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마음의 영역 – 측정되지 않는 세계

by 하늘바라기

과학은 놀라운 일들을 해냈다.

우주의 나이를 계산했고, 원자의 구조를 밝혔으며,

생명의 설계도인 DNA를 읽어냈다.


우리는 138억 년 전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고,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하나하나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것,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왜 봄날의 햇살은 따뜻할 뿐만 아니라 '좋은' 걸까?

왜 슬픈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질까?

왜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보면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을까?


과학은 이 모든 현상의 물리적 메커니즘은 설명할 수 있다.

빛의 파장, 뇌의 화학반응, 호르몬의 분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건 '어떻게'에 대한 답일 뿐, '무엇'에 대한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fMRI 장비로 사람들의 뇌를 스캔하며 감정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찾아냈다.

기쁠 때는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슬플 때는 편도체가 반응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는 알아.

하지만 정작 그게 왜 '기쁨'으로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어.

그 느낌 자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이게 바로 과학이 마주한 가장 큰 수수께끼다.

의식의 문제, 또는 철학자들이 '주관적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는 뇌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뉴런이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것을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물리적 과정이 어떻게 '느낌'으로 바뀌는지는 알 수 없다.

마치 악보를 완벽하게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 음악이 왜 아름답게 들리는지는 악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10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봤다. 여전히 보던 그 얼굴이었다.

눈, 코, 입 모두 그대로였다. 하지만 무언가가 없었다.

할머니를 '할머니'로 만들어주던 그 무엇이 사라져 있었다.

생명이 떠난 몸은 단순한 물질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생명이란 단순히 물질이 모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거기엔 물질 너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어떤 이들은 말한다.

의식은 뇌의 복잡한 활동에서 '창발'하는 현상이라고.

마치 물 분자 하나하나는 젖지 않지만, 많이 모이면 '젖음'이라는

성질이 나타나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도 완전한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젖음'은 여전히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하지만,

'느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빨간색을 볼 때 내 뇌에서 일어나는 일과,

당신이 빨간색을 볼 때 당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같을 것이다.

같은 파장의 빛이 망막을 자극하고, 같은 신경 경로를 통해 신호가 전달되고,

같은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빨강'과 당신이 느끼는 '빨강'이 정말 같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빨강이라고 부르는 것을 내가 본다면

그건 내가 파랑이라고 부르는 색일지도 모른다.

이건 과학으로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문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반응한다.

"그건 그냥 뇌의 작용일 뿐이야. 언젠가 과학이 다 밝혀낼 거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는 의식을 완전히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확실한 건 하나다.

우리의 경험에는 측정되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음악을 들을 때를 생각해 보라.

과학은 음파의 진동수를 측정할 수 있다.

귀에서 달팽이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청각 피질에서 어떤 패턴이 활성화되는지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음악이 당신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왜 어떤 멜로디는 눈물을 부르고 어떤 리듬은 발을 들썩이게 만드는지,

그건 주파수와 진폭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사랑할 때 뇌에서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말한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이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런 화학 물질들이 분비된다는 것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일까?

만약 누군가에게 도파민과 옥시토신을 주입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경험이고, 느낌이고, 의미다.

그건 측정될 수 없는 무언가다.

그리고 바로 그 '측정될 수 없는 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진실이 있다.

측정할 수 있는 진실과 느낄 수밖에 없는 진실.

과학은 전자를 다루는 데 탁월하다.

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과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우리는 과학을 더 깊이 밀고 나가야 한다.

동시에 과학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마음의 영역, 느낌의 세계, 주관적 경험의 우주.

그곳은 여전히 미지의 땅으로 남아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별빛을 본다.

과학은 그 빛이 수백만 광년을 여행해 왔다고 말한다.

수소 원자가 헬륨으로 융합하며 에너지를 방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설명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

바로 그 별빛을 바라보는 내가 느끼는 경이로움, 작아지는 느낌,

동시에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비한 감각.

그건 어떤 방정식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괜찮은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설명되고 측정되는 세상은 어쩐지 삭막할 것 같다.

마음의 영역이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다는 것,

느낌이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

그게 우리를 여전히 경이롭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그건 결점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아직 탐험하지 않은 세상,

아직 경험하지 못한 울림, 아직 느껴지지 않은 떨림.

그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질문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어디서 오는가?

그리고 그 질문들이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