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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메트리오 Sep 08. 2021

'영국 대학원 입성' 마라톤

달리고 달린 영국 대학원 지원 과정

국제관계학 학사에서 심리학 석사로 바꾸기로 결정을 내린 후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맨 처음 생각한 것은 어느 나라에서 공부를 할지였다. 각 나라마다 교육 시스템이 다르고 같은 전공이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커리큘럼을 가진 만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검색을 해 보니 미국은 석사 과정이 대부분 2년이지만, 영국은 1년짜리 석사 과정이 많이 포진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미 영미권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나로서는 미국과 캐나다와 영국에 끌렸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엄연한 영미권 국가이나, 심리학과 관련해 여러 학과가 있지 않다는 점과 졸업 이후 커리어를 고려해봤을 때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제외했다.



다음으로는 무엇을 생각할까 고민해보다 하마터면 제일 중요한 기준을 놓칠 뻔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내가 처한 상황에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나는 보통의 경우와 달리 심리학 학사로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학 학사 졸업이 필수 사항인 경우 해당 학교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려 4년의 시간을 학사 전공을 딴다고 바쳤는데, 전공 바꾼다고 4년제 학사를 또 하는 바보 같은 짓은 지양해야 하니까 말이다. 보통 'Prerequisite' 또는 'Requirement'라는 필수사항을 보면 나와서 먼저 그 항목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학교들이 늦가을 낙엽 떨어지듯 리스트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예상보다 일찍 폭이 좁아져 학교 선정이 쉬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이러다 지원할 만한 학교가 없지 않나 내심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남은 학교를 보니 전부 다 영국 학교인 게 재밌었다. 여기서부터 영국과 나의 인연이 맺어졌다.



영국으로 좁혀지고 난 이후, 영국 학교들의 특성을 알기 위해 각종 자료를 찾아봤다. 찾아보며 느낀 점은 해외에 위치한 학교들이 국내와는 달리 전공에 따라 좋은 학교의 리스트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가령, A라는 학교는 역사학으로 유명한 대신에 수학이 영 별로일 수 있고, B리는 학교는 컴퓨터공학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지만 영문학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 내신과 수능 성적에 반해 학교를 끼워 맞추는 방식의 우리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보니 학교를 선정하는 데 있어 까다로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추가로 해당 학과 교수들의 평판도 주요 고려 대상에 들어갔는데, 석박사 과정은 지도 교수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앞으로의 학교 생활은 물론 향후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은 게 기억이 났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의 로드맵도 생각했다. 여기서 로드맵이란 석사를 졸업하고 나서 박사를 이어서 할 건지, 아니면 취업 쪽으로 알아볼지, 만약에 취업을 한다면 어느 산업을 눈여겨볼지를 포함한다. 혹자는 거기까지 생각을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며 중간에 얼마든지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청사진을 그려두는 게 물 흐르는 대로 가는 것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측면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좋다고 느껴 대략적인 계획을 그려놨다. 코로나를 뚫고 전공까지 바꿔가며 유학을 계획다 보니 최대한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를 모았다면 이제부터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을 작성하면서 각 학교에 대한 구체적인 특징을 알아갈 시기였다. 학교 수업 구성, 지도교수 선정 과정, 기숙사 제공 여부, 졸업생들의 커리어, 입학생을 선별하는 기준, 신입생으로 된다면 준비해야 할 것 등 물어볼 사항이 가득했다. 우선, 영국유학원들이 주최하는 영국 유학 박람회에 참석해 학교 입학 담당자를 만나 심리학 석사 과정 프로그램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 여파로 수많은 학교들이 장래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Q&A 세션을 열게 되면서 질문을 할 기회가 생겼다. 여기서도 여러 질문을 던지면서 학교의 특장점을 얘기해달라고 요청적이 있었다. 그러자 학교 담당자들은 준비됐다는 듯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 학교는 이래서 저래서 특별하다는 연설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영국 유학 박람회에서는 직접 대면으로 학교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다면, 온라인 Q&A 세션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도 들을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면서 학교 선정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 적이 꽤 있었다.



여기까지 달린 결과 최종으로 지원을 할 학교가 3군데로 압축되면서 탐색전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하나씩 행동으로 옮길 타이밍이 왔는데, 바로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서류와 에세이를 작성할 차례였다. 먼저 학부 졸업 증명서와 성적표를 끊어오기로 했는데 이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으로 추천서를 받아오기로 했는데 괜찮은 교수님을 선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를 개인적으로 잘 알며 학업적인 면에 대한 장점을 잘 어필해 주실 분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두 교수님을 선정하고 각각 이메일을 보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두 교수님 모두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겠다고 하시면서 일단락이 났다.



이제 마지막 남은 장애물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였다. 솔직히 처음 시작했을 때는 시간을 이렇게나 잡아먹을 줄 몰랐다. 이력서야 한 장짜리에 불과하고, 자기소개서 또한 3000자 내외라 부담이 덜했다. 근데 고쳐도 고쳐도 끝이 안 보이는 터널에 있는 듯했다. 왜 수정을 하고 나면 고쳐야 할 게 또 보이는지. 글을 쓰다 보면 자주 느끼게 되지만, 특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이런 감정을 배로 느끼게 된다. 어떤 때는 처음에 봤을 때는 문제없다고 느끼다가 다시 보게 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서 자기소개서가 크게 발목을 잡았는데, 바로 3000자 내외라는 축복이 오히려 짐이 되면서부터였다. (페이지 수로 치면 1장 반이다.) 어떤 계기로 국제관계학에서 심리학으로 관심사가 기울었으며, 심리학을 준비하는 과정, 왜 특정 교수를 지도교수로 선택하고 싶은지, 미래 논문 주제, 끝으로 학교에 들어가면 이러한 학업과 활동을 하겠다는 열의를 설명하기에 3000자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생각나는 대로 쭉 썼는데 무려 6000자에 달했다. 문장과 단어를 꾸역꾸역 하나씩 지워갔지만 5000자에서 맴돌면서 그 이하로 줄이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지인들한테 SOS를 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과 함께. 그중 한 명이 아예 양식을 바꾸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하게 되면서, 기존의 자기소개서는 휴지통으로 귀양 보내고 다시 흰 배경의 문서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인상 깊은 내용은 남겨두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도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매끄럽게 하는 과정부터 시작해 익숙한 미국식 영어에서 영국식 영어로 바꾸기까지 길고 기나긴 수정 여정은 계속됐다. 물론 덤으로 지인들한테 수정을 또 해 달라고 괴롭힌 것도 포함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한 결과, 끝에 가선 자기소개서를 보기만 해도 싫증이 날 정도였다. 이 정도까지 노력했으니 그냥 제발 붙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가득했다. 서류랑 기타 정보 사항이 틀린 게 없다는 걸 여러 번 확인했음에도 또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최종 제출을 뜻하는 Submit 버튼을 눌렀다.

 


몇 달 뒤 학교에서 하나씩 결과가 나왔는데 3군데 전부 다 합격하는 대박을 맞이했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부모님께 먼저 영상통화를 걸고 추천서를 작성한 교수님과 자기소개서에 도움을 준 친구들한테 이메일로 결과를 알렸다. 축하한다는 답장이 쏟아짐과 함께 부모님의 반응을 보고 울컥했다. 한참이 지나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합격한 학교 중에 어디를 고를지 생각했다. 행복한 딜레마에 빠진 만큼, 냉정한 마음가짐을 갖고 학교별 심리학 과정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원 당시에는 미처 생각지 않았던 것을 고려했는데, 그중 제일 큰 사항은 내가 가서 얼마나 적응을 잘할지였다. 학교가 위치한 곳도 서로 달랐고 학생 수를 비롯해 저마다의 분위기가 독특했기 때문에 내가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를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영국이라는 새로운 곳을 가게 되는 만큼 빨리 적응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나머지 학교들도 워낙 좋은 후보라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힘들었지만, 고심 끝에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을 (University of St Andrews) 골랐.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만남을 통해 지성인으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또 한 번 성장을 하리라 기대한다.



언젠가부터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부정한 적이 있었다. 고생을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지 않은 현실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앞에서 직접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보처럼 믿기로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그런 신념이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기꺼이 추천서를 써 주신 교수님과 자기소개서를 수정해 준 친구들한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교수님과 친구들 없이는 영국 대학원 입성이라기나마라톤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라톤을 쉼 없이 달린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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