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소그래피 - 가장 정밀한 예술의 역사
1958년 7월, 미국 댈러스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회사의 다른 연구원들은 모두 휴가를 간 상태였으나, 아직 신입인 잭 킬비(Jack Kilby)는 휴가 자격이 없었다. 그는 텅 빈 연구실에 혼자 남았고, 이 기회에 그동안 궁금했던 한 가지 문제를 조금 더 깊이있게 연구해 보기로 했다. 당시의 전자 회로는 기판위에 개별 부품들을 조립하고 손으로 납땜하는 방식이었다. 기판에 전자를 위한 도로, 즉 회로를 부착하고, 사이사이에 전자를 통제할 수 있는 부품, 트랜지스터, 저항, 커패시터 등을 연결하였다. 전자 제품의 성능이 올라간다는 것은 회로의 구성이 더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복잡한 회로는 수천 개의 부품을 연결해야 했다. 자연히 수천 번의 납땜이 필요했다. 따라서, 납땜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숙련도에 따라 불량률이 결정되었고, 비용 효율성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킬비가 집중했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었다.
“모든 부품을 같은 재료로 만들면 어떨까?”
“하나의 실리콘 조각에 전부 만들면 납땜할 필요가 없을텐데?”
텅 빈 연구실에서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손으로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저항과 커패시터 등도 만들어 모두 연결시키는 스케치였다. 모든 부품들이 하나의 기판 위에 구현되는 회로. 직접 회로(Integrated Circuit, IC)의 역사가 시작되는 찰라였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까?’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되어야할 기술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평면 공정으로 만드는 IC 칩’의 아이디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새로운 지식들이 축적되었다. 새로운 혁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틀을 만들어 찍어 내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인류가 해왔던 것이라는 게 알려졌다. 혁신의 필요성, 새로운 지식과 함께 인류의 지혜를 활용할 방법이 있을 것처럼 보였다.
'리소그래피(Lithography)'는 '돌(lith-)'과 '쓰다(graph-)'는 말의 합성어로, 원래는 19세기 인쇄 기술을 의미했다. 돌판에 그림을 그리고,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방식을 의미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의 판화도 같은 방식이었다. 그림이나 글자가 새겨진 돌판을 만들고 잉크를 묻히면 여러번 반복해서 똑같은 그림을 찍어낼 수 있었다. 하나의 인쇄판을 만들어 수천 권의 책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크기만 다를 뿐, 일상 생활에서 보는 도장과 같은 원리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 오래된 기술이 반도체와 만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제조 기술이 되었다. 현재는 13.5nm 파장의 빛으로 3nm 크기의 패턴을 원자 10개 정도의 정확도로 그린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공정이 가능했을까? 이것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사람들. 엔지니어, 물리학자, 화학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투쟁, 경쟁과 협력. 이 장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59년 페어차일드 반도체 연구실. 평면 공정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 두 엔지니어, 제이 라스롭(Jay Lathrop)과 제임스 낼(James Nall)은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다. 리소그래피 공정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실리콘 웨이퍼 위에 화학물질을 바르고, 잘 말린 다음 패턴이 새겨진 마스크를 덮는다. 그리고, 마스크 위에서 빛을 쪼이면, 패턴에 의해 빛을 쪼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뉜다. 이후, 마스크를 걷어 내고, 실리콘 웨이퍼를 적당한 화학 용액에 담그면, 빛이 쪼여진 부분의 화학물질만 제거된다. 사진 인화처럼, 마스크의 패턴이 그대로 웨이퍼에 옮겨진 것이다. 이후 이 패턴에 맞게 회로와 트랜지스터 등의 부품을 만들면 하나의 칩이 완성된다. 다시 1959년의 연구실로 돌아가서, 이 당시의 마스크는 손으로 직접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정밀도와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었고, 웨이퍼 위에 직접 덮는 접촉 방식이다 보니 몇 번 쓰면 더러워져서 버려야했다.
라스롭의 아이디어는 사진 인화 기술을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리소그래피 공정을 본격화한 것인데, 간단히 정리하면 [화학물질(포토레지스트) 도포 - 마스크 정렬 - 빛 투과(노광) - 화학물질 제거(현상) - 패턴 완성(에칭)]의 공정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획기적인 것이었고,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회로를 가진 칩이 탄생했다. 기존 비효율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마스크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더 작은 패턴, 더 정밀한 칩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라스롭은 특허를 신청했고, 이것이 현대 리소그래피의 시작이 되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리소그래피는 표준 공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방식을 고안한 페어차일드, TI, 그리고 인텔 등은 산업의 리더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더불어, 이 공정에 적합한 장비와 재료, 즉 노광장비와 화학물질 등을 공급하는 기업들이 부각되었다. Kasper Instruments와 Nikon, Canon 등의 장비 업체, 그리고 듀폰(DuPont)과 같은 화학 기업들이 그들이었다.
초기 리소그래피 공정은 전기공학 엔지니어들이 주도했다. 다만, 이들은 화학과 광학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어서 공정 개선 작업이 더디었는데, 1960년대 후반을 거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이 공정은 눈부신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1973년, 미국의 광학 기업인 Perkin-Elmer가 새로운 리소그래피 공정을 제안했다. 마스크와 웨이퍼를 분리해 비접촉 방식을 사용해 마스크 수명을 늘리는 대신 마스크와 웨이퍼의 위치를 정밀하게 조정하는 장비가 출시되었다. 복잡하고 비싼 장비였지만,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사용해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비용이 개선되면서 효율이 크게 상승했다.
이후, 리소그래피 장비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빛의 파장을 조절하는 것, 빛과 마스크 사이의 거리, 마스크와 웨이퍼 사이의 거리 조절 등 최적화가 필요한 요인들이 하나 둘씩 해결되었다. 그 결과 더 정밀한 패턴과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다. 무어의 법칙이 발표되자, 산업의 전문가들은 리소그래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광학, 기계공학, 화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계속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1978년 미국. 또 다른 광학 기업인 GCA Corporation의 수석 엔지니어 데이비드 만(David Mann)은 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화학물질이 도포된 웨이퍼 위에 마스크를 정렬하던 방식은 웨이퍼 크기가 커지면서 조금씩 비효율이 누적되고 있었다. 웨이퍼가 커지면 마스크와 빛을 쪼여주는 렌즈도 같이 커져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웨이퍼 가장자리는 초점이 어긋나기 쉬었다. 렌즈 수차(Lens Aberrations)라는 현상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만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었다. ‘웨이퍼 전체에 빛을 한 번 쪼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이동하면서 일부분을 여러번 쪼여주자.’ 여러 단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Step and Repeat’ 방식이 제안되었다. 여러 번 쪼여줘야 해서 공정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렌즈 수차에 의한 문제는 제거할 수 있었다. 기계적 성능을 개선하면 공정 시간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아이디어는 즉시 적용되었고, 큰 개선이 필요없어서 바로 새로운 제품이 나타났다. GCA DSW4800. 이후에 '스테퍼(Stepper)'로 불리게되는 리소그래피 노광 장비의 첫 등장이었다.
축소 렌즈를 통해 일부분만 집중하니, 정밀도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마스크 제작이 용이해졌다. 흔히 말하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한 셈이었다. 모든 기업들이 장비를 교체하거나 새로운 팹라인에 스테퍼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화학물질, 새로운 렌즈, 새로운 공정. 반도체 칩 생산과 관련된 모든 것이 스테퍼를 기준으로 재조정되고 최적화되기 시작했다.
리소그래피 공정이 표준화되자 전문가들은 더 작은 패턴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무어의 법칙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미세 패턴은 광학 기술이 핵심이었다. 더 작은 파장의 빛을 쪼여야하고, 더 정밀한 렌즈로 이 빛을 조절해야만 했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수은 램프의 빛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잘 조절하면 약 436nm 파장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빛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빛은 곧 일반화되어 Mercury g-line 혹은 그냥 g-line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스테퍼 장비도 광학 기업이 두각을 나타냈다. GCA, Nikon, Canon 등의 기업이 엄청난 투자를 통해 기술 혁신을 선도해갔다. 특히, Nikon의 약진이 돋보였는데,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였음에도 정밀도에 대한 상대적 장점을 앞세워 시장을 잠식해갔다. 높은 완성도를 위해 Nikon은 모듈 방식이 아닌 일체형 스테퍼를 제공했는데, 초기에는 호응이 컸지만, 후에 모듈 방식을 앞세운 ASML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 Nikon과 Canon은 수은 램프를 사용했지만 더 정밀한 365nm 파장의 장비를 출시했다. g-line과 구별하기 위해 i-line으로 정리된 스테퍼가 다시 공정을 휩쓸기 시작했다. 산업의 경쟁은 누가 더 정밀한 칩을 만들고, 더 큰 웨이퍼를 사용하는지로 모아졌다. 그리고, 이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스테퍼의 개선과 맞물렸다. 이런 상황에서 네덜란드의 ASML이 산업에 뛰어들었다. 시장의 진입 장벽이 워낙 높아 누구도 신경쓰기 않았지만, ASML은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혁신 경쟁이 심해지면,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서는 작은 스테퍼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고, 파트너들과의 협업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협업에 있어서 ASML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선도 기업들인 Nikon과 Canon 등은 지나치게 혼자 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I-line stpper는 최고의 효율을 보여줬지만, 혁신은 더 작은 파장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200nm 혹은 그 이하의 스테퍼를 출시하는가에 몰려들었고, 반도체 칩 제조사들은 더 정밀한 기계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다음 세대에 대한 이름이 붙을 정도였다. DUV(Deep Ultra Vilolet) 장비. 300nm 이하의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출력의 레이저가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광학계가 전부 새롭게 설계되어야했다. 선택지는 KrF Eximer Laser(248nm)와 ArF Eximer Laser(193nm) 두 가지로 좁혀졌다. 빛의 파장은 작을 수록 높은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작은 파장의 빛을 내기 위해 특수한 설비가 필요한데, 이런 조건들을 최적화시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찾아낸 것이 크립톤(Kr)과 아르곤(Ar)의 물성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빛의 파장이 결정되면 여기에 맞게 렌즈 수정이 필요하고, 화학물질도 따라서 바뀌어야 했다. 한마디로 스테퍼가 바뀌면 모든 팹라인 공정이 다 수정되어야 해서, 새로운 스테퍼를 위해 새로운 라인을 건설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반도체 칩 제조사는 이렇게 새로운 라인을 건설할 준비를 마치고, 스테퍼 제조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에서는 갑과 을이 바뀐 것 같기도 했다. 스테퍼 제조사가 큰 소리를 쳤고, 구매자인 칩 제조사는 사정하는 그런 일들도 흔하게 일어났다.
이 혁신의 경쟁에서 ASML이 기회를 잡았다. 이들은 경쟁사들이 자체 개발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핵심 부품인 레이저와 렌즈를 파트너에게 의뢰했다. 특히, 독일의 전통적인 렌즈 제조사, Carl Zeiss와의 협업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두 회사는 전담팀을 별도로 만들어 처음부터 같이 설계하게 했고, 복잡한 광학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그 결과, 1995년 PAS 55000이 출시되었다.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KrF DUV 스테퍼가 나온 것이었다. 역시 후발 주자였던 TSMC가 이 장비를 우선적으로 적용했고, 이 스테퍼의 우수성을 인정해줬다. 이렇게 잃을 게 없었던 후발주자들이 똘똘 뭉쳐 새로운 혁신을 가능하게 만들자, 전체 생태계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ArF DUV도 출시되었고, 한 동안 이 스테퍼를 중심으로 공정이 최적화되어 갔다. 리소그래피 공정이 안정화되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칩 제조사들은 더 큰 웨이퍼를 사용하는 경쟁에 몰입했다.
그러나, 이 산업은 항상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숙명이 주어졌다. 누군가는 더 작은 파장의 공정을 고려해야만 했다. 1997년 TSMC.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경력을 쌓은 뒤 귀국해 리소그래피 공정을 연구 중이던 린번젠(林本堅)은 ArF DUV의 193nm도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 이 예상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것이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해법은 오리무중이었다. 린번젠은 평소에 진중하고 예의바른 사람이지만, 연구에 있어서는 엉뚱한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잘 알려진 광학 원리를 고민하고 있었다. 빛이 물을 통과하면, 파장이 짧아진다. 공기와 물의 굴절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스태퍼에 적용할 수 없을까?’ 이론 적으로는 레이저를 바꾸지 않더라도 193nm ➠ 134nm로 전환이 가능했다. 그의 상상력은 너무 엉뚱해서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래의 팹라인은 수조 속에 지어야하냐는 비아냥도 많았다. 방진복에 산소통을 달아야 하냐는 농담도 종종 들리곤 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이 산업은 엉뚱한 상상과 집요한 실험이 승리하는 곳이다. 린번젠은 그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방법을 몇 년 동안 연구했고, 2002년 “Immersion Lithography”라는 명칭으로 학회에 발표했다. 액체에 담긴 장비라는 뜻으로 ‘액침 노광’이라고 번역되었다.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으나,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린번젠이 제시하는 명확한 데이터에서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TSMC의 핵심 파트너였던 ASML이었다. 초기 검증 작업 이후, 2004년 ASML은 약 5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개발팀을 꾸렸고, TSMC와 함께 수없이 많은 실험을 실시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었다. 혁신의 장벽이 너무 높아진 광학계보다 기계적인 조절만 하면 되는 액침 기법이 조금은 더 수월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인데, 어느정도 순수해야 문제가 없는지 판단해야 했고, 실제로 그 정도의 순수한 물을 공급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사용한 물을 회수하고 물속에서 정밀하게 움직이는 웨이퍼 이동 장치 등도 다시 설계해야 했다. 그리고, 이 장치에 적합한 화학물질도 필요했다. 이런 작업들이 이어지다보니, 기존에는 없었던 유체역학 엔지니어들이 합류했고, 실제 Jan van Schoot은 이 프로젝트의 진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엔지니어가 되었다.
2006년, 린번젠이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1997년 이후 약 9년 만에 그의 아이디어를 채택한 첫 장비가 출시되었다. ASML XT:1900i. 193nm ArF 광원을 사용하지만, 물에 담가 더 세밀한 패턴 형성이 가능한 장비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린번젠의 기대값은 134nm로 파장을 줄여 정밀성을 높이는 것이었는데, 개선을 통해 이 수치를 무려 45nm로 줄일 수 있었다. 단숨에 100nm 이하의 해상도를 성취한 것이었다. TSMC는 물론, 삼성전자와 인텔 등의 선도기업들이 즉각 이 장비를 구매해 자신들의 생산 능력을 향상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액침 방식은 업계 표준이 되었다. 이 장비를 개발한 ASML은 이제 경쟁자들을 저멀리 떨어뜨린 확고부동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액침 장비는 만화같은 상상이 현실화된 엄청난 혁신이었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광학계의 혁신이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업계에서는 슬슬 무어의 법칙을 이제 포기하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정밀한 패턴 작업은 만화같은 상상으로도 달성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분야에는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천재들이 항상 있었다. 한 편에서는 광학계를 혁신하는 작업이 지속되는 동안 일군의 천재들은 다시 한번 기계적 개선을 시도했다. 그들은 45nm의 해상도를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시행하면, 더 정밀한 패턴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말은 쉽지만, 이렇게 세밀하게 기계 장치를 조절한다는 것은 악몽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천재 엔지니어들은 이 과제를 성공시켰다. 2010년대 초, ASML은 같은 광학계를 사용하지만 해상도는 더 정밀한 22nm 장비를 출시했고, 바로 이어서 14nm 장비까지 선보였다.
반도체 칩의 정밀성이 높아지는 동안 웨이퍼의 크기는 계속 커졌다. 결과적으로 매우 정밀한 칩을 더 많이 생산하게 되면서, 컴퓨터의 능력도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었다. 데이터 센터가 대형화되고, 인터넷은 더 빨라졌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빅데이터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고, 오랜기간 지지부진하던 인공지능이 압도적인 능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런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일군의 천재들이 유체역학까지 끌어들여 만화같은 상상을 현실화하는 동안 다른 천재들은 광학계를 끌어안고 오랫동안 울부짖고 있었다. 193nm ArF 레이저(DUV) 광학계가 나온 이후, ASML의 다음 프로젝트는 새로운 광학계를 활용한 EUV(Extreme Ultraviolet)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1999~2000년 사이의 일이었다. 어려운 일인 줄은 알았지만, 이때만해도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EUV는 13.5nm 파장의 빛을 도입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 정도면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만분의 일 수준으로 그야말로 꿈만 같은 목표였다. 우선 과제는 이런 파장의 빛을 방출하는 물질계를 찾아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론적 수준의 해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물론, 이것도 만화같은 이야기였다. 주석(Tin)이라는 금속을 공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떨어뜨리고, 한쪽에서 레이저로 사격하듯이 이 주석공을 쏘면 그 작용에 의해 13.5nm의 빛이 방출된다는 이야기였다. 주석공이 크기는 머리카락의 약 4분의 1인 30mm, 공을 떨어뜨리는 속도는 초당 50,000개. 이렇게 작은 공을 만드는 것도, 이 공들을 말도 안돼는 속도로 오차없이 떨어뜨리는 것도, 무엇보다 이렇게 떨어지는 공을 정확히 조준 사격하는 것도 모두 만화같은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이 천재들은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 나아갔다.
이렇게 광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한다고 해도, 광학계 전체도 큰 문제가 있었다. EUV의 빛은 파장이 너무 작아서 어떤 물질과 충돌해도 그대로 흡수되어 버린다. 렌즈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렌즈를 통해 빛을 조절할 수 없는데,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이 빛을 반사하는 특수 거울을 사용해 빛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ASML의 핵심 파트너인 Carl Zeiss의 Wilhelm Ulrich가 그의 팀을 이끌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는 2~3년 정도의 기간이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000~2010년까지 꼬박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나 정밀한 작업이 필요한지 최첨단 설비를 사용해도 한 개의 거울을 생산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의 가공 시간이 필요했다. 문제는 빛을 조절하려면 하나의 거울이 아닌 최소 10개 이상의 거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거울이 긴 시간 동안 개발되고 있었다.
EUV는 공기에도 흡수되므로, 광원계는 진공이어야 했다. 또한 마스크도 완전히 새로운 물질로 만들어져야 했고, EUV에 최적화된 화학물질도 개발되어야 했다. ASML은 광학계는 독일의 Carl Zeiss, 화학물질은 일본의 Shin-Etsu와 함께 개발했고, 레이저는 아예 미국 기업 Cymer를 인수해 한 팀을 만들어버렸다. 매년 수억 유로가 연구비로 투자되었고, Cymer 인수에는 39억 달러가 필요했다. 이 산업의 속성과 생태계를 잘 아는 투자자들도 개발기간이 10년이 지난 2010년에는 슬슬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흘러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SML의 임원들과 연구 책임자들은 꿋꿋히 버티면서 연구를 이어갔다. 다행히 액침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어서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프로젝트는 진전되고 있었다.
2016년, 프로젝트 시작 후 무려 16년 만에 드디어 원하는 설계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장비가 탄생했다. ASML NXE:3400B, 첫 양산급 EUV 리소그래피 장비였다. 오랫동안 기다린만큼, 칩 제조사는 곧바로 행동했다. 2017년 삼성전자가 첫 EUV 칩 생산을 발표했다. 7nm 공정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어서 TSMC도 양산을 발표했다. ASML의 NXE 시리즈는 계속 이어졌다. 광원의 출력이 높아졌고,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웨이퍼의 숫자도 크게 개선됐다. 더불어 가격도 계속 상승했다. 유튜브에서 스테퍼 하나의 가격이 최신형 전투기보다 비싸다는 가십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정도였다. 실제로, 2023년에 출시된 EXE:5000의 가격은 $380M 정도로 예측되는데, 미국의 최신형 전투기 F-22 Raptor의 가격이 이와 비슷했다. ASML은 매년 약 60~80대의 EUV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데, 수요는 그보다 훨씬 많은 상황이어서 그들의 판매 장부에는 기본적으로 3~5년의 대기 줄이 적혀있었다.
2023년 네덜란드 벨트호벤의 ASML 클린룸. 수십 명의 엔지니어들이 EUV 생산에 몰두하고 있었다. 광학, 기계, 물리학, 화학 등의 분야에서 20~30년간 경력을 쌓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었다. 한 대의 EUV 장비는 180톤 이상의 무게에 십만 개 이상의 부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립 기간만 3~4개월 걸리고,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1959년 제이 라스롭에 의해 시작된 여정이 이제 65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당시와 비교하면, 65년 만에 약 백만 배의 정밀성 개선이 이뤄졌다. 덕분에 처음 리소그래피 공정을 도입했을 때, 하나의 칩에 10개의 트랜지스터를 직접했는데, 이제는 비슷한 크기의 칩에 약 천억 개가 직접된다. 직접도가 100억 배 증가한 것이었다.
리소그래피는 칩 제조의 핵심 공정이지만 단순한 제조 기술로 평가할 수 없다. 이 기술은 인류가 물질을 다루는 가장 정밀한 방법이다. 이 공정을 통해 원자 배열을 제어하고. 빛으로 물질을 조각한다. 나노미터 크기의 세계를 원하는 대로 조절하기 위해 인류가 아는 모든 과학 지식이 동원되었고, 지금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 공정의 성공으로 무어의 법칙이 현실화되었고, 인터넷 및 AI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가장 정밀한 예술. 리소그래피의 장인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미래를 향해 새로운 기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