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앞치마

단편소설

by 바실란도


그 친구는 그리 예쁘지도 않았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친구들한테 인기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미대를 간다고 미술실만 들락거릴 뿐 썩 좋은 대학에 갈 거라는, 아니 아무 미대라도 대학을 갈 수나 있을까 싶을 만큼 공부나 그림 그리기에 그렇게 열심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공부도 안 하고 책을 안 봐서 그런지 입을 열면 뭔가 무식해 보이는 말투도 새어 나왔다.

하지만 174센티미터 정도-본인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고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의 키와 가늘고 긴 팔다리, 예쁘지는 않지만 뭔가 묘하게 약간 선탠을 한 듯이 가무잡잡하고 개성 있는 얼굴과 몸매는 그 친구, 선경이가 입는 옷들로 인해 누구든 압도해 버렸다.

나는 1980년대 잠시 시행했던 교복 자율화 시대를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관통하며 매일 아침 학교에 입고 갈 옷에 대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시절을 보냈다. 때마침 그 무렵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옷이나 운동화 같은, 말하자면 ‘무슨 무슨 메이커’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막 상륙하기 시작했는데 그전까지는 ‘메이드인 재팬’이면 사족을 못쓰던 우리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우리들은 그 ‘메이커’에 사족을 못쓰던 시대였다. 특히 나는 그 무렵 처음으로 고층 아파트가 막 들어서기 시작한 제법 부유한 동네에서 여고를 다니고 있었기에 여자아이들끼리의 외국 브랜드 옷이나 운동화나 가방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바로 무시를 당할 만큼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어떤 노골적인 애들은 누가 좀 예쁜 새 옷을 입고 오면 “ 어머, 너 이거 어디 브랜드 거야?” 하면서 목 뒷덜미의 상표를 황급히 확인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옷이 만약 유명 브랜드 옷이라면 “어머~ 역시”라고 찬사를 표하거나 아니면 듣도 보도 못한 제품이라면 “뭐야, 비메이커잖아”하고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었다. 나는 신흥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동네에서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에 살고 있었기에-우리 집이 못 사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파트촌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간 늘 주눅이 들어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부자의 흉내를 낼 만한 수준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에게 떼를 써서 나도 제법 유명한 브랜드의 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고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악착같이 그 부자 친구들 무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았던 것 같다. 그 당시는 교복 자율화와 더불어 과외 금지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사촌 언니, 오빠라는 핑계로 비밀과외를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나는 과외를 시켜 달라는 소리는 아예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지만 형제가 많은 집 안에서 내 독방이 없었던 탓에 그나마 그때 막 생기기 시작한 고급 독서실에 다니곤 했었는데 역시 그 잘 나가는 무리들과 늘 함께였다.

그러나 선경이는 그 어느 무리에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혼자 다니기를 좋아했는데 그 친구 역시 나와 가까운 주택가 동네에 살았기에 가끔 나와 마주치곤 했다.

나는 주로 아파트 지역의 고급 상가 건물에 있는 독서실을 가기 위해, 선경이는 아마도 그 근처의 미술학원을 가기 위해 자주 마주친 듯하다. 그때마다 선경이는 주로 회색과 베이지색 같은 무채색과 블랙 위주의 그냥 흰 면 티셔츠와 블랙진, 그리고 아무 브랜드 로고가 없는 흰 운동화를 신은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냥 흰 면티가 아니고 어딘가 컷팅이 독특하거나, 같은 블랙진이라도 색감이 묘하게 빈티지하면서도 바짓단 마무리 하나라도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는 옷이었다. 브랜드에 집착해 아무 로고도 없는 옷이나 신발을 착용하면 왠지 주눅이 들어 학교를 가곤 했던 나와는 달리 선경이는 그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는 결코 예쁜 척하지 않고 교양 있는 척 유식한 척하지 않는 말투는 아직 고등학생인 그 애를 뭔가 더 성숙하고 쿨내 진동하는 멋있는 여자처럼 느끼게 했다.

사실 눈을 감고 들으면 사 오십 대 무식한 아줌마 같기도 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다림질조차 잘 되지 않은 흰 면티를 입고 청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손을 찔러 넣고는 다리 한쪽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서 있는다고 그 친구 같은 멋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미술실 복도에서 대충 옷소매를 아무렇게나 걷어 올리고 손과 손목에 온갖 물감칠을 하고서 기다란 검정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창문 밖을 응시하고 있던 모습이었다.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뒤로 묶은 머리에서 삐져나온 머리카락 몇 올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그 애가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어떤 아우라도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아니면 내가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나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마도 내가 남자였다면 한눈에 반했으리라. 하지만 곧 떠들썩하게 웃는 그녀의 목소리가 금방 내 정신으로 돌아오게 했다. ‘입만 좀 다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그렇게 그 친구는 대학도 대충 공부해서 가는 듯했고 그 외의 조건은 우리들의 관심을 끌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대학입시가 끝나고 대학에 입학한 뒤까지도 그 존재는 잠시 잊혔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한 후, 우리 여고 동창들은 좀 잘 나가는 친구들 위주로 의대생들과의 단체미팅을 성사시켰다.

그런데 주선자인 내 친구가 고민을 하는 것이었다.

"그 의대생들 중 한 명이 꼭 미대생을 넣어 달랬대. 안 그럼 미팅 안 한다고 “

우리는 미대에 간 친구 몇 명을 생각해 냈는데 예술 쪽을 전공하는 친구들 중에서 명문대 미대에 간 친구들은 집안 배경도 대단히 막강해서 그냥 중산층 집안 자식이었던 우리들의 배경과 확 비교가 될 터이니 굳이 그런 애들을 넣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우리는 선경이를 떠올렸다.

선경이는 지방대 미대에 겨우 붙었다고 했다.

그나마 대학은 간 것이다.

그 아이의 패션 감각이 역시나 맘에 걸리긴 했지만 어디를 보나 조건에서 우리를 이겨 먹을 부분은 없어 보였다.

그때의 대학교는 민주화 운동으로 거의 매일 수업이 휴강 상태였다. 단체 미팅이 있던 날도 학교 앞에는 연일 시위와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지만 나와 우리 친구 들은 세상의 그런 것들에는 일절 관심도 없이 그저 대학에서의 첫 미팅인 데다가 의대생들과의 만남이라 갖은 명품으로 휘감고 미용실에도 들러 적어도 네 시간은 있다가 왔다는 티를 다 내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와 있었다.

나 역시 무슨 미팅 한 번에 인생이 결정 날 것처럼 그렇게 며칠 전부터 옷을 고르고 화장과 머리를 손질하는데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선경이는 긴 머리를 길게 휘날리며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링 귀걸이를 하고 그 긴 길이로 흰 티와 미니스커트에 운동화를 신고 나왔는데 발목에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가느다란 발찌를 하고 있었다. 그냥 보그지 같은 잡지의 모델이 강림한 듯한 모습 그 자체였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치마에는 반드시 스타킹을 신고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였다. 물론 우리가 미니스커트에 발찌를 하고 운동화를 신는다고 그런 멋은 나지도 않았겠지만.

우리는 선경이의 등판만으로도 기가 죽었다. 고등학교 때의 멋스러운 분위기와 또 차원이 달라져 등장한 것이다.

물론 남자들의 시선이 죄다 선경이에게 몰렸다.

하지만 선경이가 입을 떼는 순간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가워~

아니 근데 나는 지방대 출신이고 얘네들은 다 명문대생 들인데 왜 날 이 미팅에 끼워줬나 모르겠네?"

주선자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미팅 조건 중에 미대생 한 명 끼워달래서 마침 네가 시간이 된대 가지고ᆢ"

그때였다.

"접니다. 그 조건 붙인 사람!"

그때 의대생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그 당시 막 처음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헤어 무쓰를 바른 듯한 머리 스타일로, 사실 우리 모두의 호감을 받던 중인 남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런데 선경이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왜 미대생을 끼우라고 하셨어요? 잘 놀아서?"

정말 1도 내숭이라곤 없는 친구였다.

"사실 얘들 내가 잘 아는데 다 범생이잖아요. 뭐 신붓감으로는 최고지만. 그래서 심심할까 봐 날 끼운 거 같은데 흐흐"

그런데 그 의대생 남자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무슨 소리하세요? 그쪽이 제가 찾던 미대 여대생 딱 제 이상형이세요! “

그 미팅에서 잘된 커플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내심 우리는 선경이가 그 판을 다 엎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가 못 먹는 감 파투나 내자는 심정으로 놀다 갔다 이런 의심이었다.

그날 우리는 –도대체 누구 돈으로 그런 장소를 통째로 빌린 건지 지금도 모르겠지만-락카페 하나를 통째로 빌린 그곳에서 고급 식사는 물론 술도 마시며 음향시설과 조명도 갖춰진 분위기에 취해 정말 다 내려놓고 노는 선경이를 보았다. 남자들은 다 환호했고 선경이는 탁자 위에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인디언 소리까지 내며 손바닥으로 입을 두드리면서 인디언춤을 추기도 하며 정말 잘 놀았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도 다 같이 어이가 없었다. 우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바보가 그나마 호의를 가졌던 남자까지 다 떨어져 나가게 하는구나. 저런 식으로 놀다가는 고지식한 의대생들에게 인기는 있는 듯이 보여도 그냥 노는 애 이상은 아닐 터였다. 나와 내 친구들의 생각에는 그랬다. 그날 선경이를 제외한 우리들은 어색하게 들러리만 서다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놀라운 소문이 들려왔다.

그 세련된 의대생이 눈물까지 흘려가며 선경이를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경이와 그 의대생이 결국 사귄다는 말을 들은 듯도 하고 그저 누군가의 추측에 불과한 거였던 것도 같고, 아무튼 그 뒤는 흐지부지 아무도 모르는 채 더 이상의 얘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랑 친하지도 않았고 나 역시 괜히 관심을 갖는 일조차 내키지 않는 선경이의 일은 그렇게 잊혔다.





그 후 약 3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는 선경이를 두 번 만났다.

나의 삶도 만만치 않았으니 그런 선경이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도 옷을 좋아하는 터라 아주 가끔 길에서 뭔가 멋있는 옷차림을 한 여자가 지나가면 선경이가 잠시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평범하지만 안정된 회사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조용히 내조에 힘쓰며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부유한 동네의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하나라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그들의 행렬에 도태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제법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여자로서의 외모도 그리 빠지지 않고 집안도 그리 못 살지도 않은 나는 뭔가 중산층에서 상류층의 삶으로의 진입 같은 게 남은 인생의 최대 목표였고 반드시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비교 기준을 삼았던 그 친구들은 오히려 살아갈수록 점점 더 멀어져 결국에는 연락조차 잘 되지 않았고,-그때는 왜 그렇게 그 무리들에게서 빠지면 내 인생은 망한 거라고 까지 생각한 건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내 아이들의 친구들 부모의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기를 쓰고 살았다. 남편 역시 한 달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급날이었지만 그날을 위해 수많은 인내와 고충이 있었을 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류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내 믿음은 완전 착각임이 드러났고 그저 우리 가족의 무사안일한 삶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TV에서는 예전 학교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쓸데없이 오지랖 넓게 자기 인생을 잘 챙겨 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무총리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들이 휙휙 지나갔다. 말 그대로 휙휙. 나는 여전히 그런 역사적인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내 삶이 늘 더 버겁고 각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큰 딸이 이제 막 대학에 가고 나서야 나는 조금 자유로워졌다. 딸은 나보다 더 악착같이 공부하는 스타일이었기에 나 역시 밤잠을 설쳐가며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아들은 밤새 게임을 하는 등 내 욕심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에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고 아무 대학이나 가서 군대라도 갔다 오면 정신 차리고 제 인생을 시작할지 모르니 그때나 도와주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러니 나는 드디어 큰 숙제 하나는 해결한 셈이었다.

그렇게 나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문득 딸이 다니는 대학 근처를 혼자 돌아다녀 보고 싶었다.

내 대학 시절의 추억도 떠올려 보면서.

나는 이제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끼고 아낀 돈으로 백화점에서 보고 또 보며 옷을 골라 사 입는 나이가 됐다. 길에 걸어가다가 아무거나 사 입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딸의 학교 주변 길을 걷다가 아주 세련되고 고급지면서도 독특한 느낌의 옷을 진열한 작은 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대학가 앞이라 저런 옷을 파는구나~ 옷이 참 멋있네.

구경이나 할까?'

나는 무심코 가게에 들어갔고, 거기서 아주 낯익은 실루엣의 여자를 마주쳤다.

선경이었다.

그녀가 그 옷가게 주인이었다.

여전히 키 크고 날씬한, 죽이는 옷차림의 그녀였다.

나는 순간 모르는 사람인 척할까 망설였는데 그녀의 성격은 그걸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야 너 지희지?"

나는 쑥스러운 듯 그냥 웃었다.

'아 내가 쟤보다 세련된 건 좀 덜하더라도 여기서 옷가게 하는 이 친구에게 그리 꿇리는 조건은 아니지?'

나는 빠르게 계산을 끝내고 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 선경이지?"

"야 역시 너는 여전히 귀티가 좔좔 흐르네"

나는 내심 ‘제법 장사꾼 입담이네? 옷이나 팔아 줘야겠군’ 하고 웃어 넘기기로 했다.

선경이는 옷 정리를 하던 중이었지만 잠시 멈추고 나를 손님들이 쉬고 앉을 수 있는 소파로 안내했다. 나는 그녀가 내려 주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너는 여전히 스타일리시하다?"

"나야 뭐 잘하는 게 옷 입는 거 하나 아냐? 그래서 이렇게 옷장사도하고 있나 보지.

너는 시집 잘 가서 잘 사나 보다. 사모님 티가 난다 나"

"나는 평범하게 그냥 결혼해서 딸하나 아들하나 낳고 살아.

우리 딸이 여기 대학 다녀서 오늘 구경 다녀 보다 하도 세련된 옷을 팔길래 들어왔더니 네가 있네 "

"뭐야 이 대학 다니면 애도 잘 키웠네. 역시 범생이 엄마가 다르네 “


나는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도 없어 보이던 친구가 세월의 여파로 그래도 제법 남의 비위를 맞춰 가며 맞장구치는 모습이 약간 그 친구의 본래 모습과 좀 달라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거리감이 좁혀진 듯한 기분도 들고 역시 나이는 그냥 헛 먹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공통된 화제나 학창 시절 함께 나눈 추억도 별로 없기에 무슨 대화를 더 해야 할지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자 나는 순간 선경이의 과거 그 유명한 스캔들이 궁금해졌다. 몹시 개인사이긴 하지만 이제 40대 중반의 아줌마들인데 그 정도 옛이야기쯤이야 못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사는 걸 보면 그 의대생과 결혼한 건 아닌 것 같았기에 예전보다는 좀 만만해 보였다고 하는 게 더 솔직한 마음일까? 어쨌든 나 역시 어릴 때라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을 터이지만 궁금함이 먼저인지라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머 하나 물어봐도 돼? "

"뭐?"

"너 그 예전에 미팅 때 의대생 말이야. 너 좋다고 따라다닌다고 소문났었는데 "

선경이는 정말 아무 스스름 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아 걔? 큭. 진짜 징글징글하게 나 쫓아다녔어. 자기는 옷 잘 입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나 뭐라나. 미대생 찾은 것도 그 때문이고."

"근데 어떻게 됐어?"

"진짜 결혼까지 하자고 그러더라고. 나는 맨몸으로 와도 된다고. 내가 우리 집 의사한테 시집보낼 형편 안된다고 했거든. 우리 때는 의사한테 시집가려면 뭐 열쇠 세 개 있어야 된다 막 그랬잖아. 나도 그렇게 부담스러운 애 만나는 것도 좀 그래서 거절했는데 한 일 년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그랬지. "

정말 쇼킹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중년의 우아한 여성이 아니라 학창 시절의 가십거리에 빠진 여학생처럼 주책스레 캐물었다.

"그래서 사귀었어? 개랑.. 결혼은 안 한 거지?"

"결혼은 무슨? 사귀지도 않았어. 그냥 딱 세 번만 만나달라나? 그러면 자기의 모든 매력을 다 보여준다고. 아 나 아까 하던 일 좀 마저 해도 되지? “

선경이는 무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래서? “

나는 바쁜 친구에게 민폐가 되는지 어떤지도 생각 못하고 궁금한 마음에 시선으로 선경이를 따라다니며 물었다.

"매력은 무슨. 첨 봤을 때는 그래도 약간 댄디한 멋 정도는 있었는데 그것마저 다 떨어져 나가더라 “

"왜 어땠는데?"

"너무너무 재미없고 시시한 남자더라. 마마 보이고.

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건지 온갖 있는 척 잘난 척 똑똑한 척 다하는데 나는 대놓고 하품했어 크크“

나는 순간 선경이의 진심이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의대생에 집안도 좋았고 외모도 나쁘진 않았는데 잘해보고 싶은 생각이 정말 없었어? “

"왜 없었겠어. 내 주제에 의대생이라니. 첨엔 날 갖고 놀다 버릴 거 같아 거절했는데 진짜 눈물까지 보이며 진심같이 굴어서 그나마 세 번은 만나보기로 한 거지 “

"그런데 왜 하품까지 해? 좀 참아보지"

"내가 오죽하면 그랬겠냐? “

"뭐가 그리 싫었어?"

"내 자격지심인지 모르겠는데 무슨 자랑을 그리도 하는지 못 듣겠더라고. 아니 들을수록 자기 집안 자랑, 돈자랑, 내가 미대 다닌다고 그런는지 무슨 그림이 지 집에 있고.. 심지어 아이큐가 머 160이라나? 나는 들을수록 얘 바보 아니야 하고 있는데..

그래서 걔 말 멈추고 싶어 하품을 한 건데 정말 돌변하는 거 있지?"

"어떻게?"

"지가 말하는데 지루해한다고 갑자기 막 화를 내는 거야.

나는 그냥 멋있게 앉아서 자기 얘기를 들어만 주면 된다나.

그럼 나머지 내 인생 지가 다 알아서 책임진대.

난 그냥 스타일 좋게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자긴 아무리 예뻐도 똑똑한 여자는 싫다나? 말대꾸도 하지 말라 하고. 내가 머리가 나빠서 좋다는 거야 뭐야? 완전 돌아이지 않냐? “

”자기가 똑똑하고 다 갖췄으니 그런 생각 들만도 하지 않아? 결혼했으면 너 정말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장사하는 것도 좋긴 한데 돈 버는 게 아무래도 고생스럽잖아. 후회 안되니?" 나는 진심으로 그 친구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예전엔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같은 동네 살면서 몇 번 마주치거나 고3 때 같은 반이 된 적이 단 한번 있긴 했지만 그땐 입시 때문에 그 애랑 말 한마디 나눈 기억도 별로 없는데 어떻게 그런 무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선경이는 나의 그런 은근한 작은 무시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지희야, 내가 마네킹이니? 나는 사실 그때 집안 형편이 안 좋아 대학교 2학년도 못 다니고 그만뒀어. 그때부터 옷 집 알바를 시작했어. 동대문에서 지나가는 손님들 큰소리로 휘파리-옷장사하면서 배운 은어야-불면서 장사를 했어. 지금 남편도 그때 만났고. 우리는 정말 편하고 재밌게 그날그날 있었던 얘기 하면서 살아. 울 신랑은 내 얘기 다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주고 그러거든. 울 신랑이 돈은 좀 못 벌어도 나는 훨씬 만족해. 그 새끼랑은 세 번이 뭐냐 두 번 만나고 대판 싸우고 끝냈지 뭐"

"그 뒤에 뭐 소식은 몰라?"

나는 왠지 모르게 내가 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는 좀 잘난 남자들의 공통 특성 아닐까? 그러자 선경이는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몇 년 전에 강남에서 봤어"

"어 정말?"

“강남에 성형외과 피부과 쫙 모여있는 곳 알지?

거기서 엄청 큰 피부과 대표 원장이라고 사진 붙었더라. 흐흐. 진짜 돈은 많이 버나 봐 “

"좀 아깝지 않았어?"

"아니, 나랑은 완전 세상이 다른 인간이야.

나는 전혀 엮이고 싶지 않은 인간. 지가 왜 날 좋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

선경은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틈틈이 손님들이 입고 나간 옷을 정리하거나 전표 같은 걸 들여다봤다. 그 의대생 이야기도 마치 별 일 아닌 듯 툭툭 꺼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집요하게 캐묻자, 그녀는 특유의 그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찔러 넣는 자세를 취하며, 진지하면서도 느슨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얘, 지희야.

그때 너희들 미용실에서 네 시간 넘게 공들이고 단체 미팅 나간 날 말이야.”

나는 그 순간, 그녀가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뭐 자다 일어나서 머리만 감고 티 쪼가리 하나 걸쳐 입고 나간 줄 알았어?”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선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네 시간은 공들였어. 머리 감고 드라이하면서 묶을까 풀까, 너희들 완전 압살하게 입을까, 적당히 하고 나갈까.. 이거 저거 입었다 벗었다.. 너희랑 차이점이 있다면 너흰 ‘공들였다’는게 확 티가 나게 명품들로 휘감고 화장이며 머리도 온갖 손질을 다했고, 나는 전혀 '공들이지 않은 척'하고 나갔던 거지”

선경은 다시 소파로 돌아와 내 앞에 앉았다.

"니들이 그렇게 죽어라 공부해서 너희 자존감을 높인 거라면, 나는 옷 스타일 하나로 그걸 만든 거야.

너희가 그걸로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면 나는 그걸로 자유를 누리는 게 목적이었어.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하고 싶은 행동, 그게 웬만한 건 스타일 하나 좋으면 다 용서되는 느낌? 아니, 그런 착각이 들었달까? “

선경이는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패션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내 자유를 포기하고, 그냥 옷만 잘 입는 여자로 살라는 게 말이 되니?

그래서 내가 걔한테도 한마디 했지. 난 마네킨이 아니라고. 그랬더니 뭐 자기 엄마도 미대 나왔다면서 자기 엄마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내가 뭐 몇 마디나 했다고 손가락으로 내 입을 가리키면서 그 입! 입 다물어!! 그러잖아. 눈이 나한테 그러는 것 같지가 않더라고. 막 그냥 분노가.. 아이그. 결혼했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뻔하다! “

나는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선경을 얕본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얕봤던 것 같다.

늘 자신감 넘치고 옷 잘 입는, 그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모든 게 그녀가 선택한 언어였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된 기분이었다.

"내 자유를 포기하고, 그냥 옷만 잘 입는 여자로 살라는 게 말이 되니?"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평생 정답지대로 살아왔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선경은 내가 틀린 줄 알았던 선택들로 ‘자기 삶’을 똑바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옷을 잘 입는다는 게, 그렇게 깊은 생각과 태도에서 비롯된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스캔들에 대해 묻지 못했다.

그날 내 앞의 선경은, 그 시절의 그 의대생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멋있어 보였다.

나는 갑자기 주섬주섬 딸에게 줄 특이한 원피스 하나를 고르고 내가 입을 젊은 감각의 티 하나를 골랐다.

선경이는 다시 장사꾼 모드로 변하면서 정말 예쁜 옷을 골랐다며 맞장구를 쳤다.

"너는 딸이 있어 좋겠다.

나는 나처럼 공부는 안 하고 옷에만 관심 있는 아들 하나 있어.

대학도 안 간다는데 큰일이야 “

그녀도 결국 엄마 모드로 돌아가니 다시 정감이 갔다. ‘어느 집이나 아들은 애를 먹이는 모양이네’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나는 자주 들리겠다는 약속을 하며 선경이네 옷가게를 나왔다.

뭔가 유쾌하고도 내 뇌리에 선명한 기억을 남기게 한 만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선경이에게 찾아가지는 않았다.

그 친구에게 가장 궁금했던 점을 해소해서일까.

아님 그 애의 몰랐던 부분이 다소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그날 샀던 그 패셔너블한 옷들은 딸도 나도 잘 어울리지가 않았다.

우리들은 그냥 집에서만 입어 보고 서로 막 웃으며 옷장에만 잘 보관하는 옷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선경의 가게에 가지 않았다. 물론 딸아이의 대학교에 가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기도 했다. 다시 내 삶은 아들과의 입시전쟁에 돌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 대학이라도 그냥 저절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딸의 졸업식 날 마음을 먹고 그 앞을 지나갔을 때 선경의 옷가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때 다시 들른다고 하고 선경의 휴대폰 번호를 묻지 않은 것이 문득 안타까웠다. 자주 보진 않더라도 연락은 하며 사는 친구였으면 했다.

인터넷 쇼핑몰들 때문에 로드샾 같은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하더니 그래서 관둔 걸까? 사실 대중적으로 잘 팔릴 옷은 아니었던 듯하다. 아니면 선경이도 인터넷으로 옮긴 걸까?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나는 선경의 행방이 계속 궁금하게 여겨졌지만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선경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잊힌 듯, 그저 내 기억 속 한 페이지로 접힌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4~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강남의 유명한 한우구이 집에 갔던 저녁이었다.

그 식당 안은 시끌벅적했고, 종업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나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문득 입구 쪽에서 거대한 냄비를 들고 주방으로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에 눈길이 멈췄다.

그 여자의 걸음걸이, 실루엣, 그리고 머리에 쓴 우스꽝스러운 분홍 모자와 희고 긴 비닐 앞치마, 시퍼런 색깔의 투박한 주방 장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선경이었다.

스타일로 모든 걸 압도하던 친구의 모습은 그날 입은 그 흰색 비닐 앞치마와 분홍 꽃무늬 모자로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선경에게 아는 척을 할까 망설이다 관두기로 했다.

저 차림새라면 굳이 아는 척하지 않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 건, 강남 대로변의 유명 식당에서 그런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면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그걸 아랑곳하지 않는 선경의 성격은 여전히 놀라웠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나는 그렇게 선경과 두 번의 만남으로 내 인생에서 그녀의 존재는 잊히는 걸로 여겼다.

그런데 그렇게 만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미용실에 파마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요즘은 미용실에서도 폰이나 들여다보지 잡지책을 안 보게 된 지도 꽤 오래됐는데- 왠지 폰 보는 것도 지루하게 여겨져 새로 나온 신간 패션 잡지를 펼쳐 들었다.

나는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얼핏 본 프랑스 명품 패션 회사에서 주최하는 신진 디자이너 대회에서 1등을 한 남자 패션 디자이너의 기사를 들여다봤다. 그 패션디자이너가 주는 매력은 어쩐지 나에게 약간 정감을 주기까지 하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잠시 뒤에 알아채고 말았다.

그 패션 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 한쪽 밑에 그가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엄마와 찍은 사진이라며 sns에 올린 사진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선경이었다.

그 디자이너는 요즘 천재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달고 인터넷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나도 딸아이가 멋있다고 보여준 덕분에 알게 된 디자이너였다.

나는 순간 선경이가 예전에 미술실에서 검정 비닐 앞치마만 두르고 있어도 멋이 우러나던 모습과 주방에서 장화를 신고 흰색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당당히 홀을 지나던 모습이 같이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되뇌었다.

"그래, 너 좀 멋있다"라고.



에필로그


나는 얼마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때 그 한우 전문 구이 식당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주방 근처를 조심스레 기웃거려 보았다.

설마 했지만, 선경이는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종업원 한 명에게 “안에 주방에서 일하는 저 키 큰 여자분 좀 잠깐만…” 하고

선경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런 부탁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이제 거리낄 게 없는 나이가 된 걸까.

잠시 후, 설거지를 하던 선경이 종업원의 말에 고개를 돌렸고 우리 둘은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들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선경은 금세 알아보고 언제나 그랬듯,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어머, 지희야! 너 어떻게 알고 여길?”

나는 선경의 초라한 차림보다는 그녀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화려함을 떠올리며 따뜻하게 말했다.

“얼마 전에 네 아들 기사 봤어. 그리고 작년인가, 너랑 비슷한 사람을 여기서 본 기억이 나서 와봤는데, 역시 너 맞구나!”

“너무 반갑다 야! 근데 나 일하는 중이라 오래는 못 있어~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 전화번호도 없더라. 그렇지?”

우리는 십 대 소녀들처럼 키득거리며 서로의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교환했다.

“전화하자~”

그날 이후 나는 몇 번이나,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볼까 망설이다 그냥 다시 폰을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아이도 다 키우고 집안일만 하며 지내는 나보다 선경이는 훨씬 바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선경이가 그리 궁금해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결국 나였다.

그러나 나 역시,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긴 할지언정 굳이 바쁜 선경에게 먼저 연락해 왜 아들이 그렇게 성공했는데도 아직도 그 식당에서 일하는지, 또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물어볼 생각은 그만두었다.

삶은 그런 것 아닐까?

언제나 가장 좋은 지점에서 멈추지도, 가장 나쁜 지점에서도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는 그 어디쯤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선경의 이야기는 어쩌면 더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 역시, 여태 그랬던 것처럼 우연히 알아지게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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