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영혼을 찾는 과학자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하다

by 하늘바라기

과학자들은 보통 측정할 수 있는 것만 연구한다.

질량, 온도, 속도, 전기 신호. 숫자로 표현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는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과거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 중 일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매혹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는 평생 연금술을 연구했다.

물질의 본질, 영혼의 실체, 신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그의 연구 노트를 보면 물리학 공식보다 신학적 사색이 더 많다.

우리는 그를 과학자로 기억하지만, 그 자신은 진리를 찾는 탐구자였다.


양자역학의 아버지 중 한 명인 '닐스 보어'도 비슷했다.

그는 원자의 구조를 밝혔지만,

동시에 의식과 물질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어떻게 의식이 물리적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

그는 과학의 언어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등장했을 때 과학자들은 당황했다.

입자가 동시에 두 곳에 있을 수 있다니.

관찰하기 전까지는 존재가 확정되지 않는다니.

이건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이야기였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게 의식의 역할을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관찰한다는 것,

즉 의식이 개입이 물리적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물론 논란이 많았다.

지금도 양자역학이 의식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해할 수 없고

신비롭다는 것. 물질과 에너지, 입자와 파동,

현실과 가능성의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신경과학자 '프란시스 크릭'은

DNA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말년에 전혀 다른 주제에 몰두했다.

바로 의식이었다.


그는 '놀라운 가설'이라는 책을 썼다.

의식이 신경세포의 활동일 뿐이라는 가설. 영혼 같은 건 없고,

모든 게 뇌의 작용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가 그렇게 확신하며

쓴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그의 주장과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가 설명하면 할수록, 의식이 단순히 신경세포의 활동이라고

보기엔 너무 복잡하고 신비롭다는 게 느껴진다.

그 자신도 책 말미에서 인정한다.

우리는 아직 의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어떤 과학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다.

의식이 뇌에만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떨까?

만약 의식이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이라면?

마치 질량이나 에너지처럼 말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가 어떤 형태의 마음(의식)을

지닌다고 보는 철학적 이론을 '범심론'이라고 한다.

모든 것에 의식이 있다는 것.

돌멩이도, 물도, 원자도 그렇게 의식이 있다.

물론 돌이 생각한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의식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

그 씨앗과 같은 것이 모든 물질에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들이 복잡하게 조직되면서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진지한 과학자들이 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방법으로는 의식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의 모든 신경세포를 완벽히 이해해도,

그게 어떻게 '느낌'이 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사였던 주변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수술실에서 수없이 많은 뇌를 봤다고 한다.

뇌를 열고, 각 부분을 관찰하고,

어느 부분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영혼'이나 '자아'를 본 적은 없다고.

뇌는 그냥 물질이었다. 회백색 덩어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물질이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꿈꾼다.

그게 가장 큰 미스터리라고 그는 말했다.

어떻게 3파운드짜리 두뇌 조직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쓰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상대성이론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1907년, '던컨 맥두걸'이라는 의사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의 몸무게를 쟀다.

영혼이 몸을 떠나면 무게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사람이 죽는 순간 약 21그램이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실험은 과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실험 방법도 엉성했고, 재현도 안 됐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그가 그런 실험을 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는 것.

그만큼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한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더 정교한 방법으로 접근한다.

뇌사 상태의 환자들을 연구한다.

임사체험을 보고한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심장이 멈췄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말하는,

터널 끝의 빛, 평화로운 느낌, 죽은 가족을 만난 경험.

이게 뇌의 산소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다른 차원의 경험인지 밝히려 한다.


답은 아직 없다. 어쩌면 영원히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혼이나 의식 같은 것은

본질적으로 1인칭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만이 내 의식을 경험할 수 있다.

아무리 정교한 기계로 내 뇌를 스캔해도,

당신은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직접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말한다.

의식의 문제는 '어려운 문제'라고.

쉬운 문제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건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풀릴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는 그 물리적 과정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으로 이어지느냐다.

이건 원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측정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측정하려 하고,

설명할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어쩌면 그게 과학의 본질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생각해 보면. 어쩌면 영혼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는 게 아닐까?

물질에게 영혼이 없다면, 왜 자신의 본질을 궁금해할까?

원자들의 집합이 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걸까?


영혼이 있든 없든,

우리가 그것을 찾는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

그 탐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물질의 한계를 알게 되고, 의식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미래의 과학자들은 계속 찾을 것이다.

AI, 양자컴퓨팅, 측정할 수 있는 실험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듯이,

물질과 영혼의 얽힘으로 서로를 연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비록 그 진실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를지라도.

영혼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찾아 나서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