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사건-1
<달과 6펜스>의 작가인 서머싯 몸이 가장 매력적인 도시를 꼽은 그 길. 바로 람블라스 거리는 까딸루냐 광장에서 시작해 콜럼버스 기념탑이 있는 파우 광장까지 이어진 약 1km의 길이다. 원래 하천이었던 곳을 매립해 만들어 거리 이름이 아랍어인 ‘Raml’에서 유래했는데 ‘강’, ‘물이 흐른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닥에는 물결 무늬 블록이 깔려있어 운치를 더했다.
가장 뜨거운 8월, 무성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노천에 펼쳐진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점이 여행자들의 가슴을 더욱 뒤흔들었다. 복잡한 거리를 싫어해서 대도시를 되도록 피하려 하지만 람블라스 거리는 그 혼란함이 매력인 것처럼 보였다. 거리의 화가들과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행위예술가의 모습도 멋졌다.
그래서였을까? 람블라스 거리의 풍경에 완전히 매료된 나는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분명 잠시 넋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유럽의 복잡한 대도시에서는 특히 소매치기와 가방 도둑 등을 조심하라는 수많은 책의 주의사항과 여행자들의 경험담을 잊지 않고 여행 내내 어디서나 가방과 카메라 등의 소지품에 신경쓰고, 현금과 카드 등은 앞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우디의 건축물과 멋진 가로등, 거리의 장식과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 우선 내 정신을 반쯤 빼앗았고, 나머지 절반은 지난 여행 기간 중 우려했던 상황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느슨함이 빼앗아갔다.
이쪽저쪽 정신없이 감탄하며 카메라로 촬영을 하다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로 들어섰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안경으로 바꾸려고 엉덩이쪽로 돌려 둔 작은 가방을 앞으로 가져 왔는데 가방이 열려 있었고 안에 있던 선글라스 케이스가 사라지고 없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어느 순간이었는지 몰랐다. 누군가 내게 가까이 접근한 기억도, 부딪치거나 한 일도 없었는데 대단한 솜씨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행 기간이 아직 일주일 정도가 남았는데 여분의 다른 안경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시력에 맞게 제작해 온 선글라스가 전부인데 낮이건 밤이건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수도 없었고, 비오는 날이나 야간에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선 안경을 맞추는게 급해 가까운 안경점을 찾았다. 그러나 안경 제작 기간은 빨라야 5일이라고 했다. 몇 군데를 다 돌아봐도 상황은 같았다. 오늘 주문을 하고 프랑스에서 렌즈를 제작해 오면 그 시간이 가장 빠른 것이라고 했다. 헉!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바르셀로나에서 여정이 겨의 하루 남았는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길가 벤치에 앉아 생각을 해봤지만 잘 때 빼고 선글라스를 끼고 생활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오전에 헤어진 일행들로부터 문자가 왔다. 저녁 무렵 내가 차를 주차장에서 빼서 구엘공원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복잡한 대중교통에 장시간 도보로 지쳤는지 람블라스 거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버거운 모양이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다. 이미 잃어버린 안경은 어쩔 수 없었고 남은 시간 가우디의 건축물을 돌아봐야했다. 저녁에 일행을 만나 오늘의 소매치기 사건과 앞으로 벌어질 하루 종일 선글라스를 써야하는 충격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생각에 웃음이 났다. 포기할 것은 빨리 버려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이 날의 바르셀로나 사건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