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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 Oct 03. 2022

어차피 넘어진 거 좀 누워있자

우울증을 진단받고 그 후 


순간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건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엔 사람이 꽤 많았다.

이전에 심리상담센터를 가본 적은 있으나 정신의학과는 처음이었기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호명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검사를 진행한 뒤 나온 결과는 우울증과 공황 장애였다.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의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공황 증상이 불시에 찾아올 때 먹을 수 있는 비상약과 함께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병원을 나오며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는데 감기도 심하게 걸리면 후유증이 많이 남는 것 아니냐고.


사람에게 찾아오는 어떤 병이던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특히 마음의 병은 더더욱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병원에 찾아온 발걸음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시다"


시작,

나에겐 또다시 시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PD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7년가량을 쉼 없이 달려왔다.

이미 내 인생에서의 스타트는 끊어졌고 달려가는 길에서 조금이라도 넘어지거나, 쉬게 되면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워 그렇게 끝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달려왔다. 그리 풍족하지 않은 집, 남들보다 부족한 스펙, 부족한 영어 점수,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는 나이와 같은 많은 이유들이 내가 나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난 항상 불안하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불안함과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나를 가차 없이 몰아세웠다.

끝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만큼' 하지 못하는 나를 내가 비난했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 넘어져 버렸다. 그것도 아주 크게 넘어져버린 것 같다.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아등바등하는 나에게 나 자신이 이제는 그만하라고 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들을 잠시 멈춘 뒤,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듯하다.


"버텨내느라 고생했어요, 이젠 도움을 받읍시다"


우울증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 말에 선생님이 덤덤히 이젠 그만 도움을 받자고 얘기한다.


약봉지를 가방에 넣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다행일 정도였다. 

내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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