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가 새 판을 짜고 있다.
반도체의 끝을 말하는 목소리는 늘 있었다. 미세화의 한계, 비용의 폭증, 물리 법칙의 벽. 마치 실리콘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듯한 선언들이 주기적으로 산업을 떠돌았다. 그러나, 반도체는 한번도 ‘끝’에 도달한 적이 없다. 그 대신 언제나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아 왔다.
이 시리즈의 앞선 장들이 트랜지스터를 만들던 개척자들, 공정을 완성한 장인들,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걸고 칩을 쌓아 올린 세대의 이야기였다면, 이제 우리는 다른 얼굴의 주인공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더 이상 “얼마나 더 작게 만들 수 있는가?”만을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어떻게 다시 조합할 것인가?”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
“어디까지를 반도체라고 부를 것인가?”
새로운 세대의 반도체는 하나의 칩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미세화가 아닌 패키징, 단일 공정이 아닌 이종 결합, 하드웨어 단독이 아닌 소프트웨어와의 공진. 웨이퍼 위에서 끝나던 이야기는 이제 시스템과 생태계로 확장된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전통적인 ‘반도체 엔지니어’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있다.
물리보다 확률에 익숙한 사람들
회로보다 아키텍처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
공정보다 경험과 용도를 기준으로 설계하는 사람들
그들은 과거의 공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공식이 더 이상 유일한 해답이 아님을 알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세대는 반도체를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의 언어에는 완벽보다 균형이, 최적화보다 타협이, 단일 해답보다 여러 경로가 등장한다. AI 반도체, 전력 반도체, 첨단 패키징, 소재와 장비, 설계 자동화와 알고리즘. 이 모든 영역은 과거에는 주변부로 최급되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중심은 한 국가, 한 기업, 한 천재가 독점하지 않는다.
이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경계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국경의 경계, 전공의 경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 그들은 한 분야의 ‘완성도’보다 서로 다른 영역을 잇는 접속 능력을 중시한다. 반도체가 더 이상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 안보, 데이터, 환경의 문제로 엮여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반도체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정치이고, 제품이면서 동시에 전략이며, 칩이면서 동시에 언어다.
5부는 미래를 예언하려는 장이 아니다. 대신 이미 시작된 변화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아직 결과가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으며, 어쩌면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들. 그러나, 반도체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트랜지스터를 붙잡았던 이들처럼, 처음 포토레지스트를 공정으로 만들었던 이들처럼, 처음 국가 차원의 산업을 설계했던 이들처럼.
반도체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다음 장의 주인공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제 무대는 더 작아진 선폭이 아니라, 더 넓어진 연결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반도체보다 조금 낯설고, 조금 느리며, 그러나 훨씬 오래 갈 반도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