 일에 모든 진액을 쏟아부을 때, 우리는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됩니다.
2026년이라는 숫자 앞에서도 여전히 세상은 우리를 재촉하겠지요. 더 복잡해지고, 더 빨라지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제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합니다. 무언가를 더 채우기보다는,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제거의 미학'을 배워보려 해요. 복잡함의 미로에서 길을 잃기보다, 나만의 만년필을 쥐고 선명한 길 하나를 정성껏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도구를 손에 쥐고 계신가요?
매번 바뀌는 유행을 따라가느라 숨이 차다면, 잠시 멈춰 서서 내 서랍 속 만년필을 찾아보세요.
당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그 한 가지,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을 테니까요.
생각만해도 멋지지 않나요.- BizM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