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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리 Oct 31. 2024

주짓수양록

'선수할 것도 아닌데...'라고 말하지만.

 내향적이고 남들 앞에 서면 늘 긴장하지만, 이상하게도 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도전하게 된다.     

 

 연말이 되어서 그런지, 해야 할 일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물론 본업과 관련된 일들이다. 

북 아트 자격증 시험, 독서 미술 자격증 수업, 하브루타 연구회 모임까지… TO가 자주 나는 것이 아니기에 무리해서 일정을 잡았다.

시간이 없다며 쫓기는 와중에도, 수많은 할 일들을 뒤로하고 결국 체육관에 갔다.     


  “주짓수 선수 할 거야?”

 가족이 장난스럽게 서로에게 묻곤 하는 말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결국 체육관에 가는 내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 질문이 진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남시장기 주짓수 대회는 접수부터 고민이 많았다. 미뤄둔 일들 때문에 매일 잠을 줄여도 시간이 부족했고, 체력도 에너지도 이미 바닥을 보일 지경이었다. 쿨하게 '다음에 좋은 컨디션으로 나가자'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접수 마지막 날까지 끙끙 고민하다가, 결국 마감 2-3시간을 남기고서야 겨우 접수했다.     

 

우리 팀 세컨 bxg존프랭클마석관장님&정승원 선수 / 출처: 그린트리 작가님

 ‘진 사람은 말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경기에서 졌고 후회만 남았다. 결국, 경기 내내 내가 했던 선택들이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여자 마스터 경기 / 출처 : 그린트리 작가님

  매트에 오르기 전부터 겁이 났고, 경기에선 오직 이기겠다는 욕망뿐이었다. 그러나 소극적인 플레이와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로 결국 이기지도, 배우지도 못한 경기가 되고 말았다.

진심으로 쏟아붓지 못한 탓인지, 무언가 크게 잃어버린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시합이 끝난 후 몸살이 크게 와 체육관에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된 거 좀 쉬면서 좋은 컨디션으로 나가자.'라고 생각했지만, 연습 영상을 볼 때마다 초조함이 밀려왔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 운동을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주짓수는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는 운동이다.     

 

 때마침, 어느 프로그램에서 내가 좋아하는 김창옥 선생님의 강연이 나왔다.

그는 '인생의 3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열정기, 권태기, 그리고 성숙기. 

사람들은 이 열정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과 권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고 했다. 

넘쳤던 열정만큼 권태가 찾아오는 거라고... 

그 후에 오는 것이 성숙기, 불꽃은 아니지만 숯불처럼 은은한 열을 간직한 상태라고 한다.     


 지금 나는 이게 열정인지 권태인지, 아니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생긴 불안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직 주짓수에서 성숙기로 접어들지 못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살면서 내가 모든 노력을 끌어모아 도전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고3 입시 준비와 공부방 오픈 준비할 때를 제외하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누구나 하는 노력이었다.     

 

 그런데 내가 주짓수 선수가 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 가족은 주짓수라는 같은 분야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서로 속상한 것들을 매트 위에서 풀고, 화해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체육관에서 나올 때 손을 꼭 잡고 웃으며 나간다. 이 순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것 같다.     

 

 주짓수는 나를 직면하게 한다. 몸이 힘들어지는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의 두려움도 함께 올라온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넘어설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주짓수는 내 삶의 거울과도 같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힘을 길러준다.     

 

 이번 시합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 마음을 잠시 잃어버린 순간,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주짓수는 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내 연약함을 마주하게 한다. 그 연약함이 때때로 벅차서 포기하고 싶게 만들지만, 결국 다시 매트를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운동을 통해 나는 매 순간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기쁨을 느낀다. 비록 실수와 좌절이 많지만, 그 모든 경험이 나를 더욱 진정한 나로 만들어준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계속 매트를 밟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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