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자동차, 자전거, 스쿠터 등의 탈 것을 이용해 제주의 유명한 곳을 누비는 여행도 있고, 올레길을 따라 혼자 또는 같이 천천히 걸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테마박물관 등을 찾아보는 것도 좋고, 맛집을 찾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일정을 최대로 줄이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예술가들의 눈에 담긴 제주를 살펴보는 일도 행복합니다.
지난 밤에 내린 눈길 위를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입구로 진입합니다. 두모악은 제주의 사진작가였던 김영갑작가가 직접 만든 작업실이자 갤러리입니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가 제주의 풍광에 빠져 20년을 넘게 제주를 카메라에 담았고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투병을 하면서도 사진 작업에 몰두한 그의 삶과 혼이 담긴 자리입니다. 눈이 소복히 쌓인 갤러리 정원의 동백과 감나무도 그의 사진 속 풍경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의 사진과 제주에 대한 열정에 이끌린 많은 사람들이 폭설로 길이 끊긴 날에도 갤러리 안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파노라마 사진에 담긴 제주의 오름과 바람, 바다, 하늘은 생생하게 살아서 그가 남기고 간 이야기를 여전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사진처럼 가로로 긴 창이 있는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시간을 보냅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정원의 풍경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차를 몰아 정방폭포 근처에 위치한 이왈종 화가의 ‘왈종미술관’으로 이동합니다. ‘제주생활의 중도’라는 작품 시리즈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삶의 소소한 행복과 불행, 슬픔, 기쁨 등의 생사고락을 밝고 경쾌한 느낌으로 표현한 작가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실에 부딪치고 지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잊게 됩니다. 느긋하게 사랑하는 이와 차를 마시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마주오는 이와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는 꿈꾸는 일상을 발견하고 혼자 웃습니다. 화려하지만 튀지 않는 그의 그림 앞에서 내 삶의 중도를 생각합니다.
해질 무렵 돌아가는 길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바다가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멈추고 창문을 내립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차갑지만 상쾌함에 눈과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녁은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는 곳에서 푸짐한 해산물이 들어간 얼큰한 라면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