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물질이 생명이 되는 순간

세포의 조화로운 협업 – 우주가 생명을 만들어내는 질서

by 하늘바라기

손바닥을 펼쳐본다.

평범해 보이는 이 손안에 약 1,000억 개의 세포가 살고 있다.

그리고 내 몸 전체에는 약 37조 개나 된다.

상상도 안 되는 숫자다. 더 놀라운 건, 이 세포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각자 자기 역할을 정확히 해내면서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어떻게 수십조 개의 작은 생명체들이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세포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핵,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리보솜. 그때는 그냥 외워야 할 단어들이었다.

시험 끝나면 잊어버릴 이름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단순한 구조도가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우주였다.


세포 하나를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거기엔 완전한 도시가 있다.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가 있고(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이 있으며(리보솜), 물질을 실어 나르는 도로가 있고(소포체), 모든 정보가 보관된 중앙 도서관이 있다(핵).

각 기관들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분자들이 이동하고, 신호가 오간다.


과학자들은 세포 하나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만 수십 년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아직도 다 모른다. 알아낸 것보다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다.

세포는 그만큼 정교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가장 신기한 건 이거다. 세포는 스스로를 지킨다.

밖에서 영양분을 받아들이고,

에너지를 만들고,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고, 필요 없는 건 버린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아니, 실제로 살아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생명체인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 세포들이 모이면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생긴다.

마치 벽돌 하나하나는 단순한 돌덩이지만 그것들이 모여 집이 되는 것처럼,

세포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 기관을 이루고

기관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내 심장을 생각해 본다. 그 안에는 수십억 개의 심근세포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포들은 모두 같은 진동으로 뛴다.

누가 지휘하는 것도 아닌데 하나로 움직인다.

만약 각 세포가 제멋대로 뛴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은 작동하지 못한다.

생명은 멈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세포들은 서로의 진동을 느끼고 맞춰가며 하나의 박자로 모인다.


이게 바로 공명이다. 각각의 세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전체의 일부로서 조화를 이룬다. 마치 수천 명이 함께 일할 때 각자의

노력이 모여 하나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자기 조직화'라고 부른다.

중앙의 명령 없이도 각 부분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

개미집을 보라. 여왕개미가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수천 마리의 개미들은

완벽한 협업을 이룬다. 철새 떼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수백 마리가 하나의 모양으로 날아간다.


우리 몸도 똑같다. 뇌가 모든 세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다.

각 세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그 판단은 전체의 조화 안에서 이루어진다. 상처가 났을 때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제 상처를 치유해!"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혈소판이 모이고

백혈구가 움직이고 새로운 세포가 자라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든 게 저절로 진행된다.


이런 조화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과학자들은 '화학 신호'라고 설명한다.

세포들이 특정 물질을 내보내면 다른 세포들이 그걸 알아채고 반응한다는 것이다.

마치 서로에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나 여기 있어", "알았어, 나도 도울게"

"좋아, 같이 가자".

그렇게 세포들은 끊임없이 소통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그건 단순한 화학반응 이상이 아닐까? 그건 일종의 '앎'이 아닐까?

세포가 다른 세포의 존재를 느끼고 그 상태를 이해하고 알맞게 반응하는 것.

의식이라는 말을 쓰기엔 거창하지만, 최소한 '감응'이라고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밤에 잠들기 전,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수십조 개의 세포가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산소를 나르고 노폐물을 걸러내고 호르몬을 만들고 DNA를 복제한다.

쉬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정확하게.

그들 덕분에 나는 숨 쉬고 생각하고 꿈꾼다.


그러면 묘한 감사함이 밀려온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건 결국 이 작은 생명체들 덕분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37조 개 생명의 공동체다.

그들이 조화롭게 움직일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가능해진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처음 본 사람은 17세기의

과학자 로버트 훅이었다.

그는 코르크 조각을 관찰하다가 작은 방 같은 구조를 발견했다.

수도원의 작은 방을 뜻하는 '셀(cel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 작은 방들이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온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을.


우리는 세포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안에는 38억 년의 진화가 새겨져 있다.

첫 생명이 생긴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진 생명의 역사가.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는 그 긴 시간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물질이지만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나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원자들이 모여 만든 것은 또 다른 물질이다.

세포들이 서로 호흡을 맞출 때 그 협력 자체가 새로운 차원의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게 바로 생명이다."


손바닥을 다시 본다. 이 손으로 누군가를 어루만질 수 있다.

글을 쓸 수 있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가능한 건 수십억 개의 세포가 완벽한 조화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협업이 있기에 내 손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

생명은 기적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신비로운 무언가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다.

그건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서로를 느끼고 함께 울리면서 만들어낸 조화다.

물질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순간, 거기서 생명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생명의 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신의 몸속에서, 나의 몸속에서,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안에서. 보이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가장 오래된 질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