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사진마다 입이 찢어져라 활짝 웃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보노라면 사실 그때마다 무슨 걱정과 괴로움으로 힘들어했던 상황이었는지가 기억이 난다. 얼마나 가식적인가 생각 들때도 많다. 그러나 왠지 사진 찍을 때는 늘 웃고 싶었고 그때마다 나는 세상 근심이라고는 하나 없는 해맑은 얼굴로 포즈를 취하곤 했다.
그러고는 나중에 사진을 보고 '저때 그 일로 너무 괴로웠었지' 혹은' 참 가증스럽기도 하다. 저 웃음 뒤에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겹겹이 따라온다.
젊은 날에도 나는 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이 끊이질 않았으면서도 사진을 찍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건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데 최근에는 가족들과의 사진에서 더 가증스러운 웃음이 나조차도 꼴 보기 싫을 때가 많다.
그중 좀 강도가 심한 걸 얘기하자면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
대학 추가합격통보를 기다리며 초조함에 심장이 뜯기듯 벌렁거렸으면서도 평생 남을 아들 졸업식 사진이라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남편과 거의 사니 못 사니 싸우던 중에도 애들 때문에 여름휴가라도 가야 된다며 근처 계곡에 가서 세상 제일 행복한 여자처럼 웃고 있는 가족사진.
그리고 그 어떤 사진보다 경악스러웠던 기억은 엄마와 언니와 평생 처음 효도한다며 간 홍콩여행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와 딸은 피 터지게 싸우더라도 무슨 원한 관계가 아니라 그냥 그 성향자체가 비슷해서인 경우가 많다.
'기담'이라는 공포영화에서 사고로 죽은 엄마가 끔찍하게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목소리로 딸에게 중얼거리는데 딸은 아무리 엄마지만 너무 무서워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는 그 엄마가 나타난 이유가 딸에게 너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였다는 걸 알게 되지만 이유야 어떻든 나는 그 장면이 정말 무서웠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렇게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 중얼거리는 공포. 근데 그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공포는 그 귀신 엄마의 '잔소리'였다.
나에게는 정말 쉬지 않고 중얼거리는 엄마의 잔소리가 어떨 땐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끔찍할 때가 있다. 그 장면이 가장 피부로 와닿은 것이 홍콩 여행지에서였다.
홍콩은 그 빈티지하면서도 현대적 건물과의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 분위기가 너무도 나를 매혹시켜서 첫날에는 가는 곳마다 두 눈에 담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아니면 원래가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인 데다 모든 것이-하나에서 백까지- 다 낯선 곳에서 그야말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감각의 총체적 공격으로 인해 진짜 정신이 나갈 지경에까지 이른 건지 정말 잠시도, 1분 1초도 입을 닫질 못하고 있었다. 여긴 좋다 여긴 더럽다. 여긴 볼만한데 좀 후지다, 음식이 맛이 없다, 싱겁다, 아까 그 옆자리 그 사람 기분 나쁘다.. 원래가 예술적 기질이 있어 의류업으로 큰돈을 번 엄마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모든 감각이 그 홍콩이라는 낯선 감각의 총 집합인 곳에서 그렇게 입으로 2박 3일을 쏟아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질 못했다. 나는 차라리 내 귀에서 피라도 나와 엄마가 그걸 보고 좀 멈춰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엄마는 그야말로 호텔에서도 한두 시간도 못 자고 불편하다고, 냄새가 난다고, 일류호텔이 뭐 이모양이냐고 낮에 자기를 보고 별 뜻 없이 웃고 얘기를 나눴던 여행 일행자들 모두의 욕을 해댔다. 몸이 건강하셔서 딸들과 다니시니 좋아 보인다는 말도 할머니가 자기들 불편하게 따라다니고 딸들이 고생이 많다, 할머니가 주책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식이었다. 나는 나 역시 그만 좀 하라고 툴툴거리며 엄마를 진정시키면서 따라다니고 있었는데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무던히 듣고 있었다. 언니 역시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라 듣기 힘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틀째 마지막날 우리는 배를 탔는데 엄마는 그 공포심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왜 배를 탔냐고 시작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여행이면 자기는 오지도 않았다고 막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가 앉은 자리 주변이 거의 중국 사람들이어서 엄마가 큰소리로 말을 해도 자기들도 떠드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니 엄마는 더 안심하고 큰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때서야 여태 남부끄러워 참았던 모양인지 언니도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고만 좀 하라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뱃소리의 소음과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와 엄마와 언니의 고성사이에서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엄마는 한술 더 떠 언니한테 바다에 확 뛰어내린다는 둥 말 같지도 않은 협박으로 소리 지르고 언니는 뛰어 내려 봐라고 또 큰소리로 맞받았다. 그런 무시무시한 대화가 오가는데도 다행인지 어쩐지 중국 사람들도 지지 않고 떠들어댔기에 아무도 우리의 심각한 대화를 알아듣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엄마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때쯤은 이미 배가 육지에 닿았고 두 사람은 고함을 질러 스트레스가 풀렸는지 또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문제는 이제부터 나였다. 나는 둘만 진정하면 나름 참아 넘기려고 했는데 아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군대에 있었어야 했던 아들의 전화였다. "엄마, 내가 부하한테 슬리퍼를 던졌는데 그 새끼가 신고를 해서 나 영창 갈지도 모른대.. 엄마 나 어떡해 " 말이 군인이지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직도 아이의 심성인 그대로 뭔가 교도소 같은 느낌을 주는 '영창'이라는 단어에 아이도, 그때까지 잘 참고 있던 나도 그제야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엄마와 언니의 싸움은 그야말로 장난 수준이었다. 나는 아직도 자기들 기분은 다 풀렸지만 그래도 남은 감정에 꽁해있던 두 사람에게 차마 이일을 얘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오늘 밤의 코스는 저녁을 먹고 그야말로 우리가 "홍콩 간다"는 은어를 즐겨 사용하곤 하던 그 홍콩의 야경을 보는 것이었기에 밖으로 나와야 했다. 그 광경은 내가 부산 해운대에서 보는 밤바다 야경보다 훨씬 좋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안의 그 복잡한 썩은 감정들 때문에 그 조금 아름다운 홍콩의 야경은 그야말로 나에게 무슨 마약이라도 놓은 듯한-마약을 안 맞아봐서 모르긴 한데 암튼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도파민이 터지는 기분의 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그때 찍은 내 사진은 그야말로 찍은 사진마다 온 입을 찢어져라 벌리며 활짝 웃고 있다. 부끄럽다.
그때 아들의 일은 그저 사과하고 끝나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나만 혼자 그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왔다 갔다 하며 미친 듯이 웃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엄마한테 다시는 같이 여행 안 간다고 선포를 했다.
그런데 그때 사진을 보면 우리 세모녀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사진마다 웃고 찍길 잘했다.