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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메트리오 Mar 12. 2021

카카오 인사평가가 쏘아올린 큰 공

우리나라 직장인은 인간다움을 포기해야 하는 건가

"카카오"와 "유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키워드가 검색창에 올라왔다. 검색어를 타이핑하면서도, 기사를 클릭하면서도 설마 싶은 마음이 한켠에 있었다. 들어와서 보니 기사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느 카카오 직원이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유서를 올렸는팀장과 실장을 비롯한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크게 당한 흔적이 있었다. 이 글이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지면서 인사팀이 가능성 있는 모든 직원들에게 생사 확인을 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유서 내용을 보면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조직장하고 갈등이 생긴 이후 상향 평가에서 (동료 평가가 같은 직급의 동료들을 평가하는 항목인 반면, 상향 평가는 직원들이 상사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조직장과 관련된 평가를 했는데, 익명으로 보장된다는 말과 달리 2차 조직장이 누설을 해서 조직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상사들은 한 발 나아가 동료들에게 험담으로 왕따 분위기를 조장해 심리적으로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당사자는 회사 테라스에서 상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카카오는 내부 괴롭힘을 접수하고 방지하는 팀이 존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당사자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회사 내의 자원을 활용했는데 이게 최선인가 싶을 만큼 물음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회사원이 회사의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하면 악순환이 반복되고 내부 분열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글이 화제가 되었다. 앞의 당사자와 마찬가지로 상향 평가에 조직장의 행동을 폭로했으나, 상위 조직장이 이를 누설하면서 부서 조직장에게 찍히게 되면서 투명인간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글쓴이. 이 글에 따르면 조직장이 평가결과를 참고하는 것을 넘어서 산정까지 스스로 책정할 수 있을 정도로 권한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다면평가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 있었다. "이 사람과 일하기 싫습니다."라는 데이터를 전사 % 와 비교를 하면서 전 직원에게 제공을 한다는 점. 카카오 측에서는 직원의 아이디어로 탄생했으며 당시에 다수가 찬성했다고 해명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고 해도 최종 승인을 하는 쪽은 경영진이다. 직원의 아이디어라서 수용했다 쳐도,  특정 정책을 채택하고 시행하면 이러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불찰은 여전히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다면평가에서 숫자만 보여주고 부연설명인 "이러한 이유로 당신과 일하기 싫습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피드백이 없다면 무슨 도움이 될까? 이유도 모르는 채 뺨 맞는 거랑 크게 다를 게 있나 싶다. 끝으로 글과 함께 올린 정신과 처방전. 일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두 편의 글을 읽는 내내 당혹함, 연민, 분노, 슬픔이 한꺼번에 몰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법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최근에 통과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전혀 안 되는 실정이다. 괴롭힘 금지법에 의하면 해결 주체가 사용자이며 사업주가 직장 내의 괴롭힘을 조사하고 그에 상응하는 해결 조치를 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만약에 사업자가 가해자라면? 제대로 해결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부에 진정 조치를 요청할 수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행정지도가 다이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며, 가해자가 앙심을 품으면 2차 가해를 통한 보복으로 악화할 수 있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청주대 갑질 사건, 종근당과 일우재단의 운전기사 폭언 사건, 한국미래기술 직원 폭행 사건 등등 수면 위로 올라온 사건만 해도 여럿 있지만 수면 아래에 영원히 잠겨있는 사건은 얼마나 더 많을까? 드라마 <미생>을 보면 인턴이 된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답지 못한 처우를 받을 때가 많았다. 오상식 과장과 선차장 역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종종 꾸역꾸역 삼켜야만 했다. 2014년에 방영된 미생은 당시 우리나라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가? 바뀐 게 있다면 실질적으로 얼마나 바뀌었는가? 



수평적 기업이라는 칭호를 받은 카카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유감을 넘어서 너무나도 착잡한 마음이 든다. 20대가 제일 근무하고 싶어하는 회사인 카카오. IT회사에서 일하는 자부심과 함께 돈도 꽤 벌면서 배우는 게 많기 때문에 종종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뽑힌다. 하지만, 1위로 뽑힌 또다른 무시못할 이유는 회사 문화와 분위기가 기존의 다른 회사와 비교해 직급과 관계없이 의사소통과 의견 반영이 이루어지며, 보다 개방적이며 자유로울 것이라는 낭만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회사마저 이런 일로 논란에 휩싸이면 도대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카카오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기업에서는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날까? 우리나라 직장에서는 상부와 동료의 괴롭힘 없이 일하는 게 사치인가? 인간다움은 회사에 들어서면 버려야 하는 건가? 학폭(학교 폭력)이 사회적으로 많은 화제가 되는 가운데, 직폭 (직장 폭력)이라는 또 다른 비극적인 신조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들면서 순간 섬뜩한 마음이 여러 갈래로 든다. 



남들처럼 카카오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크게 실망했다. 카카오는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면서 4차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도약했다. 카카오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선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개선이 불가피하다. 2월 25일 간담회와 더불어 어제 3월 11일 추가 간담회가 열렸는데 그 안에서 허심탄회한 대화와 함께 좋은 해결책과 피드백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김법수 의장이 직장 내 괴롭힘은 근절되어야 한다고 직접 말한 만큼, 이번 논의를 통해 눈에 띄는 개선이 보이길 희망한다. 앞으로 일하게 될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 해결에 힘쓰길 바란다.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기본적인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게끔. 


 

<참조>

https://blog.naver.com/gomsune1/222247833031 (화제가 된 2편의 글 전문)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22315230446244   (2021.2.24 머니투데이 기사, "'불통 성과급, 지옥 평가 논란'... 이해진 김범수의 해법은 뭘까")


http://www.hani.co.kr/arti/economy/it/984287.html (2021.2.24 한겨레 기사, "'당신과 일하기 싫다' 인사평가 갈등 카카오, 3월 11일 추가 간담회 연다")


https://www.youtube.com/watch?v=mBXTUsKSuRM (2021.2.26 KBS 시사직격 "지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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