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천재들이 이끄는 새로운 시대
반도체 산업의 초창기는 소수 국가와 소수 인구 집단의 전유물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를 발명한 이들은 대부분 미국 출신의 백인 남성이었다. 벨 연구소, 페어차일드, 인텔로 이어지는 실리콘밸리의 계보는 놀라울 만큼 동질적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대학의 공학 프로그램은 대부분 백인 남성에게만 열려 있었고, 여성과 소수 인종은 체계적으로 배제되었다.
하지만 반도체는 본질적으로 글로벌한 기술이었다. 물리학 법칙은 국경을 모르고, 재능은 특정 성별이나 인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반도체 산업은 점차 다양화되었다.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 여성 엔지니어들, 그리고 전 세계 각지의 천재들이 이 산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참여자가 아니라 혁신의 주역이 되었다.
<The Chipmen>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마지막 부분은 반도체 산업의 다양성 증가와 그것이 가져온 혁신을 살펴본다. 아시아계 미국인 엔지니어들, 여성 과학자들, 그리고 신흥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주역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성이 어떻게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포용성의 윤리적 당위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성이 실제로 더 나은 칩,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 더 강력한 산업을 만들었다는 실증적 역사다.
앤디 그로브: 난민에서 CEO로
디지털 시대의 선구자, 폰 노이만(Johann Ludwig von Neumann, 1903~1957) 이후, 헝가치 부다페스트 출신 물리학자는 심상치 않은 업적을 보여왔다. 앤디 그로브도 그 중 하나이다. 앤드루 그로브(Andrew Grove, 본명 Gróf András)의 이야기는 이민자가 미국 반도체 산업에 미친 영향을 상징한다.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나치 점령과 홀로코스트를 간신히 피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자, 스무 살의 그로브는 목숨을 걸고 오스트리아로 탈출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주머니에는 20달러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화학공학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뉴욕 시립대학을 거쳐 UC 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963년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입사했다.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인텔을 창업할 때, 그로브는 세 번째 직원이자 기술 책임자로 합류했다.
그로브는 인텔을 메모리 회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회사로 전환시킨 전략적 결정을 이끌었다.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이 DRAM 시장을 장악했을 때, 대부분의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무너졌다. 하지만 그로브는 과감하게 메모리 사업을 포기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집중했다. 이 결정은 인텔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반도체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로브의 리더십 철학은 유년시절 처참했던 그의 난민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는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불확실성과 위기 속에서 생존한 경험이 그를 끊임없이 혁신하고 적응하는 리더로 만들었다. 2016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명이었다.
젠슨 황과 리사 수: 새로운 세대의 부상
1990년대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반도체 산업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젠슨 황(Jensen Huang)은 타이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엔비디아를 창업해 GPU 혁명을 이끌었다. 그의 이야기는 앞 장에서 다뤘지만, 여기서 강조할 점은 그가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직면한 문화적 도전과 그것을 극복한 방식이다.
젠슨은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의 '아웃사이더' 정체성이 오히려 장점이었다고 말한다. 기존 산업의 관행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GPU라는 완전히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타이완과의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며 TSMC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했는데, 이것은 엔비디아 성공의 핵심 요소였다.
리사 수(Lisa Su)는 타이완 출신으로 미국에서 자란 또 다른 아이콘이다. MIT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IBM, 프리스케일을 거쳐 2014년 AMD의 CEO가 되었다. 당시 AMD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미래를 비관했다. 리사 수는 AMD를 근본부터 재구축했다. 그녀는 Zen 아키텍처라는 새로운 프로세서 설계에 모든 것을 걸었다. 2017년 출시된 Zen 기반 Ryzen 프로세서는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성능은 인텔과 맞먹었고, 가격은 훨씬 저렴했다. AMD의 주가는 수십 배 상승했고, 리사 수는 2020년 《포춘》지 선정 '올해의 비즈니스인'이 되었다.
리사 수는 여성이자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반도체 업계의 유리천장을 깬 인물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방에서 유일한 여성이거나 유일한 아시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성공은 수많은 젊은 여성과 소수 인종 엔지니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통계로 보는 변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기여는 개인을 넘어 통계적으로도 뚜렷하다. 2020년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링 인력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 엔지니어의 약 40%가 아시아계였다. 이것은 전체 미국 인구에서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율(약 6%)을 훨씬 상회한다.
스탠퍼드와 MIT, 버클리 같은 주요 대학의 전기공학 박사 과정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은 종종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다가 졸업 후 실리콘밸리에 정착한다. H-1B 비자 통계를 보면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가장 많은 고급 인력을 해외에서 채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이민 정책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아시아 이민이 증가하면서, 미국 기술 산업은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만약 이민 장벽이 높았다면, 앤디 그로브도, 젠슨 황도, 리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린 콘웨이: 트랜스젠더 과학자의 혁명
린 콘웨이(Lynn Conway)는 반도체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인물 중 하나다. 1938년 뉴욕에서 태어난 콘웨이는 어린 시절부터 전자공학에 천재성을 보였다. MIT를 거쳐 1960년대 IBM에 입사한 그녀는 슈퍼스칼라 컴퓨터 아키텍처의 선구적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1968년, 콘웨이는 IBM에서 해고되었다. 이유는 그녀가 트랜스젠더로서 성전환을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했던 시대였다. 콘웨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경력, 명성, 심지어 가족과의 연결까지.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다시 시작한 콘웨이는 제록스 PARC에 입사했다. 1970년대 후반, 그녀는 카버 미드(Carver Mead)와 함께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 설계 혁명을 주도했다. 두 사람이 1980년 출판한 교과서 'Introduction to VLSI Systems'는 칩 설계의 교과서가 되었고, 전 세계 수만 명의 엔지니어를 교육했다.
콘웨이의 혁신은 '구조화된 VLSI 설계'였다. 그녀는 복잡한 칩 설계를 모듈화하고 계층화하는 방법론을 개발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칩 설계의 기초가 되는 개념이다. 또한 그녀는 인터넷을 통한 칩 제조 서비스인 'MOSIS'의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스타트업과 대학이 저렴하게 칩을 시제작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콘웨이의 공헌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녀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에야 그녀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를 밝혔다. 2020년 IBM은 52년 만에 부당 해고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콘웨이는 2024년 85세로 사망할 때까지 성소수자 권리와 과학 교육을 위해 활동했다.
페데리카 파가니니: ARM의 숨은 설계자
페데리카 파가니니(Federica Paganini)는 이탈리아 출신의 칩 설계자로, ARM의 일부 핵심 프로세서 설계를 이끌었다. 1980년대 후반 피사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한 그녀는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ARM에 입사했다. 당시 ARM은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파가니니는 ARM7 및 ARM9 코어의 설계 팀을 이끌었다. 이 프로세서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모바일 기기 혁명의 핵심이었다. 노키아 휴대폰, 닌텐도 게임보이 어드밴스, 초기 스마트폰들이 모두 이 칩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과 산업계는 주로 남성 임원들에게만 주목했고, 실제 기술을 만든 여성 엔지니어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파가니니의 기여는 최근에야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1990년대 ARM에서 일할 때, 기술 회의에 참석하면 종종 유일한 여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의견이 무시되곤 했죠. 하지만 결과로 증명하면서 점차 존중을 얻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소피 윌슨: ARM의 공동 설계자
ARM의 탄생에는 소피 윌슨(Sophie Wilson)이라는 천재 엔지니어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윌슨은 1970년대 후반 Acorn Computers에서 일하며 BBC Micro 컴퓨터를 설계했다. 이 컴퓨터는 영국에서 수백만 대가 팔리며 한 세대의 프로그래머들을 키웠다.
1983년, 윌슨은 스티브 퍼버(Steve Furber)와 함께 ARM1 프로세서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명령어 집합 아키텍처(ISA)를 설계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ARM의 단순하고 효율적인 명령어 세트는 윌슨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녀는 RISC 원칙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실용적인 구현 가능성을 놓치지 않았다. 윌슨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린 콘웨이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으로 인한 도전을 겪었다. 하지만 영국의 Acorn과 ARM은 비교적 개방적인 환경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2019년 그녀는 컴퓨터 과학에 대한 공헌으로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윌슨의 이야기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재능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으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조직이 혁신을 이끈다는 것이다. 만약 Acorn이 성소수자를 차별했다면, ARM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리스 창과 TSMC: 타이완의 기적
모리스 창(Morris Chang, 張忠謀)은 1931년 중국 닝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피해 홍콩을 거쳐 결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MIT와 스탠퍼드에서 공부한 창은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 입사해 25년간 일하며 부사장까지 올랐다. 그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주류에 완전히 통합된 성공한 이민자였다.
하지만 1985년, 54세의 창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타이완 정부가 그를 신생 반도체 연구기관인 ITRI의 원장으로 초빙한 것이다. 타이완은 당시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벗어나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하려 했다. 창은 이 기회를 받아들였고, 1987년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했다.
창의 비전은 혁명적이었다. 자체 칩을 설계하지 않고 오로지 다른 기업들의 설계를 제조만 해주는 '순수 파운드리(pure-play foundry)' 모델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은 설계와 제조를 모두 자체적으로 했다. 창의 아이디어는 이 통합 모델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다. 왜 고객들이 자신의 설계를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제조사에 맡기겠는가? 하지만 창은 신뢰와 중립성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TSMC는 절대 자체 칩을 설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고객의 지적재산을 철저히 보호했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TSMC 모델은 대성공이었다. 팹리스(fabless) 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퀄컴, 엔비디아, AMD, 애플 같은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의 팹 투자 없이도 최첨단 칩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TSMC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기업이며, 가장 진보된 칩들(애플 M시리즈, 엔비디아 AI 칩 등)을 독점적으로 제조한다.
모리스 창은 2018년 87세에 은퇴했지만, 그의 유산은 계속되고 있다. TSMC는 타이완을 반도체 산업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동아시아가 단순한 제조 기지에서 혁신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권오현: 삼성의 메모리 제국을 세우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삼성은 1983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면서 '도쿄 선언'을 했다. 일본 메모리 기업들을 5년 안에 따라잡겠다는 야심찬 목표였다. 당시 일본은 DRAM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고, 한국은 전혀 경험이 없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의 도전을 무모하다고 여겼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이 권오현(Kwon Oh-hyun)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권오현은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삼성 반도체는 기술도, 인력도, 경험도 부족했다. 하지만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전쟁 같은 업무 강도로 기술 격차를 좁혀갔다. 권오현은 메모리 칩 설계와 공정 개발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1990년대 그는 256Mb DRAM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이것으로 삼성은 세계 최초로 기가비트급 메모리 시대를 열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삼성의 메모리 사업을 총괄하며 DRAM과 NAND 플래시 양쪽에서 세계 1위로 만들었다.
2012년 권오현은 삼성전자 부회장 겸 반도체 총괄 대표이사가 되었다. 그의 리더십 아래 삼성은 '역사상 가장 수익성 높은 반도체 기업'이 되었다. 특히 그는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 사이클'을 정확히 예측하고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권오현의 성공은 개인의 천재성만이 아니라 한국의 시스템적 강점을 보여준다. 정부의 전략적 지원, 대기업 총수의 장기 투자 결단, 그리고 헌신적인 엔지니어 문화가 결합되어 단 한 세대 만에 한국을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도전: 윈 니와 SMIC
21세기 들어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급부상했다. 이 움직임을 상징하는 인물이 윈 니(尹志尧, Yin Zhiyao)다. 1940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윈 니는 문화대혁명 시기 대학 교육이 중단되는 혼란을 겪었다. 1977년 대학이 재개되자 그는 화학을 공부했고, 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UCLA에서 화학공학 박사를 받은 윈 니는 Applied Materials라는 반도체 장비 기업에서 30년간 일했다. 그는 플라즈마 에칭 기술의 세계적 전문가가 되었다. 2004년, 63세의 나이에 그는 중국으로 돌아가 중미실리콘프로덕츠(Advanced Micro-Fabrication Equipment Inc., AMEC)를 창업했다.
AMEC는 중국 최초의 세계적 수준 반도체 장비 기업을 목표로 했다. 윈 니는 미국에서 일했던 동료 중국계 엔지니어들을 영입하고,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기술을 개발했다. 2010년대 중반, AMEC의 에칭 장비는 TSMC 같은 선도 기업들에 채택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논란의 중심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국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기술을 습득한다고 비난하며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실제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외국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인재를 불법적으로 빼가려 한 사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윈 니 같은 인물들은 합법적으로 기술을 축적하고 혁신하는 길을 보여준다.
비노드 담: 인텔의 핵심 설계자
인도는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하드웨어, 특히 칩 설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하지만 개별 인도 출신 엔지니어들은 세계 반도체 기업들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다. 비노드 담(Vinod Dham)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1950년 인도 푸네에서 태어난 담은 델리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시내티 대학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받았다. 1979년 인텔에 입사한 그는 1990년대 초 펜티엄 프로세서 개발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1993년 출시된 펜티엄은 인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품 중 하나였다. 그것은 PC를 대중화시켰고, 'Intel Inside' 캠페인과 함께 인텔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술 기업으로 만들었다. 담은 '펜티엄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정받았다. 그는 인도계 엔지니어로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최고 수준에 도달한 선구자였다.
1995년 담은 인텔을 떠나 AMD로 이적했다. 거기서 그는 K6 프로세서 개발을 이끌었고, AMD가 인텔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투자하며 인도계 기업가 커뮤니티의 멘토 역할을 했다.
라지브 수리: ARM 인도의 구축자
인도는 최근 칩 설계 센터의 중요한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많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에 설계 센터를 두고 있으며, 수만 명의 인도 엔지니어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는 칩을 설계한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라지브 수리(Rajiv Suri)다.
수리는 2000년대 초 ARM의 인도 법인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ARM은 인도를 단순한 저비용 개발 거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핵심 기술 혁신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다. 수리는 방갈로르와 하이데라바드에 설계 센터를 열고, IIT(인도공과대학) 출신의 최고 인재들을 영입했다. ARM 인도 팀은 곧 핵심 프로세서 코어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Cortex-A 시리즈의 일부 설계가 인도에서 이루어졌고, GPU와 보안 프로세서도 개발했다. 오늘날 ARM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인력 중 상당 부분이 인도에 있다.
인도의 강점은 풍부한 고급 인력과 영어 소통 능력이다. IIT 같은 명문 공과대학들은 매년 수천 명의 뛰어난 전기공학 졸업생을 배출한다. 많은 인도 엔지니어들이 해외로 나가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인도 내 기회를 선택하고 있다. 인도 정부도 'Make in India' 정책으로 반도체 제조까지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다.
피터 웬닝크: ASML의 건축가
유럽은 반도체 산업의 초창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과 아시아에 밀려났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유럽은 틈새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했다. 그 중심에 네덜란드의 ASML이 있고, ASML을 세계 최고로 만든 인물이 피터 웬닝크(Peter Wennink)다.
웬닝크는 1957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트벤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엔지니어 출신이 아닌 그가 반도체 장비 기업의 CEO가 된 것은 특이한 경로였다. 1999년 ASML에 입사한 그는 영업과 고객 관계를 담당하다가 2013년 CEO가 되었다. 웬닝크의 리더십 아래 ASML은 EUV(극자외선) 리소그래피 기술에 모든 것을 걸었다. EUV는 기술적으로 극도로 어렵고 비용도 막대했다. 한 대에 2억 달러가 넘는 장비였고, 개발에만 20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이것이 없으면 7nm 이하의 첨단 칩을 만들 수 없었다.
웬닝크는 TSMC, 삼성, 인텔과 긴밀히 협력하며 EUV 개발을 추진했다. 2010년대 중반, ASML의 EUV 장비는 마침내 양산에 투입되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첨단 칩들(애플 A시리즈, 엔비디아 AI 칩 등)은 모두 ASML의 EUV 장비로 만들어진다. ASML은 이 분야에서 완전한 독점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웬닝크의 성공은 유럽이 첨단 기술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양산이 아니라 초고난도 기술에 집중하는 전략이 효과를 본 것이다. ASML은 2024년 현재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술 기업이며, 시가총액이 3,000억 달러를 넘는다.
유럽의 딜레마: 주권과 개방성
유럽은 반도체에서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아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 한다. 2023년 유럽연합은 '유럽 칩법(European Chips Act)'을 통과시켜 430억 유로를 반도체에 투자하기로 했다. 인텔과 TSMC를 유치해 유럽 내에 최첨단 팹을 건설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럽은 개방적 협력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ASML의 성공도 글로벌 공급망과 협력의 산물이다. ASML의 EUV 장비에는 독일의 광학 기술, 미국의 레이저, 일본의 정밀 부품이 들어간다. 유럽이 배타적 자급자족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는 유럽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RISC-V 같은 개방형 기술을 채택하면서도, 핵심 제조 능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웬닝크는 "유럽의 강점은 글로벌 협력 속에서 독특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왜 다양성이 중요한가
반도체 산업의 다양성 증가는 단순한 사회적 정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혁신 동력이다. 연구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팀이 더 창의적이고 더 나은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인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린 콘웨이의 VLSI 설계 방법론은 기존 엔지니어들이 생각지 못한 관점에서 나왔다. 그녀는 아웃사이더로서 기존 방식의 비효율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모리스 창의 파운드리 모델도 마찬가지다. 미국 주류 반도체 기업들은 수직 통합에 익숙했지만, 창은 다른 산업 구조를 상상할 수 있었다. 젠슨 황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민자로서 항상 두 문화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때로는 어려웠지만, 동시에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GPU라는 아이디어도 기존 범주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가능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힘
현대 반도체 산업은 본질적으로 글로벌하다. 한 개의 최첨단 칩을 만들기 위해 수십 개국의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설계되고, 네덜란드 장비로 만들어지고, 타이완에서 제조되고, 일본 소재를 사용하고, 한국에서 패키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복잡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다양한 문화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협력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TSMC의 엔지니어들은 애플과 엔비디아의 설계자들과 소통해야 한다. ASML의 네덜란드 엔지니어들은 일본과 미국의 부품 공급사들과 협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문화적 이해와 신뢰를 요구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갈등은 이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많은 국가들이 자급자족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자급자족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핵심은 협력과 경쟁의 균형, 개방성과 안보의 조화를 찾는 것이다.
여전한 도전: 유리천장과 편견
다양성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2023년 통계를 보면 미국 반도체 기업의 엔지니어 중 여성은 약 15%에 불과하다. 경영진에서 여성 비율은 더 낮다. 인종적으로도 불균형이 있다. 아시아계는 엔지니어 중에는 많지만, 최고 경영진에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른바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다.
리사 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회의실에서 유일한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여성 엔지니어들이 롤모델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문을 더 열어야 합니다." 편견은 명시적인 차별뿐만 아니라 미묘한 형태로도 존재한다. 여성 엔지니어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아시아계 엔지니어가 '기술적'이지만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에 직면하거나, 억양 때문에 능력을 의심받는 경우들이다. 이런 미시적 차별(microaggression)들이 누적되면 재능 있는 사람들이 업계를 떠나게 만든다.
반도체 산업의 지난 70년은 점진적이지만 확실한 다양성 증가의 역사다. 1950년대 벨 연구소의 동질적 집단에서 시작해,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대륙, 모든 배경에서 온 천재들이 협력하는 진정한 글로벌 산업을 보고 있다.
이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앤디 그로브, 모리스 창, 젠슨 황 같은 이민자들의 용기가 있었다. 린 콘웨이, 소피 윌슨, 리사 수 같은 여성들의 끈기가 있었다. 그리고 개방성과 재능을 중시하는 제도와 문화가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재능은 특정 성별, 인종, 국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혁신은 다양한 관점의 충돌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환경이 최고의 결과를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이다. 여전히 많은 재능이 구조적 장벽 때문에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천재들이 자원 부족으로 기회를 얻지 못한다. 여성과 소수 인종이 편견과 차별에 직면한다. 지정학적 갈등이 협력을 저해한다.
미래의 반도체 산업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중동에서도 새로운 천재들이 등장할 것이다. 성 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혁신을 이끌 것이다. 핵심은 기회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교육에 투자하고, 편견을 제거하고, 이민과 교류를 촉진하고, 다양성을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질적 가치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반도체 산업의 다음 혁명을 이끌 천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스 창은 은퇴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교육받고 타이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나의 삶은 글로벌화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 전체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협력할 때 가장 위대한 것을 성취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메시지다. 재능에는 국경도 성별도 없다. 칩을 만드는 것은 실리콘과 도핑 물질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천재들의 아이디어와 땀이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야말로 반도체 산업이 계속 혁신하고 진화하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