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예술

단편소설

by 바실란도


"나는 오늘은 뭘 먹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제일 이해할 수 없어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고민이야."


우리나라 최고 학벌이라는 대학의 미술을 전공하고 화가로 전향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남편도 역시 같은 대학을 나오고 제법 유망한 IT업계의 대표였다. 그는 남편 회사의 사장이었다.

남편의 회사는 작지만 전도가 유망한 IT 회사였다.

그러나 아직 신생 기업이었기에 남편의 월급은 무척 적었다.

나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서울 태생이 아니었기에 직장이나 직업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전업주부를 하던 차였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늘 생활비에 쪼들렸다.

나는 지방에 살다가 남편이 이 회사의 제안을 받았다고 했을 때 나도 서울에서 나의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같이 서울로 오자고 남편을 종용했었다. 지방에서 지역 방송국의 라디오 구성작가를 하다가 결혼과 출산으로 그만두면서 나는 아직 내가 펼치지 못한 글 쓰는 작가의 꿈을 기왕이면 서울이라는 큰 물에서 한번 펼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와서 보니 나 정도 되는 글쟁이는 차고도 넘쳐흘렀고 나는 어느 한 군데 이력서조차 내 볼 수준도 못 되었다. 거기다 20대의 나이에 애기 엄마가 되었으니 매일 집에 틀어 박혀 그 답답함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그저 남편만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도 신생 IT 기업에 다니느라 밤낮이 없이 일만 해야 했다.

그러던 차에 남편 회사 대표가 몇 명 안 되긴 하지만 전 직원 7명과 대표의 아내, 그리고 나와 우리 아들까지 전부 다 같이 강원도 1박 2일 단합대회를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강원도 속초의 어느 호텔이었고 나는 자연스레 대표의 아내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아이와 여자들은 밥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하고 남자 직원들은 밤늦게 술을 마시자는 취지인 것 같았다.

남편의 회사 단합 대회이기는 했지만 가족 여행을 생각지도 못할 형편이었던 나는 처음 가보는 속초라는 곳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그래도 호텔에서의 숙박, 그리고 사전에 남편에게서 듣게 된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로 손꼽히는 대학의 미대를 나왔으며, 지금은 화가로 활동 중이라는 대표의 아내에 대하여 대단히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당연히 세련되고, 지적이고, 교양 있고, 우아한 어떤 여자를 떠올리고 왔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이미지를 상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그녀는 그런 이미지와는 어딘가 달랐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멋쟁이도 아니었고 –최고의 미대를 나온 사람의 미적 감각은 얼마나 대단할까 그런 기대도 있었던 탓이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화장기 없는 얼굴에 광대뼈가 두드러진,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나치게 개성이 강한 좀 못생긴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뭔가 위화감이 덜 느껴져서 그녀가 좀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많은 것 같았지만 긴 생머리의 수수한 모습이 그녀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거부감은 덜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적인 열등감을 덜 느끼기 위해 집에 있는 옷장을 다 뒤져 뚜드려 맞춰 입고 나온 내가 훨씬 화려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호탕한 남편의 회사 대표가 시끌벅적하게 뭔가 어색하게 서 있던 우리에게 방을 안내하고 남편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사모님과 잘 지내보라는 무언의 언질을 보낸 뒤 그 두 사람은 다른 직원들이 있는 방으로 자리를 옮겨 가고 말았다.

어찌 됐건 낯선 여자 두 사람이 한방을 쓴다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불편한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아이까지 데리고 있어서, 그리고 남편 회사 대표님의 사모님이라는 것들이 나로 하여금 그녀의 눈치를 더 살피게 했다.

우리는 남자 둘이 떠나고 방에 들어서자 짤막하게 서로 인사만 주고받았다.

나는 말이 많은 사람 앞에서는 말수가 적고, 말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그 어색한 공기가 싫어 괜히 말을 제법 하게 되는 성격이었다. 그 사모님은 화가라서 그런지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몹시 어색한 사람 같았다. 인사를 나누고 나자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를 서로 입장한 순서대로 자연스레 차지하고 각자의 짐을 조용히 풀기 시작했다. 이미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 왔으니 이제부터는 그냥 각자의 자유 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짐과 남편의 짐과 내 짐을 정리하면서 뭔가 사모님과 대화를 해야 할거 같은 강박이 들기 시작했다. 사모님은 가져온 짐이 거의 없는 듯 그냥 입고 온 면바지 차림 그대로 자기 침대 위에서 베개를 기대고 앉아 뭔가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아니 그냥 멍한 눈빛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결국 그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기 위해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아직 잠 안 오지? 엄마랑 놀까?”

아들은 얌전해서 내가 안고만 있으면 조그만 장난감 차 하나만 쥐어 줘도 말없이 그것만 만지작거리고 조용히 노는 아이였다. 아들은 내가 말한 것에 당연히 대답하지 못하는데도 나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처럼 더 어색해져 버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사모님은 그 작은 호텔 방에서 나와 어색하게 앉아 있는 그 순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는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세계가 있기에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창밖을 바라볼 것도 없고, 뭔가 잠자기 전의 보통의 여자들이 하곤 하는 화장을 지우거나 잠옷을 갈아입거나 샤워를 하는 등의 어떠한 일체 행위도 없이 그냥 침대에 허리를 기대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부지런한 편은 아니어서 잠자리에 들기 위한 요란한 절차가 많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둘 다 똑같이 멍청히 침대 베개를 기대고 앉아 각자의 명상에 잠긴다는 것은 대단히 우스운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불편함을 먼저 감지한 건 내 쪽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이라도 꺼내어 이 어색한 공기를 깨고 작은 수다를 거친 후에 잘 자라고 말하며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말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건 내 쪽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전 방에 들어서면서 안녕하세요?라고 했는데 서로 잠깐의 침묵을 거친 후 안녕히 주무세요 하는 것 역시 웃기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래 저래 어색하고 거북한 상황을 면해 보기 위해, 그 짧은 찰나와도 같은 시간에 나와 그녀의 공통점을 찾아보았다. 물론 ‘사모님은 화가라면서요? 나도 글을 좀 썼지요’라면서 우리가 같은 예술가인 듯이 얘기하는, 아니 그런 방향으로의 대화는 절대 이어질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봐도 당연한 우리의 공통점은 무얼까? 나는 우리가 지금 이 공간에 같이 있게 된 이유, 즉 남편들을 따라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러니까 일단 유부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은 유부녀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가 내가 현재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전업 주부라는 사실이, 그녀 역시 그럴 거라는 착오를 일으키게 하고 만 것이다.

나는 왜 그때 바보같이, 주부이긴 하지만 집에서 밥을 잘 안 해 먹는, 남편에게 반찬을 잘 못한다고 핀잔을 들으면 더 열심히 노력하려는 착한 아내가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돈을 더 벌어 오든가 네가 해 먹으라고 얘기해 버리는, 겨우 악처 수준을 간신히 면해 살고 있는 수준이었으면서, 왜 그 사모님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모님. 아까 다 같이 밥 먹을 때 보니까 대표님은 뭐든 참 잘 드시던데, 우리 남편은 반찬 투정을 잘하거든요. 사모님은 어떤 음식을 잘해 드세요?"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그렇게 고심 끝에 꺼냈을까.

"저는 매일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하지 그 고민이 제일 괴로워요 흐흐 “

이런 바보 같은 멘트를 추가로 날리며 나는 그녀에게 어떤 답변을 기대했던 것일까? 나는 그녀가 나를 따라 웃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의 무뚝뚝한 표정이 조금만 누그러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가장 바란 건 그녀가 ‘나도 음식 잘 못해요’라고 말하며 잠깐의 수다를 거쳐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건 나의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녀의 답변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놀라운 것이었다

"나는 오늘은 뭘 먹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제일 이해할 수 없어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고민이야 “

나는 마치 귀엽지는 않지만 혼자 외로워 보이는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려다 있는 대로 손을 물어 뜯긴 사람처럼 아무 대꾸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면서 남들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밑지거나 말발이 부족했던 경우는 잘 없었다. 하지만 그날 그 순간의 내 머릿속은 내가 여태까지 들었거나 했던 말들의 어느 부분에서도 그 말에 적당한 대답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살아온 날 들 동안 ‘밥’이나 ‘음식’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 그중에서 적당한 말을 찾아내기는커녕 ‘먹는 것’에 대한 이 새로운 정의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야 할는지, 아니 정확히 말해 그 뜻도 잘 이해하지 못해 마치 컴퓨터의 용량이 부족해 렉에 걸린 듯 일시정지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그다음 말은, 내가 방금까지 그녀에게 느꼈던 반감과 당혹감을 단숨에 무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밥 생각을 할 시간에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 순간, 방금 전까지 내가 밥에 대해 품고 있던 무수한 감정과 사소한 생각들이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나는 밥생각을 할 시간에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

그녀는 어쩌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진실 되게 나를 대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나 자신도 밥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그녀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의도한 것인지, 어쨌든 나의 본모습을 감춘 채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실은 나도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라고는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다음의 말은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 밥 이야기 말고, 당신의 작품 세계는 어떤 건가요’라고, 그녀가 혹시라도 친절히 답을 해준들 내가 알아먹지도 못할 것이 뻔한 질문도 던지고 싶지 않았다. 잠시 그녀가 남편의 회사 대표의 아내라는 사회적 지위가 각인돼 ‘생각이 참 멋지시네요’라든가 하는 아부성 발언이라도 해야 되나 하며 짧은 망설임도 있었지만, 내 자존심은 그걸 허용할지라도, 이미 그 사모님이 그런 대화를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먼저 알아버렸기에 그마저도 관두었다.

나의 뇌용량 과부하는 겨우 조금 진정되어 가까스로 렉에서 풀려난 듯 조심스레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평소에 말하기가 곤란하거나 귀찮을 때 자주 쓰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예~"

그리고는 아직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열심히 갖고 놀고 있는 아들에게 "잠 오지?”하고 물어봤을 뿐이다.

그날 밤 나는 그 복잡한 머릿속의 수많은 질문과 생각에도 불구하고 가장 쿨한 대답인 "예"를 해놓고서 밤새 잠을 자지 못해 뒤척였다.

어쩌면 우리는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면 정말 대화가 잘 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그 역시 또 나의 착각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나의 생각 따위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밥에 대한 그녀와 나의 생각은 똑같은지도 모른다. 매일 저녁 퇴근하면 ‘밥’만 찾고 ‘밥’에 진심인 남편을 보며 나 역시 지긋지긋하게 ‘밥’ 생각만 하는 남편을 무시하지 않았었는가. 나 역시 ‘밥’이 아닌 ‘문학’과 ‘예술’에 대한 생각이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나. 하지만 나는 현실의 나를 자각해야 했다.

‘그래, 그 여자는 최고 학부에 돈 잘 벌어 주는 남편까지 만나 밥 걱정은 안 하고 예술만 생각하고 살아서 참 좋겠다. 나도 누가 돈 걱정, 밥 할 걱정, 애 키울 걱정 없게 해 주면 작가가 됐을 텐데 이런 모욕이나 받고 살다니. 아니지, 저렇게 애도 안 낳고 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오로지 작품 생각만 해야 예술가로 살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잡생각이 많고 할 게 많은 나 같은 사람은 글을 쓰는 일이라는 게 분수에 맞지 않은 사치인 걸까?’ 나는 밤새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오히려 별거 아닌 그 한마디에 이렇게 잠을 설치는 내가 또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냥 이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의 헛소리쯤으로 여겨도 될 텐데 말이다.

그렇게 그날 밤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잠시 돌아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다 같이 우동을 먹기로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남편의 회사 대표가 트렁크 팬티를 입은 채로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기억이 남아 있다.

더운 여름날이긴 했지만, 긴바지를 입고 간 터라 더워서 바지를 벗고 반바지인 척 트렁크 팬티를 입고 돌아다닌다면서 ‘반바지 같지?’ 하며 너스레를 떨어도 그건 누가 봐도 트렁크 팬티였다.

나는 남편에게 회사 대표가 원래 저렇게 이상하냐고 물어보니 굉장히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가졌다고 말해 주었다. 그제야 나는 그 두 사람이 왜 부부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여간해선 웃을 거 같지 않던 그 사모님이 자기 남편의 트렁크 팬티를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에 그렇게 좋아라 하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그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이 짐작이 갔다.


그날의 상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었던 것 같다.

휴가를 다녀온 후 나는 남편과 더 격렬하게 싸웠다.

남편은 나의 생각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여전히 반찬 투정을 하곤 했다. 이건 좀 짜다는 둥, 이건 너무 태웠다는 둥. 그러면서도 먹기는 잘도 먹었다. 나는 그런 모습도 꼴 보기 싫었다. 그런데 하루는 반찬이 아닌 갑자기 누룽지가 먹고 싶다는 투정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그냥 대충 먹으라는 식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남편이 내게 폭탄을 날렸다.

“우리 회사에 얼마 전에 여자 경리가 들어와서, 점심때 사무실에서 밥을 해 먹는데 돌솥밥에 밥을 해주니 너무 맛있더라고. 자기도 좀 그렇게 해 보면 안 돼?”

내가 좋은 아내였다면 남편이 밖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다니니 잘됐다고 기뻐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아내가 되질 못했다.

나는 그 사모님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져 있던 때였던 지라 회사 대표가 자기 아내가 집에서 밥을 안 해 주니 아예 회사에 밥을 해주는 경리를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꼭지가 확 돌아버리는 것이었다.

“뭐라고? 나보고 애를 데리고 돌솥밥을 하라고?”

나는 일단 애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그 회사 대표가 자기 아내를 너무 절절히 사랑해서 밥을 해 달라고 하기보다 밥 하는 직원을 구한 것이라 단정 짓고, 아무것도 모르고 밥 타령을 하는 남편이 그리 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밥 해주는 여자가 좋으면 그 여자랑 살지 왜 나랑 사냐?”

"뭐? 누룽지 먹고 싶어 돌솥밥 한번 해달라는데 그 여자랑 살아라고?”

사실 남편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나라고 염장을 질렀던 것 같다.

“그래, 나도 맨날 없는 돈으로 구질구질하게 니 밥이나 해대는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네가 해 먹든지 그런 여자랑 살든지 해라. 애는 내가 키울 테니 밥 잘해주는 여자랑 밥 많이 먹고살아라. 나도 내 아들은 너같이 구질구질한 인간에게 안 맡긴다.”

남편도 그날은 꼭지가 돌았을 것이다.

우리는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있지만 작은 소반에 몇 가지 반찬만을 꺼내 tv를 보며 오붓하게 바닥에 앉아 셋이 밥을 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날도 나는 그렇게 밥상을 내어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밥 해주는 그 경리 여자랑 살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남편은 그 소반 밥상을 확 엎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말이면 다 말인 줄 알아? 겨우 누룽지 먹고 싶다 했다고 같이 못살겠다고?”

나는 나대로 지지 않았다.

“지금 밥상을 엎었어? 나도 잘 배운 건 아니지만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이 밥상 엎는 인간이라는 건 배웠다. 너 같은 인간이랑은 진짜 더 이상은 못살아!!”

그러고는 악다구니를 쳤다.

남편은 이미 밥상을 엎었고, 바닥에 엎질러진 그릇과 밥풀때기와 김치 같은 음식찌꺼기가 널브러진 사태를 보고서도 이걸 마무리하는 것은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나는 서럽고 서럽기 짝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 함께 꾸려가는 내 삶 전체가 원망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는 결국 이 보잘것 없이 엎어진 상 같은 내 결혼 생활을 다 엎어버리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밥상을 엎고서도 태연하게 자는 남편과는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저 인간을 깨워서 담판을 지어야 하는데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나는 냉장고에 들어 있던 보드카 술병을 꺼내 순식간에 절반 정도를 마셨다. 그 술이 얼마나 도수가 높은지 이미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자 정말 순식간에 취기가 확 돌았다. 나는 마시고 남은 보드카를 들고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 위로 갖다 부었다.

“어푸푸”

남편은 자다가 얼굴 위로 쏟아지는 술을 맞고 봉변을 당해 일어났지만, 제정신이 아닌 날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며 바로 술병을 빼앗았다.

나는 술김에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외쳤다.

“이런 인생 살기 싫다!! 너 같은 인간이랑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 바엔 그냥 죽으련다. 아이고, 근데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

그 순한 아들도 잠에서 깨어나 놀란 나머지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붙들고 그렇게 술주정을 좀 더 하다가 나는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남편이 자기가 엎은 밥상을 깨끗하게 치워 놓았다. 그 뒤로 남편의 반찬 투정도 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글 쓰는 일 따위는 완전히 접기로 했다.

나는 사실 그 사모님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한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한계에서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만 표현할 수 있는 원망이나 자괴감, 비난, 그런 것 들로써 그녀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변명일지 모르지만, 그녀 역시 예술적 감각은 뛰어날지 몰라도 타인과 교류하기에는 그녀의 언어 체계가 그리 섬세하거나 유연한 편은 아니었던것 같다.

그때의 나의 생각으로 내린 결론은 그러했다.

그런 삶의 이중성.

다 가진 자의 여유에서만 나오는 예술.

그런 이기적이고 삶에 기만적인 자세로, 밥 따위는 무시하고 예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경멸스러웠다.

그럴 바에 나는 차라리 글을 접고 돈을 벌겠다.

그래 아예 본격적인 밥벌이만 하겠다고.

예술이 밥을 무시한다면, 나는 밥으로 살아남겠다.

기왕이면, 아주 잘 벌어서.

그 여자는 미대를, 그것도 최고 좋은 대학을 갔다면 그녀의 집안도 빵빵하겠지.

남편도 같은 대학의 공대를 나와 IT 기업의 대표이니 평생 돈 걱정은 안 하고 살겠지.

나와 남편처럼, 지방의 사립대를 나와 겨우 끼니나 때우고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겠지. 같은 세상을 살아도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우리 아들은 정말 부모를 잘못 만났구나. 나는 우리 아들이 나중에 나처럼 뭔가를 하고 싶은데 처지가 어려워 못하게 될 거란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래 나는 예술이고 나발이고, 작가니 뭐니 그런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서 돈이나 벌자. 그게 나의 현실이다.

그게 나의 결론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하기보다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쉬는 주말을 이용해 집 근처 카페에서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일 낮에는 아이를 돌보면서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아들이 두 돌이 될 무렵까지는 그래도 내가 직접 키우고 싶었기에 그때를 기다리며 아이를 돌봐 주는 데를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뒤 나의 모든 자잘한 고민을 잠재우는 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회사가 부도가 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도가 나기 전 몇 개월간 남편은 월급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했다.

남편은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는데 받을 돈을 잘 회수하지 못하고 있어서라고 했고 대표가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해결한다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들의 배경과 재력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그리 큰 걱정은 안 했는데 생활비가 조금씩 쪼이는 상황이 되기 시작하니, 주말에 잠깐씩 다니던 알바 시간도 조금 더 연장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일은 이제 정말 나에게는, 나의 의도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당장 생각지도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버티던 남편의 회사가 정말 얼마 안 가 부도가 난 지경이 되었고, 남편 역시 갑자기 실업자가 된 것이다.

받지 못한 월급은 물론 퇴직금도 나오지 않았다.

생계가 막막했다.

회사 대표 부부는 야반도주를 한 건지 회사도 채 정리하지도 못하고 어딘가로 잠적해 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살던 집도 제대로 팔리지도 못하고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잘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고 예술가인 부부의 말로가 이런 것인지, 내 처지도 생각 못하고 그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당장의 생계를 꾸려야겠기에 주말에 나가던 카페 알바를 주 5일 마감 시간까지 연장하며 정직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집에 있게 된 남편이 아이를 돌봤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어떻게 될지 막막하기만 했던 어느 날 밤, 카페 마감이 늦어져 그나마 편하게 집으로 올 때 타고 다닌 마을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나오라고 할까 하다가 이 시간이면 아들이 자고 있어서 아들을 혼자 내버려 두고 나오게 할 수는 없어 버스 정류장 두 코스 정도 되는 길을 터덜 터덜 걸어서 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겹고 벅찼다.

‘내가 이럴려고 서울에 왔나.’

나는 내가 남편을 종용해 서울까지 와서 들어가게 한 회사인지라 이런 결과가 돌아왔어도 그에게 뭐라 할 말도 없었다. 나의 꿈을 이루기는커녕, 이렇게 먹고살기 조차 힘든 형편이 되다니. 게다가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는 불안감도 밀려왔다.

나는 지친 몸으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그 반찬 투정 많던 남편이 정갈한 밑반찬 몇 가지를 사고 콩나물국을 끓이고 생선을 구운 밥상을 예쁘게 차려 내왔다. 내가 지쳐서 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있으니 밥 먹으러 나오란 말도 못 하고 그 소반 밥상을 침대에 까지 내온 것 같았다. 그 난리통에도 깨지지 않은 밥상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차려온 밥은 너무 맛이 있었다. 나는 하루의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 한 두 마디씩 말을 시작한 아들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리다 좋아서 재롱을 부렸다.

아, 이래서 예전 아버지들이, 남자들이 밖에서 그 개고생을 해도 별말 없이 돈을 벌어다 주었구나.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곧 직장을 구할 것 같다며 조금만 더 고생하라고 나를 다독였다. 나는 겨우 눈물을 참고 남편이 해 준 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집에서 조금씩 유튜브를 보며 요리를 해보곤 했던 남편의 음식 솜씨는 여간 훌륭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가 이렇게 요리에 조예가 깊었으니 나에게 음식에 대한 불평을 많이 했었구나 하고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를 닮아 입이 짧아서 밥을 잘 먹지 않던 아들의 입맛에도 잘 맞게, 부드러운 식감의 반찬도 만들어, 아들도 밥을 잘 먹었다.

나는 문득 나도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렇게 따뜻한 밥상으로 위로를 해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내가 하고 싶었던 글 쓰는 일은 하지 못하고 애 키우고 살림 살고 밥이나 하면서 푼돈을 아껴가며 집구석에 처박혀 산다고, 겨우 억지로 반찬 두어 가지를 해놓고는 갖은 생색을 내며 살지 않았던가? 그마저도 언제나 생활비가 쪼들린다고 밥상머리 앞에서 쫑알거리며 몇 가지 없는 반찬까지도 입맛 없게 만든 아내가 아니었던가?

나는 밥을 맛있게 먹고 밥상을 물리며 또 문득 그 사모님 생각이 났다. 그 사모님은 이런 밥의 감동을 알까? 아니 지금 어디서 밥이나 잘 먹고 있을까? 그들이 재산이 많았다면 그렇게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야반도주를 할 만큼 급하게 회사를 팽개치고 도망을 갔을까? 어쩌면 그들도 지금쯤은 나처럼 예술보다는 밥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그들을 걱정한다는 것은 정말 오지랖 넓고 오줄없는 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은 적어도 삶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나약한 한 인간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아니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거대한 진실 앞에 마주 서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나 역시 깨달아 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나도 진짜 나의 글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예술이란, 멋진 무언가가 아니라 삶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바다에 빠져 가면서도 끝까지 나아가는 나약한 인간들의 강렬한 삶을 표현하는 어떤 도구 같은 게 아닐까?

나는 이 수많은 일상의 삶의 강렬함 들을 그냥 놓치고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순간 안타까웠다. 이 매일매일의 일상이 똑같은 듯, 너무도 다른 강렬함. 이런 걸 그저 연기처럼 사라지게 하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나의 해야 할 일쯤으로 여겨졌다.

나는 그 사모님도 지금은 밥도 잘 먹으면서 작품 구상도 더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날, 내가 그 사모님을 처음 만나 꺼낸 밥 이야기는 나의 진심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대답도 진심이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녀는 더 깊은 자신의 예술과 삶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의 한계가 그걸 차단하고 막아버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내게 밥은 예술과 동일어였다는 것을.

밥을 먹고 살아내는 그 모든 삶이, 내겐 곧 예술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