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여행은 기대도 준비도 없이 온다-일본, 아키타

by 배종훈

#1

설렘과 즐거움을 더욱 크게 주는 것은 예상치 않은, 예측이 불가능한 여행이 아닐까?


아키타로의 여행은 어쩌보면 굉장히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 원래도 철저하게 계획된 여행을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특별한 일정도 여정도 없이 가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덜컥 항공권을 받아 들고나니 걱정이 뒤따라 들어왔다. 고민할 틈을 주지 않고 출발 직전의 비행기에 태워진 기분이었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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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을 여행처럼 살면 어떨까하는 마음은 항상 여유롭고 행복한 여행 중에 든다. 곧 돌아가야할 일상에 대한 압박을 피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일상의 하루하루를 느긋하게 보는 것, 먹는 것마다 행복하게 받아들인다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여행만큼이나 설레고 멋지지 않을까하는 마음 말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고 하지만 막상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그 마음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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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정교하다.

빈틈없이 돌아가는 기계에서 잠시 생긴 틈에 여행이 있지만, 힘들게 얻은 틈을 충분히 누리겠다는 마음이 여행도 정교하게 만들어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으면 며칠동안 철야근무를 하고 늦은 밤 버스 좌석에 털썩 앉은 것만 같았다.


온통 흰 눈만 가득해서 눈을 보는 일 말고는 할 것이 없는 아키타로 가는 비행기가 차가운 겨울 하늘로 떠올랐다. 이번 여행은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 것만 같아 두근두근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아키타는 말 그대로 설국이었다. 우리나라의 겨울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눈의 양이 어마어마하고 아름다웠다. 지붕 위, 들에 그대로 쌓인 눈의 높이만 봐도 1미터는 충분히 될 것 같았다. 겨울여행은 따뜻한 곳으로 가야한다는 마음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4

버스를 타고 달리는 중에도 창밖은 오로지 흰색 뿐이었다. 백색이 이렇게도 눈부셨던가.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도 모른 채 눈으로 가득한 아키타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더 달려 버스가 도착한 곳은 ‘타자와 호수’였다. 버스 창 아래로 푸르고 맑은 물이 가까이 보였다. 물이 아닌 모든 곳을 덮고 있는 흰 눈과 오묘한 푸른 빛의 호수는 외마디 감탄사 말고는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버스는 호수를 끼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호수는 규모만으로는 바다라고 할 만큼 넓었다. 버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호수의 용이 되었다는 ‘타츠코 동상’이 있는 곳에 도착해 멈추었다. 동상 옆에 있는 작은 신사에 매달린 방울이 바람에 흔들려 청아한 소리를 냈다.


사람이 없는 고요한 호수를 따라 걸으니 눈을 밟는 소리도 신비롭게 들렸다. 호수보다 더 시릴 것 같은 파란 하늘과 붉은 색을 칠한 작은 신사, 그리고 무결한 하얀 눈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색상 조합으로 눈과 가슴을 즐겁게 만들었다.


기대나 준비도 없이 온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순간에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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