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베네치아 본섬 밖에 있는 메스트레 역 근처 아파트에 주차하고 본섬으로 들어가는 트램을 탔다. 베네치아를 올 때마다 항상 갈등하는 것이 있는데 숙소의 위치 선택이 그것이다. 높은 가격, 짐을 들고 걸어서 숙소까지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른 아침이든 늦은 밤이든 편안하게 베네치아의 곳곳을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베네치아 본섬 숙박과 트램이나 버스, 열차 등을 타고 본섬에 들어갔다가 대중교통이 끊어지기 전 신데렐라처럼 황급히 지친 몸을 이끌고 빠져나와야 하지만 좋은 시설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숙소의 장점을 지닌 메스트레 역 주변 숙박 사이에서 말이다. 하지만 결론은 늘 메스트레 역 주변으로 결정이 난다. 본섬의 어마어마한 자동차 주차비가 결국은 답이 정해진 이 고민을 왜 하고 있는가를 일깨웠다.
본섬에 다다를 즈음 여행객들로 가득한 트램 안은 작은 웅성거림과 묘한 흥분으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차창을 통해 아드리아해가 보이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흘러들면 여행자들의 가슴은 더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기차가 종착역인 로마광장을 향하는 속도가 빨리지는 듯하면 여행지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드리아 해와 수평선 너머 상상의 도시처럼 떠있는 베네치아를 바라보며 침묵에 빠진다.
19세기 베네치아와 본토를 이어주는 제방길이 아드리아해를 가로질러 건설되었고 그 위로 철길이 놓였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베네치아 본섬에 산타루치아 역이 생겨났다. 트램은 산타루치아 역 옆 광장에 버스 정류장 중앙에 멈추었다. 베네치아의 교통수단인 수상버스 바포레토 탑승권을 구입했다. 우아한 고딕 건물들 사이로 아드리아의 바닷물이 끊임없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여행자들과 수상버스 바포레토, 베네치아의 상징과 같은 곤돌라들이 거리와 운하 위에서 어지럽게 교차했다. 언제 와도 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풍경이다.
24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바포레토를 포함한 베네치아의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구입했다. 우선 수상버스로 산 마르코 광장을 가서 돌아 나오는 길은 도보로 골목을 누비기도 했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바포레토 난간에 몸을 기대고 운하를 따라 펼쳐지는 베네치아의 풍경 속으로 잠들 듯 빠져 들었다. 줄무늬 티셔츠와 모자를 쓴 곤돌리에들이 능숙한 손놀림과 특유의 웃음으로 곤돌라를 몰고, 수상버스와 개인 보트들이 운하 위를 달렸지만 그 자체가 정돈된 순간으로 보였다.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말이다.
카날 그란데를 오기는 곤돌라와 떡갈나무 말뚝 사이에 정박한 수많은 곤돌라들을 바라보면서 새삼 베네치아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중세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곤돌라는 17∼8세기에는 무려 10,000대 가까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물의 도시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여행 상품으로 400여 대 정도가 남아 있다. 베네치아 시는 곤돌라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과열 경쟁을 막고자 법으로 제한하여 현재 모든 곤돌라는 검은색이 되었다. 곤돌라는 벨벳 좌석과 페르시아산 양탄자로 내부를 꾸미고 앞부분에는 6개의 노치로 된 금속 조각으로 장식한다. 베네치아의 6개 구역을 상징하는 6개의 노치는 베네치아 총독의 모자를 본떠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느새 바포레토가 리알토 다리를 지나치고 있었다. 베네치아 관광 책자에 늘 등장하는 리알토 다리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든다. 베네치아의 운하 중에서도 폭이 가장 좁은 곳을 선택해 놓인 다리인데 원래는 목조로 지어졌다가 다시 건축되었다. 이때 공개 입찰을 하였고 미켈란젤로, 산소비노, 팔라디오 등 당시 유명한 예술가들이 대거 지원하였지만 공사는 안토니오 다 폰테가 맡게 되었고 당시 금화 25만 냥이라는 어마어마한 건축 비용을 투자해 1592년에 완성되었다. 이 다리 근처가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주요 무대가 되는 곳이다. 명작의 배경인 데다가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운하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언제나 많은 여행객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다리 아래쪽으로는 채소와 과일, 어패류를 판매하는 시장이 보였다. 거리가 멀었지만 정신없이 오가는 여행객들과 시장의 활기찬 모습이 기분을 계속 들뜨게 만들었다.
산 마르코 광장에 다가갈수록 곤돌라의 수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한 곤돌리에가 곤돌라를 멈추고 칸초네 한 가락을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출렁거리는 아드리아의 파도소리와 어울리고 있었다. 춤추듯 흔들리는 곤돌라와 흥겹게 철썩이는 파도의 합창, 곤돌리에의 칸초네는 그 순간을 최고의 공연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우아한 목조 다리인 아카데미아 다리 아래를 지날 즈음 멀리 산타 마리아 살루테 성당의 하얀 돔이 눈에 들어왔다. 살루테는 ‘건강’을 의미하는데 17세기 베네치아 인구의 3분의 1인 1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이 끝난 것을 기념해 세운 성당으로 웅장함과 함께 숙연함이 느껴졌다. 다리 위에는 걸어서 통과하는 사람보다 중간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넋을 잃은 사람이 더 많이 보였다. 바포레토가 아카데미아 다리를 지나 부드럽게 왼쪽으로 돌자 우아한 베네치아의 건물들 위로 캄파닐레 종탑이 불쑥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바포레토가 산 마르코 광장 역에 도착하자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배에서 내렸다. 베네치아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 늘 등장하는 선착장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많은 곤돌라들이 파도를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다’라는 뜻을 지닌 곤돌라의 이름 그대로였다. 산 마르코 광장 선착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노점상에 걸린 베네치아의 가면이었다. 해마다 겨울에 펼쳐지는 가면 축제의 명성에 걸맞게 베네치아의 화려한 가면은 무라노섬의 유리 공예품과 함께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념품 중 하나이다. 지난 여행에서는 돌아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곳에서 하나 사려고 마음먹고 미루다가 결국 복잡한 일정으로 구입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까이에 있는 노점에 멈춰 제일 먼저 눈에 띈 가면 하나를 구입했다. 오랜 숙제를 마친 것처럼 즐거웠다. 이런저런 가면을 구경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산 마르코 광장 앞에 도착했다. 광장 한쪽에 선 아름다운 성당의 종탑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베네치아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바다 깊숙이 박힌 나무 말뚝은 여전히 베네치아를 굳건히 떠받치고 있고 그 위에 선 종탑은 베네치아를 수호하듯 서 있었다. 마침 울리는 종소리에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창 보수 중인 탄식의 다리를 먼저 찾았는데 지난번처럼 여전히 보수 공사 중이라 다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언젠가 보수 공사가 끝난 다리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베네치아에 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슬쩍 웃음이 났다. 그때 갑자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비의 양이 많아지는 것 같아 서둘러 광장으로 뛰었다. 회랑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일단 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산 마르코 광장은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는 찬사를 했다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광장과 골목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비를 피해 사라지고 광장이 조용해졌다. 회랑에 앉아 한참 비둘기와 갈매기뿐인 광장을 바라보다가 커피를 마셔야 할 가장 완벽한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카페 플로리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베네치아의 상징 중 하나이다. 초기에 개업했을 때 2개의 방으로 시작한 카페 플로리안은 18세기 중엽 2개의 방을 추가했는데, 이 방들은 각각 저명인사의 방, 원로원의 방, 계절의 방 혹은 거울의 방, 동양의 방 또는 중국의 방로 불린다. 이 중 저명인사의 방은 줄리오 카를리니가 그린 카를로 골도니, 마르코 폴로, 티치아노를 비롯한 10명의 저명한 베네치아 인들의 그림이 걸려 있다. 원로원의 방에는 "국가를 지도하는 진보와 문명"이라는 주제로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그린 패널들로 벽이 장식되어 있는데 특히 이 방은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시작된 방이기도 하다. 계절의 방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 방은 베네치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식당이라는 뜻의 ‘일 리스토란테’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9세기에 이 방이 카페의 식당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의 방은 극동지방에서 영감을 받은 파 스쿠티가 그린 이국적 여인들과 연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20세기 초 추가된 마지막 방인 자유의 방은 아치형 천장과 징두리 벽판, 수작업으로 채색한 거울로 장식되어 있다.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여러 방들을 구경한 후 베네치아 작가들의 그림이 걸린 저명인사의 방에 자리를 잡았다. 약 300년 동안 이 카페. 이 자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고, 이야기 나누고, 차를 마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과 메모, 그림을 그렸다. 혼자서 이리저리 카메라를 움직이며 셀프타이머로 사진을 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나이가 지긋한 매니저가 직접 사진을 남겨 주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창한 베네치아도 좋지만 비 내리는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라는 별명과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한 모금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우산이 없었지만 특별한 목적지 없이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무작정 쏘다니고 싶었다. 쏟아지는 빗속에 인적 없는 골목길과 작은 광장, 수로, 운하와 다리들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세상이고 혼자만의 베네치아가 되었다. 다시 리알토 다리에 도착하기 전 일찍 문을 닫은 레스토랑 처마 밑에서 옷과 모자를 흠뻑 적신 빗물을 털어냈다. 사실 주기적으로 상승하는 아드리아 해 북부의 조류 현상과 베네치아 석호로 불어오는 남풍 시로코, 아드리아 해 연안의 차고 건조한 북동 계절풍인 보라 때문에 산 마르코 광장은 겨울철 우기가 되면 여기저기 침수가 된다. 이렇듯 바다와 바람이 만나 해수면이 상승해 베네치아를 물에 잠기게 하는 현상을 ‘아쿠아 알타’라고 부르는데 점점 더 굵어지는 빗물에 베네치아가 금방이라도 아드리아 안으로 수장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빗줄기는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새 비가 멈춘 회색빛 먹구름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아드리아 해와 베네치아의 하늘이 어스름 속에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응시했다. 떡갈나무 말뚝에 매어둔 곤돌라와 보트들이 운하 위에서 출렁거렸고, 파도는 선창에 부딪히며 어지럽게 흩어졌다. 여행자들이 사라진 베네치아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래도록 베네치아를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