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존재하게 된 이유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통계학자들이 계산해봤다고 한다.
부모님과 만날 확률,
그 수많은 정자 중 하나가 난자와 만날 확률,
그 이전 세대들이 만날 확률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존재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4천억 분의 1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낮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거의 불가능한 확률을 뚫은 결과이다.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부모님이 하루만 다른 날 만났어도,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태어났겠지. 비슷하게 생겼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태어나지 않은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상한 질문이다.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질문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생명은 인연에 따라 태어난다고.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라, 무수한 인연이 모여서 태어난다고.
나를 만든 건 부모님만이 아니다.
조부모, 증조부모, 그 이전의 모든 조상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이 만난 사람들,
그들이 겪은 사건들. 그 모든 게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과학적으로 보면 그냥 우연이다.
DNA가 무작위로 섞이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그 결과로 내가 생겼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뭔가 허전하다.
내 존재가 단순한 화학반응의 결과일 뿐이라니.
어쩌면 둘 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과학적으로는 우연이지만,
그 우연이 쌓이고 쌓여서 필연이 된다.
무수한 우연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생겨난다.
생명이 처음 생겨난 순간도 그랬을 것이다.
38억 년 전 원시 바다 어딘가에서, 분자들이 우연히 모였다.
그리고 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게 첫 생명이었다.
엄청난 우연이었다. 하지만 한 번 생겨나자,
그 생명은 계속 이어졌다. 변하고, 진화하고, 확산되었다.
우연이 필연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나도 그런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건 우연이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나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부모님의 자녀로, 이 시대, 이 나라에서.
그 모든 조건이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같은 DNA를 반씩 물려받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왜 그럴까?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유전자가 반, 환경이 반이라고.
하지만 최근 연구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그리고 순전한 무작위성도 큰 역할을 한다고.
같은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쌍둥이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달라진다.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하면서.
선택. 어쩌면 이게 핵심일지 모른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났지만, 그 이후는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먹을지, 누구와 친구가 될지, 무엇을 공부할지.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나를 만든다.
물론 모든 게 선택은 아니다.
태어난 가정, 시대, 나라, 몸. 이런 건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한다.
그 선택들이 우연을 의미로 바꾼다.
대학 시절 우연히 들어간 강의실에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난 사람이 있다.
원래 다른 수업을 들으려 했는데,
그 수업이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완전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우연 이후 두 사람은 선택했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대화하고, 알아가고, 사랑하기로.
우연한 만남을 필연적인 관계로 만든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것 같다.
우연히 주어진 것들을 선택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간다.
태어난 건 우연이지만, 어떻게 살지는 선택이다.
어떤 사람이 될지, 무엇을 소중히 여길지, 누구와 함께할지.
그래서 생각해 보면,
영혼이 생명을 선택한다는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일부는 사실이다.
우연히 태어났지만, 나는 내 삶을 선택한다.
매 순간 나는 나로 존재하기를 선택한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선택이 시작된다.
오늘을 어떻게 살지. 누구에게 친절할지. 무엇에 시간을 쓸지.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하루들이 모여 일생이 된다.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무슨 뜻일까? 우리는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우리가 누구인지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본질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만들어간다.
이게 무서우면서도 자유롭다.
무섭다는 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결국 내 선택의 결과다.
남 탓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롭다는 건,
언제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를 수 있다.
나는 계속 나를 다시 만들 수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 생각한다.
저 별빛은 수천 년 전에 출발했다.
어쩌면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빛은 지금 여기 도착했다.
나는 그 빛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낀다.
우연히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저 별을 보게 됐지만,
내가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선택이다.
우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운명이라며 체념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우연이라며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우연을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거기 존재한다는 것.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거의 불가능한 확률을 뚫고,
우리는 이 순간에 있다.
그 우연을 선택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영혼이 생명을 선택했든, 생명이 우연히 생겨났든,
중요한 건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존재하고, 선택하고, 살아간다.
그게 바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