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이야기와 오래된 서점, 낡은 것들이 주는 행복의 길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면서 낡고 소박한 길과 골목을 찾고 싶은 날이 가끔 있습니다. 사무실이나 집, 좁은 자동차 안에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가을날이면 약간의 수고를 겪더라도 시야가 트인 곳으로, 올라오느라 흘린 땀을 식힐 바람을 찾아갑니다. 조선시대부터 양반보다는 서민들이 주로 살았던 경복궁의 서편에 있는 ‘서촌’이 그곳입니다.
경복궁역을 빠져 나와 자하문터널 방향으로 걷다보면 옛 ‘상업은행’이 있던 자리였던 우리은행효자동지점이 나옵니다. 그곳에서부터 골목으로 들어서면 1930년대 ‘날개’라는 시와 독특한 소설로 유명한 시인 ‘이상’의 집(시인의 집)이 먼저 나옵니다. 이제는 전시공간으로 쓰이는 작은 곳이지만 옛 집의 모습과 이상의 작은 자취는 이 골목이 시인과 예술가들의 감성과 시간이 쌓인 동네임을 어렴풋이 느끼게 합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커피를 한잔 마시며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다시 골목을 기웃거리며 걷다보면 이제는 보기 힘든 오래된 세탁소와 이발소, 미장원, 쌀집 등의 간판과 여전히 그 삶이 지속되고 있는 공간과 삶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우리의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남의 일처럼 잊고 있었던 정감어린 삶의 자리들입니다. 그 길을 따라 좀 더 걸으면 낡아서 글자도 다 지워진 옛 동네서점 ‘대오서점’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는 카페로 다시 문을 연 그곳은 유물처럼 갇힌 모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몇년 전 문을 닫아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아 보는 순간 뭉클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들고 나도 한 장의 사진을 남기고 싶어집니다. 조금 더 걸으면 마을 쉼터인 정자와 통인시장이 있습니다. 정자에 앉아 잠시 동네 구경을 하거나 시장에 들러 매콤한 떡볶이를 먹어도 좋습니다.
이번에는 ‘수성동 계곡’ 방향의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옛집들을 개조한 상가엔 소품을 파는 가게도 있고 독특한 음식을 팔거나 전시를 하는 공간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즐겁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다보면 옥인교회로 올라가는 언덕길 초입에서 시인 윤동주가 살았던 하숙집 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빌라가 되어 옛 흔적은 벽에 붙은 안내문이 전부지만 매일 아침 수성동계곡을 지나 창의문까지 산책했던 젊은 시인의 걸음과 시에 대한 고민, 나라에 대한 걱정을 생각해 봅니다. 옥인교회를 지나 공원으로 조성된 수성동 계곡을 느릿하게 걸어 올라가면 창의문 쪽으로 이어진 보행자도로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으로 서울의 전경이 들어오고 시원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옵니다. 한 삼십분 정도 걸으면 서울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볼 수 있도록 설치된 전망대가 있습니다. 그곳에 서면 시야를 가리지 않는 경치와 서늘한 바람이 잠시나마 복잡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줍니다.
땀이 식을 무렵 길을 더 걸으면 멀리 하얀색 아담한 건물인 윤동주 문학관이 보입니다. 문학관에 도착하기 전 윤동주의 시비가 놓인 시인의 언덕에 먼저 도착하는데 시비에 쓰인 ‘서시’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옛 수도가압시설에 만든 ‘윤동주 문학관’에는 윤동주의 시와 유품 등과 영상을 상설전시하고 있습니다.
해질녘 창의문길을 내려오면 밤으로 들어가는 서울이 눈앞에 있습니다. 잠시 현재를 떠나 1900년대의 시간으로의 한나절 가을여행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